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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모르시는 아픔은 없다
2009년 03월 19일 (목) 00:29:51 장경애 jka9075@empal.com


<당신의 영혼에 내민 따뜻한 손, 격려> 중에서
찰스 스윈돌 지음/ 박혜경 옮김/ 디모데 펴냄


종류는 다르겠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걱정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얼굴에서 미소를 앗아간다.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내어 우리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근심거리는 마치 마음 속 어두운 구석에서 비열한 강도처럼 우리를 기다렸다가 평안을 훔쳐가고 기쁨을 빼앗는다.

근심은 마음속에 몰래 잠입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에는 모든 힘을 빼낸다. 감정의 파탄 상태에 이르게 하고, 영적인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근심을 반드시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근심의 영향력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근심을 이렇게 정의한다. 근심이란 절박한 두려움을 계속해서 키우는 마음의 고통스러운 불안 상태다. 가벼운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격심한 근심은 우리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 지금이 바로 멈추어 서서 자신의 맘속을 깊이 들여다볼 때다. 어째서 근심은 그토록 우리를 영적으로 나약하게 만드는가?

근심은 인간의 관점을 두드러지게 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억누른다. 그 때문에 두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걱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관점은 제쳐두고, 주변의 인간사에 대하여 깊이 의식하게 된다. 걱정은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하나님의 관점을 희미하게 만들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다.

근심은 우리에게서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빼앗아버려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걱정과 근심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끝없는 불안과 의심, 기대, 압박감에 짓눌리게 된다. 결국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근심은 우리의 기쁨을 빨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기보다는 판단하게 만들어 우리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걱정은 질 나쁜 콜레스테롤과 같이 우리의 영적 심장의 동맥을 굳게 만들고,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의 흐름을 방해한다. 마침내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나 부정적이고, 고약하며, 속 좁고, 불친절한 사람이 되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심에 대한 치료제는 무엇일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하나님은 우리를 근심스럽게 만들고 우리 생각을 괴롭히는 일들에 일일이 관심을 갖고 해결해 주신다. 정말 하나님같이 멋진 분은 없다. 우리가 마음 쓰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근심하는 일들을 돌보시며 지켜주신다.

근심을 해결하는 네 가지 방법은 첫째,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라. 자신에게 말하라. “나는 혼자가 아니야!”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겨 보라. 성경 말씀에는 7천 개 이상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하나님께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들을 말씀드려라. 그 후에는 하나님께 맡겨 버려라. 넷째, 하나님을 기다리라. 마음이 앞서서 일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라.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은 늘 따라다닌다.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해하지 못하시는 마음의 고통은 없고, 하나님이 모르시는 아픔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모르시는 채로 우리가 육신의 고통을 겪을 수 없다. 그 어떤 장애나 질병, 슬픔, 심장마비도, 심지어 마음을 연약하게 하는 두려움과 절망까지도 하나님이 이해하고 느끼지 못하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고통이 가장 심할 때 우리 손을 붙잡고 동행해 주신다.

도저히 치유되지 않는 마음속 상처가 있는가?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를 보라. 수치스럽고 외로운가? 주님은 그 느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주위 환경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하나님께 평안을 달라고 흥정하려 하는가? 그럴 필요 없다. 입술을 벌려 단 한마디 하지 않아도 주님은 모두 이해하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느끼고, 만져주신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외로울지도 모른다. 평생의 반려자가 천국으로 떠나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홀로 맞이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최근에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서 당신의 삶에서 사라지라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또는 “다시 너를 보고 싶지 않아”와 같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 담긴 잔인한 편지를 받았을 수도 있다. 당신은 관계적으로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면에서는 분노하고 있으며 육체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괴롭힘을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마음속 비밀을 들키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사람들에게 거절당할까봐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수치로 인한 아픔이 영혼을 붙잡고, 마음속 생각을 사로잡는지도 모른다. 바로 오늘 무력감을 느끼고, 분노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실망하며, 우울하고, 수치스러워 모든 것이 끝이라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왜 나를 버리셨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말을 들어 보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소망이 있다. 당신 곁에는 구원자의 도움의 손길이 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보다 더 평안을 줄 수는 없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는 평안과 힘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이 우리 육신의 병을 치료하실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넘치도록 충분하다. 하나님의 손은 고통의 순간에 우리 삶을 어루만지신다. 어떤 친구나 동료, 부모, 자녀의 위로보다 낫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지실 때, 깊은 긍휼과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위로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고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이 되는지를 예수님보다 더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둡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터널을 지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지켜보신다. 우리 눈에는 끝이 없을 것 같은 무섭고 캄캄한 어두움만 보인다. 그런데 주님은 그 어두움 너머에 있는 영원한 빛을 보신다. 성숙, 성장, 안정, 지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의 왕관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명심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겟세마네를 통과할 때 필요한 지도의 주인이심을.

‘슬픔의 사람’ 그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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