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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소명을 왜곡시킨다
2009년 07월 24일 (금) 08:30:29 장경애 jka9075@empal.com

 <소명> 중에서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펴냄

교만은 전통적으로 일곱 가지 큰 죄 중에서 가장 첫 번째요, 가장 나쁜 죄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현대 세계는 교만의 정의를 자경심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이 악덕을 미덕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그래서 교만은 더 이상 ‘좌천’의 원인이 아니라 승진의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에 의해 당신이 충분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교만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미덕 중 하나였다”고 여배우 데임 시트웰은 썼다. “나는 특정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중대한 죄로 여긴 적이 전혀 없었다.…나는 인간의 교만을 위축시키는 모든 것을 경멸한다.”

그러나 중대한 죄로서의 교만은 자경심, 곧 자신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의식이란 의미의 교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의 유사어들을 생각해 보라. 이기심, 거만, 방자. 자기 본위, 허영심, 자고함, 건방짐, 자랑, 잘못된 자부심, 자기 만족, 자기 중심주의 등등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소명의 왜곡된 열매인 자만심도 마찬가지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영적인 삶에서 최악의 저주는 자만심이다”라고 썼다.

자만은 두 가지 특정적인 방법으로 소명을 왜곡시킨다. 첫째, 부름 받은 사람은 소명 자체가 매우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교만에 특히 약하다. 유혹이란 유혹하는 자가 유혹 받는 자를 칭찬할 때 발생하는 법인데 따라서 가장 강한 유혹은 가장 교묘하게 온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는 지름길로 유혹하는 것이 가장 매혹적이다. 따라서 가장 고상한 우리의 열망을 왜곡시키는 것은 가장 저급한 열망을 왜곡시키는 것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일이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교만의 사악한 전략은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아니라 가장 큰 강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상한 마음이 탁월하게 짓는 죄다.”

둘째, 부름 받은 우리는 특정한 종류의 교만에 특히 약한데, 그 이유는 군중의 인간적인 칭찬을 멀리하고 유일한 청중이신 그분 앞에서 살려는 소원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우리가 유일한 청중 앞에서 살더라도 그 청중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다. C.S.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역간>에서 다루었듯이 그런 이유로 허영심이 교만의 여러 형태 중 가장 덜 나쁘고 가장 용서받기 쉬운 것이다. 허영기 있는 사람은 항상 수많은 청중 앞에서 살면서 칭찬과 찬사를 갈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짜 사악하고 음흉한 교만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 멸시하고 그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을 때 생겨난다.” 그 결과 우리는 선지자 에스겔이 교만한 도시 두로에 대해 쓴 것처럼 “나, 나 말고 누가 있는가?” 라고 말하게 된다. 혹은 영화감독 찰리 채플린이 안하무인격으로 “내가 전부다. 오직 나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오늘날 기독교 기관에서 볼 수 있는 자만의 실제적인 결과는 정당한 책임성을 결여한 지도자다. 그러한 지도자들 곁에는 책임을 물을 만한 강심장의 동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런 지도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보다 더 젊어서 맹목적인 추종자의 태도를 갖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즉 우리가 선출해서 다양한 지위에 올려놓은 대통령, 수상, 모든 고위 관료에게 그렇게 도전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도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거울을 쳐다보듯이 규칙적으로 이 점을 상기하면서 날마다 스스로 도전하는 것이다. 체스터튼은 이렇게 경고했다. “어떤 사람이 ‘나는 나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찾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미치광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본질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는 나보다 더 작은 어떤 것을 찾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대답은 오직 하나다. 즉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름 받은 데 대해 경이감을 느끼고 있는가? 그것은 순전히 선물이요 은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은혜는 영접의 문제가 아니다. 곧 하나님이 준법자뿐 아니라 범법자를, 존경받는 자뿐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자를, 집에 남아 있던 장남뿐 아니라 탕자를 영접하시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교만은 첫 번째이자 최악의 죄이기에, 은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가장 놀랍게 드러난다. 즉, 은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가장 놀랍게 드러난다. 즉, 은혜는 탐식이나 정욕의 열매보다 교만의 열매를 끌어안을 때, 방탕한 막달라 마리아보다 바리새인의 영혼에 미칠 때,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느끼는 죄인에게 다가갈 때보다 소명에 의해 더 자신만만해진 자만할 인간을 사로잡을 때,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 각자 속에 있는 교만이라는 죄, 즉 홀로 뽐내는 단단한 ‘자아’를 녹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뿐이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그런 은혜가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소명이 당신만을 위한 것, 즉 당신의 소원과 꿈과 계획과 직함과 성취만을 위한 배타적인 것인 양 행동하지는 않는가? 아니면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부르심이 오로지 선물이요 은혜임을 조금도 의심 없이 깨닫고 있는가? 당신은 천국의 문 앞에서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나사렛 예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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