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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이…
장경애 사모 칼럼
2023년 09월 04일 (월) 11:28:02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어느 해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가을엔 시인처럼 살고프다’라는 생각을 하며 가을을 맞은 적이 있다. 푸르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옛 시인들의 시가 떠오른다. 시인 박두진 님의 시 ‘하늘’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이 정말 내게로 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하늘에 나도 안기고 싶어진다. 가을은 이렇게 하늘로부터 선선한 바람을 선물로 가지고 와서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든다. 그리고 살아온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들을 추구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계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하고 다음 계절을 내다보게 된다. 만물이 생동하고 산야가 푸르러지고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주는 봄도 어느 정도 지나면 우리들의 마음을 여름이 알기라도 하듯 성큼 다가온다. 가장 싱싱하고 활기차게 역동적인 여름도 찌는듯한 더위 속에 온갖 식물이 무르익어 갈 즈음이 되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줄 서늘한 가을을 기다린다.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들에는 곡식이 익어가고 갈색의 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겨울은 이미 우리 곁을 기웃거리고 있다. 가을의 절정을 지나 겨울 색이 차츰 두각을 나타낼 때가 되면 가을은 풀이 죽는다. 섭리에 순응하듯 아무 말이 없다. 숙연해진다. 그러면 겨울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성큼성큼 기세를 떨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맞은 겨울은 봄을 그리워할 추위를 안겨준다. 우리는 또 봄을 기다린다. 이렇게 돌고 돌며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가고, 인생의 계절도 가는 시간과 함께 그렇게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올해 여름이 유별났기에 여름 끝자락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역시 더 유별나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를 숙연케 한다. 물론 아직도 여름은 작별 인사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내 폐부를 서늘케 한다. 여름 날씨 장기 예보엔 범상치 않은 더위가 온다고 하여 긴장하고 여름을 맞았다. 정말 유난히 더웠다. 긴 날 동안 온 나라가 한증탕이 되었었으니까. 그런가 하면 비도 많고 태풍도 잦았던 여름이었다. 여름이 더우면 더울수록 유난히 가을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덥던 여름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계절의 순리를 위반할 수는 없다. 가을이 옴을 알리는 입추는 벌써 지났다. 창밖에선 여름이 가는 것을 애석해하듯 매미의 울부짖는 소리는 극에 달하여 마치 여름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시끄럽게 들린다. 그런가 하면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부터는 귀뚜라미가 제 계절이 왔음을 알리듯 으스대며 여유 있게 울고 있다. 마치 귀뚜라미는 이제 자기들의 계절이 되었으니 매미에게 조용히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듯하다. 가을의 전령사 격인 잠자리도 출현하여 맴돌고 있다. 낮은 짧아져 석양은 멋쩍은 웃음으로 일찍 찾아오고 시간은 사시사철 같은 속도건만 우리의 마음엔 갈 길을 재촉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창밖의 나뭇잎은 싱싱한 푸르른 색에서 조금은 지쳐버린 듯한 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조금씩 저만의 가을 잎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런 나뭇잎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아름답다고 하는데 인생 가을을 맞은 나는 과연 아름다운 모습으로 즐거움을 주는 저 나뭇잎처럼 아름다운 모습인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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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우수에 잠기고, 쓸쓸함과 허무감에 잠기게 한다. 선선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은 사색하기에 좋은 고독을 선물한다. 어쩌면 가을은 고독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돌팔이 철학도가 된다. 어디론가 한없이 달려가는 자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도 한없이 어디론가 가고만 싶어진다. 북새통을 떨며 어지럽게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지금은 한적하고 고독한 외로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은 나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가을은 왠지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기는 계절임이 틀림없다. 생각에 잠기다 보면, 우리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인생과 함께 살아온 날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 노래는 기쁨의 노래보다는 인생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4계절은 꼭 우리의 인생 여정과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청소년기를, 여름은 청년을, 가을은 장년을 겨울은 노년과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노년기 전에 맞이하는 갱년기를 쉽게 말해 사추기(思秋期)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계절의 가을에는 인생의 가을을 저절로 돌아보게 된다.

가을에는 여린 새싹에서 푸른 잎으로, 푸른 잎에서 단풍으로 살다가 떨어져 발에 밟히게 된 나뭇잎을 주어 책갈피에 고이 넣는다. 그 하나의 작은 잎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을 빗대어 생각해 보는 숙연한 시간으로 몰입하며 자신이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고 마지막 달까지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가을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도록 재촉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불신의 눈으로 보면 늙는다는 것이 서럽고, 쓸쓸하며, 산다는 것이 허무해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늙음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나의 생애를 더욱 아름답게 가꿀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은 것은 작별인사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마지막은 그런 것인가 보다.

올해도 가을은 이미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오려 한다. 가을의 햇살을 보며 ‘햇살이 가슴을 파고들며 상냥한 마음일 땐 지은 죄를 모두 털어 내며 빨랫줄에 걸어두고 싶다’라고 노래한 시인 이원상 님처럼 나도 냄새나고 찌든 마음을 말릴 수 있다면 따가운 햇살에 내다 널어 말리고 싶다. 곰팡이 핀 내 마음의 부분들까지 햇볕에 씻어 버리고 싶다. 붉은 노을의 배웅을 받으며 뽀송한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게 겨울을 맞고 싶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석양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올여름을 무사히 보내게 하심에 감사함과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한 시인 김현승 님의 가난한 마음처럼 지금 우리에게 주신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을 감사하고 싶다.
 

햇살이 좋은 날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늘진 잔디밭에 누워 한 편의 詩를 읽고 싶다。

햇살이 푸르도록 맑은 날엔

두 눈을 감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고 싶다。

햇살이 가슴을 파고들며 상냥한 마음일 땐

지은 罪를 모두 털어내며 빨래 줄에 걸어두고 싶다。

햇살이 눈 시리게 좋은 날엔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단정히 무릎을 꿇고 그들을 위해 한 줄기 맑은 祈禱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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