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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실현하고 누리는 것”
2009년 06월 24일 (수) 08:51:20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 톰 라이트 지음/IVP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IVP 출간)는 이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오직 천국만을 그리워하는 왜곡된 천국의 개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땅에 이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를 잘 이해시키고,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온 플라톤적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사라지게 한다.

놀라운 희망을 찾아서
천국은 무엇인가? 이 책의 원 제목은 ‘Surprised by Hope’다. 놀라운 희망은 무엇인가? 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편안하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삶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천국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되도록 현실에서 그런 삶을 추구하고, 이루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천국에서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면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산다. 이런 천국에 대한 생각은 이 땅에 대한 열정이나 가치를 누그러뜨리거나 책임 없는 삶, 혹은 이원론적인 삶을 살게 한다.

특히 이단단체의 경우 이런 것을 매우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이 땅에 사는 삶을 매우 천박하게 여기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과 달리 자신들은 천국의 친 백성으로 매우 이상적인 구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톰 라이트는 이런 성향의 삶은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한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해된 하나님 나라
저자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가야할 천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가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만 생각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사고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나 설교, 그리고 많은 책에 스며들어 있다.

희망은 지옥을 탈출하는 것처럼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희망은 언제나 부활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부활과 함께 할 때 더 큰 의미를 갖게 하며, 이 부활은 궁극적인 희망을 낳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창조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희망이지만, 그것은 다가올 종말론 성취만을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 가운데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이다.

저자는 낙원이나 천국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부활에서 시작됨을 강조한다. 부활에 대한 견해를 믿는 종교는 유대교나 기독교 외에는 없다. 물론 유대교도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과 다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를 믿는 이들에 대한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부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천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과 미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구는 현재 삶에 대한 고단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재 삶을 부정하거나 초월하려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이 건강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천국을 소망하는 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이 마련한 낙원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현재의 고난과 힘든 삶에서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죽음과(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그 직후의 상태로 머무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서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단계다. 부활의 요점은 죽음이 정복당했다는 것이다. 부활은 죽음이 타도된 것이며, 죽음에 의존해서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타도된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인 부활
저자의 관점은 단순히 종말의 부활을 기다리거나 혹은 가야할 그 나라에 대한 기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태도다. 그것을 집약하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부활은 매우 현 세상적이고 현 시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따라서 그분이 메시아시다, 따라서 그분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추종자로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전령이 되어 그분의 주되심을 온 세상에 공표하고 그분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임하게 해야 한다! 일찍이 바울 때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마지막 때 모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부활이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부활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나가는 세계다.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가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여기 지금 새롭게 창조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현재 상태에 부조리하고 거짓된 것, 억압된 것들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성경적 그림보다는 영혼이 육체를 벗은 희열의 상태로 들어간다는 플라톤의 시각과 더 많이 닮고 있음을 지적한다.

진화론적 낙관주의
세상은 매우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사고 속에 빠져 있다. 이것은 진화론적 낙관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이 사고방식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친 그릇된 세계관이다. 끊임없이 인간의 진화를 믿는 이념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대신 인간 스스로 구축하는 지식에 의존한다. 교육과 열심히 일함으로, 창조와 새 창조대신 과학과 기술이 유토피아를 자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다.

저자는 진보신화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악의 문제를 다룰 수 없음을 지적한다. 첫 째 악을 막을 수가 없다. 둘째, 만약 ‘진보’가 결국 우리를 유토피아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악의 도덕적 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 셋째, 진보의 신화는 악 자체의 성질과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핵심적 중요성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진보신화가 시대를 걸쳐 인류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할지라도 실패한 세계관임을 드러낸다.

이동하는 영혼
시간-공간-물질로 구성된 현 세상은 환상이며 동굴 안에 어른대는 그림자이며 현상 너머에 있는 진정한 실재에 접하는 것이 인간의 적절한 임무라는 플라톤의 시각은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낳게 했다.

라이트는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세계가 열등하고 어두우며 모든 면에서 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원래 이곳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 특정한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된 궁극적인 세상과 무관한 영원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는 가치관을 갖게 한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불멸의 영혼들은 허락되는 한 빨리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태도의 삶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목적은 ‘천국행’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로마서 8:18-25, 요한계시록 21-22장이 제시하는 내용을 무시한 태도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보다 미래성에 더 염두에 둔 삶을 살게 한다. 이것은 현재성에 나타나는 책임과 의무를 잊게 한다.

이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
저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은 진보도, 절망도 믿지 않은 이원론자가 아니었음을 주지시킨다. 오히려 신약성경의 세계관은 “창조의 선함과 악의 성질, 구속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진보적 낙관주의의 범신론, 영지주의 마니교의 이원론과 달리 신약성경은 우주의 종말론 형태로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불안전하다. 창조계가 그 창조주의 사랑에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반응하면 하나님은 자기 자신으로 그 세계를 가득 채워서 그것이 하나님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조재로 머무는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넘쳐나게 하실 것이다.”

저자는 계시록 21장과 22장을 통해 하늘과 땅의 결혼 이미지를 끌어낸다. 이것은 온갖 종료의 영지주의자들이 이 세상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것을 최종적 목표로 보는 모든 세계관을 궁극적으로 거절한다. 이것은 주기도문에 대한 최종적 응답이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은 종말론적 성취에서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새 창조를 통해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위에 주님이신 예수님의 주권에 기초해 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명을 의미”한다.

결국 기독교적 희망의 근본적 왜곡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열망과 현재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방치다. 현재의 세상을 내버려 둠으로써 아무런 지지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정적주의를 저자는 경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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