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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
은사에 대한 네 가지 관점
2009년 08월 17일 (월) 06:42:28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성령님은 오늘날 교회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령님은 지금도 실제로 신유와 예언과 방언의 메시지를 주고 계신가? 우리는 오늘날 신약시대에 사도들의 생애에서 발견되는 것과 똑같은 기적의 빈도와 능력을 기대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너무나 넓고 흥미로운 토론의 영역이며 오늘날 교회생활에 있어 무척 중요한 주제다.

본서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리처드 개핀 외 3인 공저, 부흥과개혁사, 2009년 8월 1일 발행)는 이런 주제를 다룬다. 물론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거의 없다. 그래서 본서는 먼저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과 서로 다른 관점들의 주요 입장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예언·방언·신유 등과 같은 기적적인 은사는 1세기에만 국한되었으며, 사도들이 교회를 세워가고 있었고 신약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는 관점을 취하는 게 은사중지론의 입장이다. 또, 교회가 기적적인 은사보다는 전도와 성경연구와 신실한 순종을 개인 및 교회성장의 열쇠로 강조하는 한편 오순절 은사주의 및 제3의물결 교회들이 복음주의 진영에 가한 신선한 혁신적 도전을 높이 평가하는 게 신중수용론의 입장이다.

나머지 두 관점은 은사중지론과 신중수용론의 입장에 반대하는 편에 서서 오늘날의 모든 영적 은사의 사용을 장려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은 회심 이후에 성령세례를 추구해야 하며 그러한 체험은 사역에 새로운 영적능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고, 제3의물결 신봉자들은 모든 신자들의 복음선포에 보통 ‘표적과 기사와 기적’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는 사실상 분리해야 하지만(오순절은 1901년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주의적인 부흥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은사주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은사주의적 부흥운동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본서가 5가지 관점을 소개할 경우 균형감각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은사주의를 오순절주의에 포함시켰다.

본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네 관점’을 비교하기 위한 공정한 형식을 제시한다. 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4명, 즉 리처드 개핀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조직신학/ 은사중지론), 로버트 소시 교수(탈벗신학교 조직신학/ 신중수용론), 새뮤얼 스톰스 목사(캔자스시티 메트로 빈야드교회 부목/ 제3의물결), 더글러스 오스 교수(센트럴성경대학-하나님의 성회-해석학 및 신약학/ 오순절주의)에게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 외에 3가지 관점에 대한 논문을 반론하도록 하고, 17시간의 토론회를 진행한 후 편집해 책으로 엮었다.

필자들은 비판과 명료화와 변호가 가능한 상호 대화의 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한다. 편집을 맡은 웨인 그루뎀 교수(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성경 및 조직신학)는 그리스도인들이 초자연적 은사에 대한 논쟁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과 다른 이들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안내한다.

이때, 4명의 저자들은 5가지 주제를 순서대로 다룰 것을 요구받았다. ① 성령세례와 회심 이후의 체험에 대한 문제 ② 일부 은사들이 중단되었는지에 대한 문제 ③ 특정한 은사, 특히 예언·치유·방언에 대한 논의 ④ 교회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인 함의 ⑤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의 위험성 등이다.

결론은 이렇다. 필자들은 성령께서 교회시대에 역사하시는 방식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해 성령께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병을 고치시고 인도하시며 기적을 일으키시고 사역을 위한 특별한 능력을 주시며 어떤 것을 머리에 떠오르게 하실(또는 어떤 것을 계시하실) 것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기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상당히 달랐다.

   

필자들은 또한 오늘날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실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도록 얼마나 권면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다.

필자들은 하나님이 때때로 어떤 것을 갑자기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실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지만 스톰스와 오스는 이를 ‘예언의 은사’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 반면 개핀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이 성경적 특성을 지닌 말씀을 주시는 일에만 국한되며 이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끝이 난 은사다. 소시에 따르면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실 수 있지만 이는 보통 예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도하심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소시는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영감’되고 오류 없는 예언을 주실 수 있는 가능성도 인정했다.

방언 및 통역의 은사에 대해서 개핀과 소시에 따르면 이 두 은사는 하나로 합쳐지면 성경과 같은 특성을 지닌 성령의 계시를 구성한다. 개핀은 이 두 은사가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열린 정경’의 상황에서만 가능했다고 믿는다. 반면 스톰스와 오스는 방언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계시가 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기도와 찬양이라고 믿는다. 성령이 시키시는 방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성경과 같은 성질의 말씀은 아니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오스는 덧붙인다.

회심 이후의 성령의 능력 부여 사역에 대해 오스는 처음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이를 ‘성령세례’라고 부른다. 나머지 필자들은 성령에 의한 ‘능력부여’나 ‘충만’이나 ‘기름부음’ 같은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필자들은 모두 기적에는 여러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개핀과 소시는 1세기에 있었던 복음의 메시지의 첫 확증을 기적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보는 반면 스톰스와 오스는 복음의 메시지를 모든 시대에 증언하는 일,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같은 다른 목적도 똑같이 강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신약시대의 교회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보아야 하는가는 필자들 사이에서 가장 근본적인 의견차이가 나타난 문제였다. 스톰스와 오스는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약시대의 패턴을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은 개핀과 소시에게 왜 유독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영역에서만 오늘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본보기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지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개핀과 소시는 사도들에게 유일무이성이 있었다는 점, 즉 오늘날에는 더 이상(초대 교회를 세우고 성경 말씀을 직접 기록하거나 기록된 글을 확립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라는 의미에서의) 사도가 없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켰다. 사도들의 존재는 ‘열린 정경’의 상황과 더불어 신약시대를 오늘날과 무언가 다른 시대로 만드는 요인인데도 스톰스와 오스는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 신약성경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개핀과 소시는 지적했다. 그리고 스톰스와 오스도 심지어 신약시대에서조차 사도들의 생애 속에서 초자연적 능력이 비상하게 집중된 때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왜 그들은 오늘날 구체적으로 이 초자연적 활동이라는 영역, 사도들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이 영역에서 중대한 차이를 인정하기를 주저하느냐고 반문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날 신약시대에 사도들의 생애에서 발견되는 것과 똑같은 기적의 빈도와 능력을 기대해야 하는가? 스톰스와 오스는 그보다 약간 못한 정도로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시는 상당한 정도로 적게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핀은 소시보다 더 적게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교착 상태에서 끝났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4명의 대변자들은 △성경에 대한 확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경험하는 일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한편, 편집자인 웨인 그루뎀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신앙적 배경으로 인해 “이 ‘네 관점’을 각각 신봉하는 사람들의 진실함과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각각의 입장이 모두 똑같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어떤 관점이 가장 성경에 충실한가에 대한 문제는 독자들이 결정할 몫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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