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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과 천지창조
2009년 08월 31일 (월) 07:14:34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어린 시절, 저녁 아홉시가 되면 TV에서 뉴스하기 전 ‘이제 어린이들은 잘 시간입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나왔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TV 시청을 멈추고 잠자리로 향했다.

그 삶의 법칙이 예외로 적용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12월 31일 밤이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10대 가수 가요제’라는 것을 했고, 온가족은 둘러앉아 그것을 열심히 시청하곤 했다. 그 해의 최고 가수상은 조용필이 가져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송구영신 중계방송.

요즘은 광화문과 종로를 가로막고,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카운트다운을 한뒤 온갖 폭죽이 하늘을 뒤덮지만, 당시에는 제법 숙연했던 분위기로 기억된다. 그때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순간이면 항상 서울 종로의 보신각종과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성덕대왕신종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 순간은 경주 시민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한국의 수도인 서울시민을 앝잡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로 보신각종과 에밀레종의 소리 차이가 나로 하여금 우월감에 빠지게 했다. 마치 에밀레종이 나의 종이라도 된 마냥.

실제로 에밀레종과 보신각종의 소리 차이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만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에밀레종의 장중하고도 울림이 깊은 소리에 비하면 보신각종은 한낱 깡통소리에 불과했다. 과장된 표현 같지만, 정말 그랬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신각종은 에밀레종을 본 따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리만큼은 재현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요즘 에밀레종 만한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제조기술이 발달해도 에밀레종을 다시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의 아들인 경덕왕이 만들려고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혜공왕 7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경덕왕의 재위기간이 22년이었으니.. 종 하나 만드는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지금이라도 30년 걸려 종을 만든다면, 혹시 그런 소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친 기간동안 작품에 전념했다고 한다. 천장화이기 때문에 작업대를 쌓아올려 천장 밑에서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 과정에 떨어지는 유독물질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시력은 매우 나빠졌으며, 매일 누워서 작업을 하다 보니 심한 욕창이 생겼다고 한다.

신앙심과 예술적 장인정신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걸작이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신앙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노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되나 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걸작 기독교문화재가 하나쯤 나왔으면 좋겠다.

   

그 깡통소리 내던 보신각종은 아직도 치고 있고, 에밀레종은 2004년을 끝으로 더 이상 타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은 쳐야 오래간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속설’이라고 일축하고 종을 더 이상 종이 아닌 박제물로 만들었다. 1200년이라는 세월동안 잘 쳐오던 종을 우리 세대에서 그만 치기로 결정했으니, 참으로 과감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시대의 판단이 1200년 동안의 판단보다 현명한 결정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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