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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빨기
목사의 자전거 세상(3)
2024년 05월 31일 (금) 16:06:14 이현진 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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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목사(살렘교회 담임)

 

자전거는 혼자 타기도 하지만 그룹으로 타기도 한다. 자전거 대회는 대부분 팀으로 참여한다. 최종적으로 우승하는 것은 개인이지만 그가 우승하기까지는 반드시 팀의 활약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팀의 우승이기도 하다. 사이클 경주는 아주 길기 때문에, 그 긴 여정에서 살아남으려면 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자전거는 바람을 뚫고 가야 한다. 바람의 영향은 대단하다. 그래서 요즘 자전거는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여 설계하고 제작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려면 누군가가 바람막이가 되어주면 된다. 보통 맨 앞에 있는 사람보다 뒤에서 타는 사람이 약 30%에서 40%까지 힘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사이클 경주를 보면 실타래처럼 선수들이 뭉쳐서 간다. 그러다가 결승점이 가까우면 앞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다.
 

누군가 앞에서 끌 때 뒤에 바짝 붙어 바람의 영향을 덜 받고 가는 것을 자덕들은 ‘피를 빤다’고 표현한다. 표현이 리얼하다. 앞 사람의 희생으로 덕을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그룹으로 탈 때는 서로 돌아가면서, 때로는 끌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피 빨기’도 한다. 한 번 앞에서 끌 때 보통은 30초를 넘기기도 힘들다. 그만큼 맨 앞에서 끌고 가는 선수는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조금 끌다가 이내 뒤로 빠진다. 이것은 기러기 같은 철새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러기는 V자로 날아가는데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앞에서 끌던 기러기가 지치면 뒤로 빠지고, 뒤에 있던 기러기가 앞으로 나선다. 기러기는 아주 시끄럽게 날아가는데, 이는 동료들을 격려하는 소리라고 한다. 기러기는 수천 킬로미터를 이렇게 날아간다.
 

교회의 일꾼이 탈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힘들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중책을 맡고 전면에 나서서 일하는 사역자는 맨 앞에서 바람을 맞는 선수와 같다. 그런데 우리는 미련하게도 일하는 사람만 주야장천(晝夜長川) 앞에 세운다. 그러다가 교회에 소음이 발생한다. 이 소음은 기러기들 같은 동료를 격려하는 소음이 아니다. 원망과 불평과 비방의 소음이다. 이런 소음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기러기들이나 자전거 경주에서 배울 수 있는 ‘피 빨기’다.
 

한번은 홀로 자전거를 타다가 그룹으로 타는 사람들을 만났다. 본능적으로 따라 붙었는데 ‘아! 이게 피를 빤다는 것이구나.’를 실감했다. 고속으로 달리는 데도 힘이 들지 않았다. 혼자 자전거를 탈 때보다 속도도 훨씬 빨랐다. 그렇게 따라 붙어 가다가 눈치가 보였다. 자덕들은 자기들 그룹에 누가 끼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선두에 서서 끌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아, 빨리 가세요.”하며 내친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섭섭하기도 했다. 이 때 주님이 생각났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보혈을 흘려주신 분이 아니시던가! 더군다나 주님은 우리가 그 보혈을 누릴 때 전혀 눈치를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마가복음 6장에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주님의 말씀이 있다. 사도들이 사역의 현장에 깊이 몰두하여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던 상황에서 주신 말씀이다. 한 번 읽어보자.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 새... (막 6:30∼32)
 

예수님은 사역에 몰두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신다. ‘열심히 일한 자 더 해라.’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교회 안에 소음이 발생한다. 교회의 일꾼들은 수시로 주님의 뒤로 와서 그 피를 빨며 쉼과 위로를 얻어야 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를 세 가지로 전한다. 먼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다. 그 다음에 전도하는 것과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함이 뒤 따라 나온다(막 3:13∼15). 전도와 귀신을 압도하는 권능이 바로 주님의 그늘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주님의 뒤에 붙어 보혈을 빤다.

 

   
이현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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