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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피
율리 작가의 사색(2)
2024년 06월 12일 (수) 14:08:40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NEWSIS 사진캡쳐

전성옥 집사(부산 거성교회)

 

엽이야! 너 혹시 ‘푸른 피’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나 몰라. 코가 얼얼한 게 아니라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냄새 말이야.
 

세상에, 한나절이 지났는데 코끝에는 아직도 그 냄새가 달려 있네. 모든 신경은 뇌로 가는 게 아니었나, 그 푸른 피 냄새는 왜 자꾸 가슴에 번지는 게야. 내 후嗅 신경의 어디가 잘못되었나 봐.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나 오늘, 늦은 출근을 했었어. 비수기라 점심까지 느긋하게 챙겨 먹고는 차를 느릿느릿 움직이며 창밖 풍경에 눈을 두고 그렇게 가고 있었지. 가로수로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흔들흔들하더라. 차창을 쫘악 내렸지,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데 바람보다 먼저, 훅하니 달려오는 그것. 너무도 신선한, 가슴 저 밑바닥까지 청량해지는… 그래 그건 냄새였어. 피 냄새. 푸른 피의 냄새였어.
 

피 냄새라니, 무슨 일이 어찌 된 거냐고? 아, 나는 괜찮아. 푸른 피는 까만 아스팔트에 흩어져 있었어. 도로 위에 찢긴 잎들이 가득했거든. 아직 푸른데, 아니 이제 막 푸른데 떨어지고 찢어지고 짓이겨진 채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더라. 이를 어째. 이 살벌한 도로 위에서 저 풋내 나는 것들이 어쩌자고…. 우왕좌왕하던 이파리들이 화르르 날아오르더라. 질주하는 차바퀴를 피하느라 온전치 못한 몸으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그들의 절박한 모습, 황망했어. 아득했어.
 

지난밤, 바람이 몹시 불었지. 세상 모든 것이 바람의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았더랬어.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비보다 바람이 먼저 올라오네. 그놈의 바람은 선발대로 올라오니 신이 나고 힘도 넘쳤나 봐. 아파트 사이를 뛰고, 박고, 솟으며 밤새 톳재비놀음을 했었지. 골바람이 되어 윙윙 건물을 감돌다가 냅다 유리창에 달라붙곤 하더라. 베란다 창을 빨판처럼 움켜쥐고는 열지 않으면 깨어 부순다고 행패를 부리더라. 그 포악이 어디라고 안 갔겠어, 나무라고 그냥 두었겠어. 결국, 푸르고 연한 잎들을 저리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생명줄을 끊어 놓았네. 처참하기도 해라.
 

사람의 세상에도 처참한 일이 생겼어. ‘구의역’, 그 어둡고 깊은 터널 속에서 열아홉 아들 하나가 별이 되어 버렸잖아. 푸르고 연한 것이 찢어지고 으깨어지며, 진동하는 제 피 냄새 속에 숨을 맺었다지. 숨을 맺으면서 그 푸른 *엇부루기가 마지막 본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순간은 막막한 어둠 외에는 본 것이 없었을지도 몰라.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영혼이 몸을 떠나올 때, 한동안은 볼 수 있다더라. 제 육신의 집이었던 몸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찢어지고 으깨어진 제 몸을 내려다보며 그때에야 비로소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불가사리 때문이라 하더라.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 시뻘건 촉수를 온몸에 돋우고 눈에 띄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불가사리. 오래되어 더 사나운 그 묵은 불가사리들이 햇볕 환한 곳은 죄다 잠식해 버렸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나 봐, 그 아이는. 들어… 갔어야 했었다나 봐, 깜깜한 어둠 속으로. 대포 같은 지하철이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그 죽음의 터널 속으로, 혼자서.
 

착한 아들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마흔을 조금 넘긴 그 아이의 엄마.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아직 소녀 같은 그 엄마는 그렇게 가르쳤대. 시키는 대로 잘하고 힘들더라고 참으라고,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거라고. 아이도 묵묵히 견뎠다고 그랬어, 언제고 ‘굳은 직장’이 될 거라 믿었대. 한 갈래로 머리를 묶은 그 엄마도, 점심을 거르며 일하던 풀잎 같던 그 아들도… 너무 착했나 봐. 요즘 세상을 살면서 대체 왜 그렇게 착하다니 그 모자는, 정말 내가 못 살겠네.
 

바람이, 어쩌면 그런 바람이 그렇게 불었을까. 하지만 엽이야, 늘 보았듯이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나무둥치가 먼저 쓰러지는 일은 결코 없지. 제일 먼저 당하는 건 가장 여린 것, 그러니까 이파리들이지. 생채기 나고 찢어지고 떨어져서, 사람의 발에 자동차의 바퀴에 사정없이 으깨어지지.
 

떨어진다고 그게 모두 낙엽이고 단풍이겠어. 제 절정을 누리고 떨어지는 붉은 잎은 서럽지 않아. 둥치와의 작별을 찬찬히 준비하고 때가 되면 잎자루의 핏줄을 거두어 제 스스로 낙하하지. 그리고 가벼워진 몸을 바람에 실어 어디로든 편히 가지. 그러나 핏물 가득한 푸른 잎은 뜨거운 동맥으로 둥치와 연결되어있는 거잖아. 그런데 떨어진다는 것은, 그 굵은 핏줄이 잘리는 것이고 그것은 삶의 마감이지. 새파란 무거운 몸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오늘처럼 사방에 푸른 피 냄새만 자욱할 뿐이야.
 

옛날 양반집에는 매 맞는 아이가 있었다고 해. 주인 도련님의 책보를 끼고 서당을 따라다니던 아이, 도련님이 깜빡 졸기라도 하면 회초리로 피나게 종아리를 맞는 건 그 아이 몫이었다고 하지. 추운 겨울이고 더운 여름이고 언제나 서당 마루 아래 쪼그려 앉아 마음 졸였을 가여운 아이. 세상일은 늘 똑같아. 세월 따라 철 따라 모양만 다를 뿐, 어찌 그리 같은 바람으로 불어 가는지. 지금도 여전하다니까. 지하 터널에서 문짝을 고치던 그 어린것만 해도 그래. 아니 맞을 매를 맞고 목숨을 빼앗긴 거잖아.
 

바람이 불어, 여전히. 그리고… 길바닥에는 푸른 잎의 비명과 주검도 여전하고. 하지만 나는 일터에 가야 했지. 계속 차를 움직였다는 거지. 바람이 이파리들을 떨구었다지만 내 차의 바퀴도 그들의 몸을 짓이기며 지나가야 했어. 그 시간 이후 구의역을 통과하는 지하철에도 사람들은 타야 했어.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나무랄 수는 없어. 그 역을 지나가며 한동안 피 냄새를 맡아야 했을 것이고. 그들의 가슴은 뻐개어졌을 것이고, 녹아내렸을 것이고.
 

엽아, 피 냄새가 바늘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빼지 말아야겠다. 한동안은 매 맞는 어른으로 지내야겠어. 뜨끔뜨끔 아파하면서.

 

   
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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