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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야
김성일 단상
2024년 02월 05일 (월) 16:03:02 김성일 집사 webmaster@amennews.com

김성일 집사/ K&Lab 대표이사, 배우(탈랜트), 집사

 
▲ 김성일 집사

 신자들이 불건전한 교회에 출석하다 보면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교회 안에 계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맡은바 직임이 다를 뿐 성경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대등한 지체이자 원형공동체이다.
 

그러나 계급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일반 성도는 전도사에게 순종해야 하고, 전도사는 부목사에게 순종해야 하고, 부목사는 담임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집사나 권사에게 순종해야 하고, 집사나 권사는 장로에게 순종해야 하고, 장로는 담임 목사에게 순종해야 하는 구조이다.
 

필자가 오래전에 15년간이나 출석했던 여의도 모 교회는 심지어 프렌차이즈 회장 같은 왕 목사가 있어서 모든 목사는 이 왕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설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교회에 출석했던 교인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가톨릭은 성직자는 교황을 중심으로9가지 계급이 존재한다. 기독교 역시 계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장로 등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진은 중세로부터 이어져온 성직자 계급 9 가지 등급 (etoland.co.kr)

당시 그런 이유로 그들이 온갖 불건전하고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 요구에 무조건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 깊은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아무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 교회 교인들은 그런 프랜차이즈 창업주에게 수십 년간을 그렇게 세뇌당해 왔었기 때문이다.

후일 필자가 사업에 실패를 하여 엄청난 환란을 당하면서 그걸 극복하는 과정 중에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 말씀 속에서 진짜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런 계급 교회가 얼마나 참람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때문에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기쁨도 있었지만, 또한 그런 구조 속에서 나름 죽을힘을 다해 기쁨으로 충성 봉사했던 필자의 전 인생과 신앙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허탈감과 고통으로 필자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 그처럼 교인들을 조종할 때 그 교회 창업주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주로 사용했던 무기는 무엇인가? 그게 바로 에베소서 4:11에 단 한 번 나오는 ‘목사(牧師)’란 단어에서 비롯된 이른바 ‘목사제사장론’이었다.
 

‘목사제사장론’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른바 “‘목사’는 ‘하나님이 별도로 세우신 거룩한 직분으로서 영적인 권위를 지니기 때문에 오직 목사만 설교할 수 있고 축도 할 수 있고 안수할 수 있으며, ‘일반신자’는 당연히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전부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목사가 마치 하나님의 대리인 내지는 중간자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함정이다.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 항상 위의 에베소서 4:11에다 구약의 제사장에 관련된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합리적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에, 성경 지식이 부족한 일반신자들은 석연치 않다고 여겨도 그대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삯꾼들의 헛소리에 속아서 스스로 만든 자기 우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목사제사장론’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교주를 신성시하는 사이비로 악화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만병의 근원이 되는 ‘목사제사장론’을 당장 포기하고, 만일제사장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 걸림돌은 이 점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목회자들마저 현실적 이유에서 양심을 속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까지 속이고, ‘목사제사장론’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래야 당사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커서 그 탐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존경, 대접, 명예, 권위, 그리고 돈까지 다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에게 ‘목사제사장론’은 마치 선악과처럼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열매인 것이다.
 

이런 걸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주장하며 신자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바로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들이다. 이들은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 신사도운동에 근거하여 목회하는 목사들은 늘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며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한다. 그들은 교회의 양적 팽창과 교인의 숫자 증가를 부흥이라고 오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번 만번을 말해도 ‘교회 성장’과 ‘교회 부흥’은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니다.
 

교회성장이라는 것은 교인 수가 늘어나고, 교회의 재정이 커지고, 그래서 교회가 대내외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셩이 말하는 교회 부흥은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부흥’을 영어로는 ‘리바이벌’(Revival)이라고 한다. 그 뜻은 바로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즉 부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교인들이 다시 살아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이미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은혜를 상실하고 죄 가운데 빠져 있다가 철저하게 다시 새로워지는 역사를 부흥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흥은 교인의 숫자와 상관없다. 단 한 명이라도 그 심령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 복음으로 채워져서 새로워지면 그것이 전정한 부흥이다. 이때 교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죄에 대하여 `애통한 회개`가 일어나고, 세상과 이웃에 대한 진솔한 사랑의 섬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기복과 번영에 찌든 적지 않은 한국 교회들은 부흥의 참된 뜻을 변개한 ‘목사제사장론’을 장착한 종교기업이 성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용사들이 남아있다고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름도 빛도 없이 산간벽지 머나먼 타국 오지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수많은 선량한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과 교역자들이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악한 자리에 결코 서거나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낮은 자리에서 주님의 명령대로 맡겨진 양들을 돌보고 섬기시는 모습에서 참 부흥의 희망을 본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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