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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의 삼위일체론
<베뢰아는 왜 이단인가?>(9)
2024년 04월 08일 (월) 12:25:46 허홍선 목사 webmaster@amennews.com

허홍선 목사/서울성락교회 전 수석부목사. 베뢰아아카데미 전 담당목사. 베뢰아대학원대학교 전 초대 교학과장

한국교회에는 소위 ‘귀신파’ 이단들이 한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기동, 이초석, 이명범, 한만영, 류광수, 김광신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중에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기동 씨(베뢰와아카데미, 성락교회)다.

그동안 김기동 씨의 이단성에 대하여 많은 교단은 물론 이단연구자들과 학자들이 나서서 비판하였다. 그렇지만 허홍선 목사보다 김기동 씨의 이단성을 속속들이 아는 분도 없을 것이지만, 그보다 이단 비판 기준이 되는 정통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분도 없을 것이다. 기준도 내용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베뢰아는 왜 이단인가>(허홍선/누가출판사)라는 책보다 귀신파의 이단성을 가장 드러낸 책이 없을 것이며, 유사한 다른 귀신파들까지도 알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며 본지에 연재한다.

                                           -편집자 주-

 

허홍선 목사

베뢰아의 삼위일체론

김기동 목사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아버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이신 한 분을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세 분이란 말이 아닙니다. 삼위를 한 분으로 부를 때에 하나님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말할 때에는 성부, 또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성부 위, 성자 위, 성령 위, 이렇게 삼위가 되십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삼위일체론이라는 말은 신학적인 용어이고 교리적인 용어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일체 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세 분인 것같아 보여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베뢰아원강, 197쪽)
 

   
김기동 씨의 베뢰아 원강에는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정통교회와 다른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베뢰아원강의 삼위일체 관련한 내용을 가르치는 모습.유튜브 캡처

성령은 은사를 베푸시고, 성자는 은혜를 베푸시고, 아버지는 사랑을 베푸신다. 하시는 일이 각각이지만 우리에게는 한 성령으로 나타내신다(베원, 198)

신이 아니면 하나님이실 수 없으니 신으로서는 성신이라고 하고, 자존자로서 조물주가 아니면 하나님이실 수 없으니 만물의 아버지라는 뜻에서 성부라 하고, 관념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실체라는 뜻에서 성자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 피조물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다는 말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다는 뜻이고, 우리도 그 뜻에 복종하면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다(베아15,10).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다. 아버지는 본질, 아들은 본체, 성령은 본영이시다. 그러나 신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신, 아들의 신, 성령의 신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도 완전한 인격이시고, 아들과 성령도 완전한 인격이시다. 그러나 셋은 한 분이시다(베아16,23).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자격과 인격이 각각 있다면 개체이기 때문에 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각이 개체가 아니시고 위가 각각이신 한 분이시다(베원, p.199).
 

하나님은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이십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실존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또 아무도 하나님을 체험한 자가 없지만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말할 때에는 성령이라 하고, 하나님의 실존을 말할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며, 하나님의 본질을 말할 때는 아버지를 말합니다(베원, p.207).

 

또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요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베원, p.356-357).
 

인자는 아버지 품 속에 나오실 때 예수란 이름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 이름이 불리지 않고 여호와 이름이 불렸습니다. 인자가 세상에 오시자 비로소 예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늘로 가시면서 이 세상에서 예수 이름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동안 여호와 이름으로 했던 것은 인자가 오심으로 폐하여 없어진 것입니다(베원, p.608).
 

또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십니다. 영이 아니시면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는 성령이 되십니다, 이렇게 본질, 본체, 본영은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시며, 그가 나타나셨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가 유일하신 자존자로 아버지시며, 모든 피조물에게는 본체로 나타나셨습니다. 삼위를 이렇게 이해해야 위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면 아버지시고 인자로 나타내시면 아들입니다, 예수는 자기 안에 계시는 이를 아버지라 하셨고, 우리 안에 계신 이에 대해서는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곧 어느 측면에서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74).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신 그리스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광 받기 위해 왕권으로 오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곧 성령이십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95).
 

만일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신다면 우리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만 계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은 그가 하늘로 가시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한 다음부터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이 제자들 안에도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과거 선지자들과 침례요한이 받은 성령충만은 모두 은사적인 것, 사역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 예수 안에도 계시고 제자들 안에도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 오해입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96).

 

하나님이 오래 전에 하늘에서 뜻하신 것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생애로 사셨고, 그가 하늘로 가신 후에 성령으로 오셨기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기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먼저 있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침례를 받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기 전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고 또 아버지의 뜻이 없었다면 아들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과 성령의 사역 중간에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동시에 역사합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46-47).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면 아버지시고 인자로 나타내시면 아들입니다, 예수는 자기 안에 계시는 이를 아버지라 하셨고, 우리 안에 계신 이에 대해서는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곧 어느 측면에서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74).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신 그리스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광 받기 위해 왕권으로 오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곧 성령이십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95).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96).
 

하나님이 오래 전에 하늘에서 뜻하신 것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생애로 사셨고, 그가 하늘로 가신 후에 성령으로 오셨기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습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46-47).
 

또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요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베원, p.356-357).
 

여호와는 하나님의 사자가 현현할 때에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이고,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인데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나 예수 이름은 둘 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이름은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으로 심판과 형벌은 하지만 은혜는 베풀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뜻입니다(베원, 2005년, p.541-542).
 

