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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아래 평화의 땅, 철원
기독교유적과 함께하는 여행 2
2009년 10월 18일 (일) 06:34:15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철원은 분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철원!하면 아직도 포연이 자욱하고 화약 냄새로 코가 아릴 것 같은 막연한 장면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관광책자에서 철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와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 철원이다. 단지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철원에 소중한 기독교유적이 있기에 다녀왔다. 강원도에 있는 철원은 예상외로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철원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아마 ‘폐 노동당사’를 꼽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려 건물외곽만 남아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건물. 철원을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들른 곳도 옛 노동당사 건물이다. 워낙 유명한 건물이라 한눈에 알아봤다. 주변에 들판만 있어서 더욱 눈에 들어온다. 20대에는 아마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서 이 건물을 처음 접한 이들이 많을 테다. <발해를 꿈꾸며>라는 통일을 염원하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할 때 바로 이곳 노동당사에서 촬영을 해 화제가 됐었다. 2002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1947년 철원이 북한의 땅이었을 때, 노동당사 건물로 지어진 3층 건물이다. 하지만 내부는 전쟁당시 폭격으로 다 무너져 내려 현재는 외벽만 남아있다. 노동당사 뒤쪽 방공호에서 많은 유골과 실탄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고문과 학살이 행해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외벽에는 포탄 자국과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당시 이처럼 웅장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주민들의 노동 착취로 가능했을 것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여러 가지로 슬픔이 느껴진다.

현재 노동당사 주변은 환경개선 공사 중이다. 내년 6월이면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깨끗한 관광지로 새 단장할 예정이다. 깔끔해진 주변과 노동당사는 왠지 어색할 것 같다. 노동당사 주변에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장면이 더 익숙한데…. 이러한 선입견이 노동당사를 랜드마크로 삼고 있는 철원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 같다. 깔끔해진 노동당사가 아픈 한국역사를 직접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노동당사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앞서 말한 소중한 기독교유적이 있다. 옛 철원감리교회 예배당이 노동당사보다 더 처참하게 무너진 채로 이곳에 있다.

철원감리교회 예배당은 1937년 9월 30일 건축됐다. 건축당시 교회는 주일학교 학생을 포함해 500여명이 다니고 있었다. 광복 후 공산 치하에서 기독교 청년학생들의 반공투쟁이 전개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 처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도실이 있었던 지하실은 양민학살의 장소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철원감리교회의 크기는 가로 24m, 세로 12.2m의 현무암과 화강암을 쌓아 만든 석조건물이었다. 현재 예배당은 입구 부분과 기둥 부분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아치형 입구가 당시 웅장했던 건물을 대략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서 있다.

노동당사와 함께 분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철원감리교회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었던 것은 철원이라는 지역의 덕분일 것이다. 철원이 서울과 30분 거리였다면, 아마도 수십 년 전에 이미 두 유적은 흉물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지역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철거됐을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철원에는 전쟁의 상처만 가득한 볼거리뿐일까? 철원이 슬프기보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은 한탄강을 통해 한 눈에 알게 된다. 한탄강은 금강산 아래쪽에서 발원해 연천군 전곡면에서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굽이치는 강의 풍경은 동강의 아름다움보다 더 매력적이다. 한탄강은 여느 강과는 다르게 대부분이 협곡이다. 그 한탄강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세운 것으로, 고려 충숙왕이 노닐던 곳이라고 하며, 조선 명종 때에는 의적당의 두목 임꺽정이 고석정 건너편에 돌 벽을 높이 쌓고 칩거했다고 전해진다. 고석정 입구에 있는 많은 식당들을 지나 계단을 이용해 고석정으로 내려가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장관에 한동안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 이런 지형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빼어난 경관이다.

   

한탄강이 협곡이기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명소가 고석정이라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명소가 바로 ‘승일교’다. 승일교는 늘씬하게 쭉 뻗은 교각이 참으로 멋지다. 협곡이기에 저 미끈한 교각이 더욱 맵시가 난다. 승일교 아래를 흐르는 한탄강의 매력 또한 빼어나다. 승일교로 흘러들어오는 강은 비교적 잔잔하다가 승일교 아래에서 갑자기 협곡을 이룬다. 승일교는 한탄강 전망대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승일교는 북한이 착공해서 남한이 완공한 남북합작 다리다.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합쳐서 다리 이름을 지었다거나, 김일성을 이기자는 의미로 ‘승일’(勝日)이라고 했다는 등 다리 이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다리이름의 유래는 완공했을 당시 지휘관이던 군단장이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고 박승일 연대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철원은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해 슬픈 마을이 아니다. 철원은 어느 동네보다 평화롭다. 넓은 철원평야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철새들도 철원의 평화로움을 일찍이 알고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철이면 천연기념물인 독수리를 만날 수도 있다. 철원에는 포연이 없고, 화약 냄새도 나지 않는다. 넓은 평야로 시각이 깨끗해지고, 굽이치는 한탄강의 물소리로 청각이 맑아지기 충분한 곳이다.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지만, 휴전선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평화로운 풍경을 보상받았다. 남북이 합작으로 굽이치는 한탄강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다리도 세워놓았으니, 이제 철원을 안보관광지라는 살벌한 이름이 아닌 ‘평화의 땅’으로 즐기고 싶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이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가 또 있을까? 철원은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게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전쟁으로 기억되는 도시 철원, 하지만 지금껏 만나본 수많은 도시 중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망설임 없이 꼽을 수 있는 곳, 또한 바로 이곳 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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