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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
김희건 빛 컬럼
2023년 09월 22일 (금) 16:12:14 김희건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전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이후, 예수님이 삼년간 가르쳤던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었다.

성경 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인지, 그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들은 사람인지에 따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과 그의 복음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서는 복음 아닌 복음을 전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자만, 먼저 하나님의 찾으시고 부르심의 경험이 필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만나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가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개인적으로 체험한 사람, 하나님이 만나 준 사람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 죄의 처절함, 자신의 무가치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신약의 베드로, 사도 바울, 교회 역사 속의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 죄의 실상을 깊이 체험했던 사람이다. "죽고 저주 받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 태어난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고백이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쉽게 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과 더불어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다. 그 아들로 인해 아브라함 자신의 가정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해를 받았던가! 그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엎드렸다. 왜 하나님이 그에게 "내 앞에서 완전하라" 하셨고, "할례를 행하라" 하셨던가? 잘못 사용한 몸을 심판하라는 뜻이고, 그런 심판의 흔적을 안고 사는 백성이 하나님의 참 백성임을 말씀하셨다. 오늘날에도 자신 속에 심판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이 훼방 받지 않기 위해서도,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을 불러 사용하신다. 그들은 교만하거나 자기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는 평생 잊지 못할 허물을 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이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다. 그런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 주시고 세우신 분은 주님이시다. 그런 주님을 체험한 베드로가 자신을 높일 수 있을까? 아니다. 평생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쓴 서신서에서 주님의 종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를 동이고 섬길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겸손하다. 자신의 작음과 부족함을 항상 의식하고 마음을 낮추고 산다. 하나님은 그런 겸손한 사람을 붙드시고 자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영달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대접받고 높아지는 것을 감히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과 사랑,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입은 자유가 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을 전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하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값싼 긍휼"이 되기 쉽다. 교회 세계에서 은혜를 전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전제되지 않으면 "값싼 은혜"로 전락하게 된다. 20세기 독일 신학자 본훼퍼는 그런 "값싼 은혜"를 경계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가장 강력하게 증거된 곳은 바로 십자가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쏟아진 장소가 바로 십자가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곳이다. 거기서 죄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나타났고, 그 진노 뒤에는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이 복음으로서 깊이와 가치가 있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를 향한 진노를 이해해야 한다. 그 말씀을 먼저 전해야, 그 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바른 깊이로 증거될 수 있다. 오늘날 교인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과 탐심과 같은 죄를 심상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값싼 은혜, 축복과 은혜를 강조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값싸게 전하기 쉽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한다. 죄에 대한 깊은 이해, 우리 죄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알게 된다.

복음의 시작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하였다. 인간의 죄, 타락한 인간의 행위와 삶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한 후에,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전하였다. 이것이 로마서의 구조고 순서이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이 두 가지가 같이 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를 향한 진노가 전해질 때, 그의 용서와 긍휼이 바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줄 거짓 선생을 많이 둔다고 경고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리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거짓 진리, 가짜 복음에 미혹되도록 내버려 두신다고 경고하셨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살후 2 12).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나,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약 시대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소리, 귀에 듣기 좋은 말을 전해 주었던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멸망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들은 항상 백성들 귀에 좋은 소리, 듣기 좋은 소리를 전함으로, 멸망을 앞두고, 회개해야 할 백성들의 영혼을 잠들게 했다.

이 시대 참으로 요구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은 만난 사람들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 부르심의 장소가 어디인가? 주님 달리신 십자가이다. 거기서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시고, 그 진노를 대신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 회개와 믿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그런 계시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함부로 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아들의 희생의 복음을 값싸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사람의 소리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사람들의 소리도 요란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영광을 찾는다.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값싼 은혜를 전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찾고 구한다.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전하기를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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