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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녀와 고인돌
김율리 작가의 사색(1)
2024년 05월 29일 (수) 12:43:59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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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옥 집사(부산 거성교회)

 

달빛 아래 하얀 개구리 한 마리…. 배를 하늘로 하고 바닥에 누워있다. 온천천 산책로를 걷는 내내 들었던 개구리 소리, 유월이니 개구리가 한창 울 때이긴 하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 누웠니, 길 한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산책로 한가운데에.
 

걸음을 멈추고 앉았다. 오백원짜리 동전만 한 개구리의 하얀 배, 그 작은 배에 온통 모여드는 달빛, 가느다란 네 개의 다리, 다리 끝에 오그린 채 달려 있는 가늘고 뾰쪽한 발가락들. 이 아이를 여기 이렇게 뉘어 놓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개구리의 몸이 뒤로 푹 꺾인다, 기역 자 모양으로…. 허리가 꺾이면서 벌어진 개구리의 입, 작은 혀. 못 들었긴 해도 그 혀를 타고 쇠별꽃만 한 한숨 하나가 새어 나왔으리라.
 

자연사는 아닐 것이다. 이제 유월인데, 개구리가 한창 살이 오를 유월인데, 이렇게 길 한 가운데 허리가 똑 분질러진 채 죽어 있다는 것은…. 아마, 남의 손에 의한 죽음일 게다. 무심한 걸음에 밟혀 죽었다면 몸이, 피부가 이렇게 온전치는 못할 것이니까. 병이 나서 죽었다면 어디 풀숲이나 물가에서 몰래 숨어 죽었을 것이니까.
 

아직 다 크지 못한 개구리, 사람 나이로 치면 열대여섯 정도 될까. 생물학적인 암수 구분은 못 하지만, 배가 이렇게 파란빛이 돌도록 하얀 것을 보니 소녀가 맞을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신기해서 무작정 신작로로 나온, 어떤 무섬이 있는지도 헤아리지 못한 채, 물갈퀴 발가락 팔랑이며 걷다 억센 손에 낚여 채인, 그 마지막 눈동자에 비친 것은 반투명 초여름 달이었을.
 

개구리의 하얀 배에 하얀 달빛이 모여있는 걸 보니, 달도 안쓰러워 내내 개구리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온 세상 바닷물을 다 밀고 당기는 달이지만, 오늘 밤은 길에 누운 이 개구리 아이 하나를 어쩌지 못해 내내 눈으로 염려만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진 그 하얀빛이 조금은 사나움이 덜한 어떤 눈에 띄길 바라면서.
 

길에 그냥 두면 사람의 발에 밤새 밟힐 것이다. 물에 던져주면 물고기들이 뜯어 먹을 것이고, 어느 쪽이나 아프고 슬플 것이다. 죽은 뒤 무덤이 거창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 작은 개구리 소녀는 마지막 길이 조금 특별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죽음을 내가 기념해 줘도 되지 않을까.
 

꽃상여가… 흔들리는 곳이면 좋겠다. 둔치 중턱쯤, 배롱나무 아래 평평한 곳을 찾아 밥공기 하나만큼 땅을 파고 개구리 소녀를 뉘었다. 수의 대신 수국잎으로 몸을 감싸고 흙을 덮었다. 눌림 돌이 너무 크면 눈에 더 띄어 오히려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적당히 눌러줄 수 있되 너무 크지 않은 정도가 알맞겠다. 주먹 두 개 만한 돌로 눌러 주고, 잔돌 몇 개를 주위에 흩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게 했다. 사람에게는 작은 돌이지만 개구리로 보아서는 큰 바위 아래 안전히 누운 것이리라.
 

그날 이후, 배롱나무 아래 개구리 고인돌은 나만 아는 표식이 되었다. 산책로를 걸을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춘다. 잘 있니, 편안하니, 혹시 나를 기다렸니 속말을 건네기도 하며.
 

온천천에는 해마다 꽃들이 키대로 핀다. 얼음이 풀리면 팬지랑 수선화가 피고, 곧바로 영산홍이 피고, 초록 이파리 속으로 영산홍이 숨고 나면 수국이 핀다. 수국이 질 무렵이면 배롱나무에 꽃이 달린다. 꽃상여 같은 배롱나무…, 거미줄 바람에도 간들간들 떨리는 얇고 여린 꽃은 여름 내내 피고, 여름 내내 떨어진다. 비칠 듯 붉은 꽃잎은 개구리 고인돌 위에도 떨어져 잠시 머물기도 하고 꽃흙이 되어 덮이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면 온천천은 둔치 끝까지 물이 차올라 농구대를 꼴깍 삼킬 정도로 잠긴다.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이렇게 물에 잠긴다. 비가 오면, 엄마 무덤 떠내려간다고 개구리들이 운다더니, 많은 비가 오면 나도 개구리 무덤을 걱정한다. 눌러 둔 고인돌이 휩쓸려 가지나 않을지, 흙이 패여 나가며 그 작은 유체도 함께 떠내려가지 않았는지 마음을 쓰곤 한다.
 

하지만, 별 탈은 없을 것이라 또 무사할 것이라 믿는다. 눌러 준 돌 아래서 흙이 되고, 달빛 뽀얀 밤을 골라 배롱나무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라 그렇게 짐작한다.
 

‘올여름에는 배롱나무가 나를 멈춰 세울지도 몰라. 가만히 귀 기울이면 진홍빛 개구리울음이 조그맣게… 들릴지도 몰라.’

 

   
전성옥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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