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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도 지나치면 ‘경솔’된다
확산되는 ‘솔직 신드롬’ 무엇이 문제인가
2003년 10월 15일 (수) 00:00:00 권영삼 032kwon@naver.com


최근 ‘솔직’에 대한 담론이 사회 곳곳에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약삭빠른 이들은 이런 트랜드를 활용해 ‘솔직’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신세대 그룹 ‘앤’은 <솔직해져봐>란 노래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도록 유도한다.
 
“좀더 솔직해져 봐/ 모두 숨기지는 마/ 널 헤아릴 수 있도록/ 이젠 가까이 와봐/ 오래 기다렸잖아/ 더 답답하게 굴지 마/ (중략) 솔직해져 봐/ 그렇게 속으로만 애태우지 말고/ 나에게 말해봐/ 좀더 솔직해져 봐/ 모두 모두 숨기지마.”

신세대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아는 1020세대는 톡톡 튀는 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인터넷 연재소설 작가 ‘이다’(필명·21)는 솔직한 일상을 담은 그녀의 그림일기 〈이다의 허접질〉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작가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대담한 솔직?
이다는 <이다의 허접질>에서 키스, 생리 등 은밀한 생각들을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서울여대 2학년에 재학중인 그녀는 만화와 미술 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기의 주인공으로 누드 아바타 ‘이다’(2da)를 만들어냈다. 아무 뜻도 ‘아니(이)다’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논리보다 감성을 앞세우는 또래의 내면을 대변하고 있는 것.

일기의 주요 내용은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2daplay.net)에 1년 전부터 공개돼 하루 최고 9천 명, 평균 4천여 명의 네티즌들이 찾는다. 작품의 인기 요인은 지나칠 정도의 솔직함이다. 캐릭터 ‘이다’는 겨드랑이 털이나 생식기 체모까지 묘사하는 데다 학교, 거리, 상점, 지하철, 도서관 등 평범한 공간에서 작가가 느끼는 비범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작가는 대담한 그림 위에 감수성 넘치는 글을 덧입혔다.

“키스를 입으로 하는 이유는 밖으로 나온 유일한 내장기관이기 때문이야 …(중략) 너의 내장을 먹고 싶어”라는 직설적 표현이나 “엉덩이가 발달한 이유는 생식기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야”라는 도발적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다는 “일기도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겼다”며 “이다의 아바타를 누드로 그린 것은 별다른 뜻 없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진솔’과 ‘경솔’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솔직’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기탄없이 얼굴이나 행동에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긍정적인 모습보다 부정적인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솔직하다 못해 파격적이어서 때론 듣는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과 표현 스타일도 도마에 자주 오르내린다.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 깽판 쳐도 좋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취임 이후에도 그의 파격발언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솔직함보다는 신중함을 더 요구하는 자리”라고 질타했다. 눈물을 보이는 대통령에 대해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눈물은 그가 나약한 대통령이란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어 지도자로서의 위엄마저 잃게 할 수도 있다. 위엄 있고 냉정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권위주의와 치장을 벗고 대통령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보일 때 국민에게 진솔하게 다가설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의 솔직함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대통령의 솔직함은 ‘진솔’과 ‘경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 ‘솔직’은 생산성과도 관련이 있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직원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경우, 대부분의 문제는 큰 수고 없이 스스로 해결된다는 것.
 
LG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팀워크와 대화 등 ‘소프트한’ 기술이 갈수록 중요시되는 기업 환경에서 CEO와 부하 직원들 간에 솔직하게 대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정보 시스템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꼭 ‘솔직’만을 부추기는 것 같지는 않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느냐”는 말기암 환자들의 질문에 미국 의사들은 대부분 솔직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시카고대 메디컬센터의 엘리자베스 래몬트 박사가 미국 내 과학회가 발행하는 <내과학보>에 발표된 조사보고서에 발표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326명의 말기암 환자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한 시카고 지역의 의사 258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해 실시한 조사 결과 37%에 불과한 의사만이 자신이 판단하는 예상 생존 기간을 솔직히 말해 주었다고 밝혔다. 23%는 남은 생존기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대답을, 40%는 솔직하지 않은 대답을 해 주었다고 답변했다.

성도의 참된 ‘솔직’
얼마 전, 구역장 A 집사는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 때문에 교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그녀는 담임목사와 함께 B 집사 심방을 갔다가, B 집사의 은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평소 소탈하고 숨김없이 말하는 성격을 알고 담임목사는 A 집사에게 신신당부했건만, 중보기도를 요청한답시고 B 집사 이야기를 교회에 공개해 버린 것이다. 이 일로 결국 B 집사는 교회를 떠나야 했다.

크리스천에게 ‘솔직함’과 ‘경솔함’이 혼동되면 그 피해가 심각해진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3장은 ‘솔직’을 위장한 ‘경솔한 말’에 대해 경고한다.

즉, 크리스천은 ‘혀’를 잘 사용할 것과 혀의 ‘파괴력’을 염두에 둘 것 그리고 혀를 얼마나 잘 다스리는가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원리를 제공한다. 크리스천에게 요구되는 솔직함은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삶에 대한 것 등 전방위적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께 자신의 이방인 됨과 소외되고 쫓기는 죄의식 속의 삶을 솔직하게 말했다.

주소망교회 강훈식 목사는 “교회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이러한 신자야말로 주님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솔직한 신앙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전교회 박건 목사는 “예레미야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에게 보여 주는 태도는 하나님 앞에 솔직함이었다”며 성도는 자신이 처한 기분과 느낌에 대해 하나님 앞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구덩이에 빠진 예레미야가 드린 기도는, 아름답고 멋있고 감정을 억누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분노와 두려움을 표현하는 솔직한 기도였다며 이렇듯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다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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