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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종교 극장이 아니다
2009년 11월 09일 (월) 05:27:50 장경애 jka9075@empal.com


<예배인가, 쇼인가> 중에서
A.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규장 펴냄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사는 목회자와 교회는 질적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양적 팽창을 추구하고, 정상적인 성장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과장을 통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구성된 대중은 소리 높여 양적 팽창을 주장하며, 영원하고 충실한 가치를 추구하는 목사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한다. 목회자의 느린 방법을 비웃으며 빠른 결과와 인기 영합만을 요구하는 ‘잘못 배운’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잔인하게 압력을 가한다. 이런 교인들은 그들이 즐겁게 휘파람을 불 때 목회자가 춤추지 않는다고, 그들이 변덕이 나서 슬픈 피리 소리를 낼 때 목회자가 울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스릴 넘치는 일에 목말라 있다. 그러면서도 감히 나이트클럽에는 가지 못하겠고 그런 것들을 도리어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하자. 오늘날의 기독교는 너무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도 종교영화를 볼 수 있고, 라디오나 댄스파티에서도 기독교음악을 들을 수 있다. 기독교는 또 하나의 오락이 되어버렸다. 복음주의자인 우리는 우리의 참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가 매우 대중적인 종교인데도 우리는 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우리에게 죄의 깨달음과 회개와 경건한 슬픔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영혼을 비워야 할 때‘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그것은 우리 영혼에서 세상적인 것들을 몰아내어 깨끗이 비운 다음 하나님으로 채우는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육신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비우려고 하지 않는다. 육신의 행복에 대한 집착이 너무 하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행복감을 얻지 못할 경우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행복해지려고 매우 애를 쓴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십자가가 있다. 이 십자가는 개인적이고 내적이며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자발적으로 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힘들고 쓰라리고 아프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통을 참으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속해 있는 복음주의 사람들조차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으니 우리는 이제부터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갈보리 언덕 위에 서 있는 십자가는 우리 마음속의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가 성령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의 십자가로 바뀔 때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십자가는 우리에게 능력의 십자가가 될 것이다.

쾌활하고 자신감에 차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는 그다지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들은 경축의 종을 울리는 일을 좋아하고 마치 게임 쇼의 진행자처럼 활력이 넘친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세상의 나이트클럽에 마음 놓고 갈 수 없어서 교회를 나이트클럽처럼 활용하는 것뿐이다.

이제까지 기독교 예배의 질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온 반면, 즐거움을 얻기 위한 종교적 연예오락은 계속 번성해왔다. 안타깝게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의 마음이 진공 상태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애쓴다. 크리스천들은 성령님의 술을 즐길 수 없을 때 육신의 술을 찾는다. 기쁨이 없고 메말라 있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오락거리에서 기쁨의 단물을 짜내려고 애썼다. 그들이 아는 유일한 종교적인 기쁨이란 복음성가를 대중가요처럼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선생들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 우리는 참행복의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먹고 마시고 요란스레 행사를 치러야만 행복을 느끼는 체질로 변하고 말았다. 복음주의적 교회는 이런 체질을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설령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가까운 시일 안에는 힘들 것이다.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령님이 자기에게 반드시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님의 불이 아닌 다른 불 옆에 서서 불을 쬐며 따뜻하게 기운을 북돋우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영화관 다음으로 연예오락성이 강한 장소를 찾으라면 교회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세기 동안 교회는 온갖 형태의 세상적 연예오락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견지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교회는 세상의 비판에 염증을 내며 세상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연예오락’이라는 큰 신을 이길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그와 연합하여 그의 힘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낫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적 연예오락을 제공하는 데 수백만 달러의 돈을 쏟아 붓는 놀랍고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적 연예오락이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일들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여러 곳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 위에 우뚝 서야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이다. 결국 그들의 견해도 십자가 아래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얄팍하고 세상적인 지도자들은 심지어 성소 내에서조차 연예오락을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십자가를 왜곡시킨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영적인 재앙을 불러들이는 일이며, 어린양이 사자처럼 분노하시도록 만드는 일이다.

성숙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부끄러운 기독교인들이 자꾸 기독교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희한한 단체들이 생겨나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그렇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독교와 연예오락을 혼합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설립되고 존재하는 단체들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공연자들이 공연하고 관객이 돈을 지불하는 종교 극장이 아니다. 교회는 구속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하나님에게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께 나아온 그들은 그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이들이다.

참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회는 연예오락으로 즐거움을 얻으려고 애쓰는 법이다.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하는 사람은 연예오락이라도 제공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는 ‘종교적 연예오락’이라는 큰 이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 예배가 현재보다 더 낮은 수준에 처했던 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많은 교회가 예배드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예배가 밀려난 자리에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상하고 낯선 것이 들어와 있다. 본래 무대와 관련하여 사용되던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지혜로 예배에 적용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제는 아예 예배로 통하고 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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