둘 다 하나님의 이름인데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신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마1:21)....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구약의 여호와를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했고, 신약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예수라 했습니다. 본래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름은 천사가 받은 이름이고, 예수 이름은 아들이 받은 이름입니다(베원, 2005년, p.123-124).
 

베뢰아에 와서는..... 여기는 장로교도 아니교 침례교도 아니고 베뢰아입니다. 그러니까 깨끗히 일단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종이에다 그려야 합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객체의 인격을 두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이 있고 예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예수가 있고 성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있고 성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인격, 성령의 인격, 3위의 인격이 각각 3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인격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면 인격이 각각이면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지금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아들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하고, 성서적으로 굉장히 무식하고, 언어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한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따로 생각하고 인격을 셋으로 만들면 큰일납니다.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볼 때 성령의 인격, 이쪽에서 아들의 인격, 이쪽에서는 아버지의 인격, 오직 인격은 하나입니다 ……각각 보는 방향에서 다른 것같이 이쪽에서 볼 때 얼굴, 뒤쪽에서 보면 뒤통수, 옆에서 보면 볼인 것 같이 인격은 하나입니다. 지금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은 한 인격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 따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바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 안에 있을 때 성령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이에게 하시는 겁니다." (베뢰아 강의 9-1. 1983. 6. 25)
 

   
김기동 씨의 신학사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베뢰아 본강>

김기동 목사의 이러한 주장들은 명백한 양태론이다. 그의 양태론적 주장은 계속해서 다음 내용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그의 주장이다.

또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십니다. 영이 아니시면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는 성령이 되십니다, 이렇게 본질, 본체, 본영은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시며, 그가 나타나셨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가 유일하신 자존자로 아버지시며, 모든 피조물에게는 본체로 나타나셨습니다. 삼위를 이렇게 이해해야 위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면 아버지시고, 인자로 나타내시면 아들입니다, 예수는 자기 안에 계시는 이를 아버지라 하셨고, 우리 안에 계신 이에 대해서는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곧 어느 측면에서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74).
 

베뢰아 강의를 처음부터 듣지 않으면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보완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꾸기 때문이다. <베뢰아원강>에서 말하는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가 이전에 주장했던 것과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세 분인 것 같아 보여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베원, p.197)
 

그는 명칭적으로는 삼위를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한 인격만을 인정하고, 삼위의 이름이 예수라는 주장은 정통삼위일체가 아니라, 일신교 즉 양태론이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Spirit)"은 성령이 아니라 천사라고 주장한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P.108).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로 지키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마귀론, P.61-65).
 

창세기 1:2의 “신”(르 아흐, Spirit)은 복수가 아닌 단수 명사이다.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은 복수명사다. 그러나 김기동 목사는 “신”을 한문 “神”으로 착각하여 “god”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에서 "신"은 한문으로는 "神"이지만 god 가 아니라 Spirit이다. <표준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옳게 번역하였다. “수면을 운행하다”라는 말도 “물로 결박하다”라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어 “하프”는 “알을 품다, 날갯짓을 하다, 날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것을 물로 결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영어 성경은 "하나님의 신"을 "성령"(the Spirit of God)으로 옳게 번역하였다.
 

[KJV]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NIV]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결론적으로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는 인격적으로는 한 분이시며, 그 삼위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전보다 더욱 이단적인 위험한 주장이다.
 

그러므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라고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믿을 때 성령 받았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믿은 사람도 성령을 받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분명히 성령은 예수님 부활하신 50일 후에 오셨습니다.(마귀론 상, p. 110)
 

김기동 목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각각 시간적인 차이가 있었으며,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으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고 또 아버지의 뜻이 없었다면 아들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p.46-47).
 

김기동 목사는 양태론을 시인하는 순간, <베뢰아원강>에서 주장한 모든 것들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장통합측 이단사면위원들 앞에서 자신은 양태론자라고 시인했다. "양태론"이 무엇인지 모르고 고백했음이 분명하다.
 

구약시대에 사사들이나 선지자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으므로"라는 말씀이 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령과 은사를 부어 주셨지만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신약시대에는 만인에게 부어 주시고 영원히 내주하는 성령으로 오셨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6-17)
 

그러나 김기동 목사는 구약시대에는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었으며, 그들은 양자의 영을 아직 받지 못한고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김기동, 마귀론 상, p.61)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겔 2:2)

[NIV] As he spoke, "the Spirit came into me" and raised me to my feet,
 

히브리어 원문 "내게 임하사"는 "came into me"( 내 안으로 들어오사)이며, 또한 에스겔 3:24, 다니엘 4:8, 4:18, 5:11 등도 모두 동일하게 "안에 거함"을 의미한다. 또한 누가복음 1:41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라고 했을 때와, 누가복음 1:67에 "그 부친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을 하였다"라고 했을 때 모두 안에 충만함이란 뜻으로 기록되었다. 구약에서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신'(Spirit), 곧 성령께서 150명의 장로들에게 동시에 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구약의 성령은 필요에 따라 부어주셨고, 신약에서처럼 영원히 내주하시는 성령이 아니었다.
 

김기동 목사는 창세기 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을 천사라고 주장했다가, 말을 바꾸어 “하나님의 신”은 천사도 아니고 성령도 아니며 '아담에 부어준 영'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신이 하나님이 신고 다니는 신발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창세기 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께서 오신 후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신’은 아담에게 부어주신 '아담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베원, p.678).
 

김기동 목사가 “하나님의 신”을 성령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은 그가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은 천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신”을 성령이라고 하는 순간, 그의 창조론은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신을 천사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담의 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기동 씨는 기존의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와 전혀 다른 가르침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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