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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제일 윗부분을 하나님 향해 열어라
2009년 07월 03일 (금) 08:08:46 장경애 jka9075@empal.com

<네 믿음은 어디 있느냐> 중에서
A. W. 토저 지음/ 규장 펴냄


과거에 독일의 경건한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작은 죄보다 큰 죄를 용서하기를 더 좋아하신다. 왜냐하면 작은 죄를 용서하는 것보다 큰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는 큰 죄를 용서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큰 죄를 용서하시자마자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그 죄인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처럼 그 사람을 믿으신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작은 죄만큼이나 큰 죄도 기꺼이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일단 그것을 용서하시면 그것을 다시는 문제삼지 않고 새롭게 출발하신다는 것이 그의 견해인데, 이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언제나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해서 용서를 받아야 할 경우, 잘못한 사람의 마음에 그늘이 질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이 그 삶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면 하나님은 즉시 새롭게 출발하신다. 이것을 보고 마귀가 그분께 달려가 “이 사람의 과거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라고 말씀 드리면 그분은 “과거라니? 무슨 과거? 이 사람에게 과거는 없다. 그가 내게 와서 용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했다” 라고 대답하신다.

이런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제일 윗부분을 하나님과 진리의 빛을 향해 활짝 열어놓을 용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당신이 ‘우리 영혼의 제일 윗부분’이라는 내 표현에 대해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표현은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며 또 기독교적 체험과 일치한다. 어떤 사람들의 삶에서는 그들 영혼의 제일 윗부분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의 삶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선택과 예정의 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논쟁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고, 나는 당신에게 구약에 나오는 두 인물에게 주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야곱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 자체가 “남을 밀어내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야곱은 속여서 남의 것을 빼앗는 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못 되었다.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지갑은 잘 자키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영혼의 제일 윗부분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놓았다. 그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이 있었다.

사실 그의 형 에서는 야곱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 에서는 야곱보다 덜 완고하고 더 솔직하고 더 사교적이었다. 훗날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에서는 야곱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창33:4). 모든 면에서 에서는 야곱보다 천성적으로 더 훌륭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열린 창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삐뚤어진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의 제일 윗부분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자의 경우도 야곱의 경우와 똑같다. 그녀는 도덕적 삶을 산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에는 파고들 틈이 있었다. 즉,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이 있었다. 바로 이 창을 통해 하나님의 빛이 그녀의 영혼 안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안에는 새 생명이 태어나야 하는데, 그리스도와 충돌이 있어야 비로소 이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충돌이다. 죄인인 우리의 의지는 십자가에서 무너져야 한다. 우리는 얼굴에 티끌을 묻힐 정도로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만남은 언제나 기억될 만남이어야 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전진할 때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만남이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순간에 우리의 영혼과 하나님의 마음이 격렬한 갈등 속에서 만나서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고백하며 굴복하는 그런 만남이어야 한다.

이런 영적인 만남, 즉 하나님과 영혼의 만남은 새로운 출생이요, 새벽의 밝음이요, 분명한 계시이다.

한 다리 건너서 간접적으로 종교를 갖는 죄를 범하지 말자. 프로그램에 조종당하여 종교인이 되는 죄를 범하지 말자.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받아들이도록 훈련 받았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차게 노력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의 은신처에서 겨우 불러내어 붉은 줄과 파란 줄이 잔뜩 그어진 성경을 가지고 그를 설득하여 하나님 나라로 밀어 넣었다 할지라도 사실 그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의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빠져들어야 한다.

우리가 종교적 기준을 더 높이거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급진적 종교가 되는가? 거듭남은 우리에게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 삶에 능력이 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 이것은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영적 무기력과 능력의 결여와 불확실성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나는 하나님과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셨고 나는 졌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나도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내 옛 의지는 굴복했습니다. 내 옛 담대함과 자기 열심도 굴복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오시어 주인 되셨습니다.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들 같은 체험이 없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라. 당신의 문제를 의식하는 가운데 겸손하고 솔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아무 변명도 하지 말고 당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께 보여드려라. 그러면 주 예수님이 당신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여러 해 동안 복음에 대해 들어왔지만, 이제는 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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