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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복음대로 사는 윤리>
‘참된 윤리’, 기독교 안티까지도 포용한다
2009년 09월 09일 (수) 08:18:33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 문시영 지음, 북코리아
기독교에 대한 ‘안티’, 즉 반대하는 세력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세상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에 대한 비판도 그 수위를 넘은지 오래다. 특히 인터넷에 도배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은 역겨워서 열어보기 싫을 정도다. 문제는 그 안티 세력으로 인해서 복음이 막힌다는 데 있다. 이에 어떤 이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된다고 한다. 또 모두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혁명적인 발언을 하는 이도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왜 한국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복음대로 사는 윤리>(문시영, 북코리아)는 이에 대한 답으로 ‘윤리’를 제시한다. 기독교가 놀라운 복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윤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복음조차도 무시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생각, 옳지 않은 행위를 일삼는 우리들(그리스도인들)이 문제이지, 교회 그 자체가 혹은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p.13). 따라서 인간에게 해당되는 윤리가 바로 세워지면 교회, 기독교의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자 문시영 교수(남서울대학교,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회장)는 오늘날 기독교가 공격을 받는 원인을 시민사회의 성숙도에서 찾았다. 시민사회가 갈수록 성숙해져 감에 따라 교회가 소위 은혜라는 이름으로 대충대충 해왔던 일들이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교회가 시민사회보다 앞서 계도적 위치에 서 있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투명성, 공공성, 민주성, 도덕성 등에서 시민사회가 교회보다 앞서는 면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그 예로 성실납세, 교통법규준수, 병역의무완수, 장한시민되기, 심지어 교회의 주차문제 등을 들었다(p.96). 그 영역들에서 교회가 충실하게 비춰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 비해 교회가 그 기본기에서 오히려 뒤쳐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20~30년 전과 정 반대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교회가 시민사회를 뒤따라가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세상의 문화의 특징을 ‘폭력과 소비주의’로 요약하고 있다(p.72). 따라 갈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저자는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윤리의 핵심을 ‘긍휼’로 보았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느니라”(약 2:13)는 성경구절을 강조하며 긍휼해야 함을 외쳤다.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성품의 변화이다(p.36). 이는 복음을 근거로 한다. 진실된 윤리는 복음을 바탕으로 성품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단순한 행위(doing)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존재(being)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또한 ‘비전’을 품게 한다. 그게 윤리의 필수요소다. 단순히 좀 더 나은 시민사회가 될 것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회가 될 것을 품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덕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구세주의 이야기를 하는 덕스러운 사람이 될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p.82). 복음적이지 못한 관행, 복음에 어긋나는 문화 그리고 복음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 등을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성품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교와 교회 행사를 예로 들었다. 복음을 전하기보다 여러 가지 간증이나 자신의 생각을 강연하는 행위,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는 각종 행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가장 핵심적인 ‘복음’을 정확하게 붙잡자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윤리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다. 저자는 두 사람의 신학자를 거론했다(p.88). 스탠리 하우어와스(Stanley Hauerwas)와 스택하우스(M.L. Stackhouse)가 그들이다. 하우어와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가 먼저 탁월한 윤리적 성숙을 보여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반면에 스택하우스는 교회가 밖으로, 즉 공공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요구했다. 공공의 영역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교분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스택하우스는 신앙인들이 정치에서 떠나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바람직한 정치, 책임정치를 위한 관심과 노력을 더 하라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현실정치에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시켜 관료나 정치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시민사회를 위해 교회가 공적인 책임을 다 하자는 뜻이다(p.109).

저자는 기독교 윤리란 ‘냉소적 비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직책, 비난, 정죄, 폭로 등과 같은 부정적인 면만 부각된 것에 안타까워했다. 언론이 시청률이라는 굴레로 그 역할을 감당했음을 지적했다. 또 우리 스스로 가 갖고 있는 ‘자정능력 상실’ 의식도 덧붙였다.

은혜와 긍휼이 또 하나의 큰 축임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했다. 세상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어떻게 변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그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그래도 교회가 제격이다. ‘교회만한 곳도 없다’는 혹자의 말이 이에 잘 어울린다(p.127). 그래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교회뿐이라는 말이다. 교회에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역할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참된 윤리는 교회를 교회답게 세움과 동시에 기독교 안티 세력도 온전히 포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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