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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 명령한다
2009년 08월 28일 (금) 08:17:10 장경애 jka9075@empal.com

 <그 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 중에서
리처드 포스터 지음/ 조계광 옮김/ 생명의말씀사 펴냄


겸손에 이르는 길
겸손은 가장 으뜸이 되는 신앙의 미덕 가운데 하나다. 자기를 내세우는 자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으며, 거들먹거리는 교만한 모습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참된 겸손은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모든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게 된다.

이렇게 겸손은 아름답지만 손에 잡히기 어려운 무지개와 같다. 원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원하면 원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진다. 마침내 겸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겸손을 잃고 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겸손을 습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순종이다. 거룩한 순종만이 겸손에 이를 수 있는 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겸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온 마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생각하자. 그러면 마음에서 이기심을 몰아낼 수 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면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릴 수 있다. 토머스 켈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눈이 멀어야만 겸손해 질 수 있다. 이는 마치 계속해서 태양을 쳐다보다가 다른 사물을 보면 잠시 동안 눈앞에 태양만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만 바라보면 자아도, 개인의 명예도, 수치심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 보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 나는 매순간마다 얼마나 교만과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던가?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실망하며 괴로워하다가 사람들의 작은 관심을 끌어 보려는 자신의 허영심을 깨닫고 뉘우친 적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겸손의 미덕을 풍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으로 ‘나도 저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탄식할 때도 있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7,8 참조)

앞의 말씀대로 겸손과 복종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것이 바로 겸손에 이르는 길이다. 겸손은 오직 복종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영혼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갖는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뿐이며, 하나님만 바라본다. 물론, 하나님의 모습이 잘 보일 때도 있고 흐릿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모든 이기심은 사라질 것이다.

진정한 용서
죄의 고백은 개인적인 차원은 물론 공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성도들의 관계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누군가가 죄를 지으면 온 교회가 나서서 적절한 절차를 밟아 그를 바로잡아 주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한 사역이 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중세시대 초에는 이런 관습이 점차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되었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서만 처리되는 문제로 간주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처음에 죄의 고백은 결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죄의 고백이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죄 때문에 교회가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적절한 화해 절차를 제정하셨다. 물론,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사람들을 통로로 삼아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다.

서로 어울려 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상처받은 개인과 교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용서일까? 흔히 사람들은 다음 네 가지 태도를 용서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첫째, 받은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종종 “괜찮아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를 용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는 단지 감정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 상처를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보다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 현명하다.

둘째,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태도이다. 흔히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처를 받으면 결국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용서한 뒤에도 얼마든지 오랫동안 상처가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태도를 용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잊는 태도이다. 흔히 용서하고 잊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상대방을 원망할 일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에 불과하다.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으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강요이자, 용서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넷째, 상처를 입기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절대로 예전과 같은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더 나은 관계가 이루어졌다 해도, 결코 예전과 같은 관계가 유지될 수는 없다.

진정한 죄의 고백과 용서는 교회에 기쁨을 가져다주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치유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져온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말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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