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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7가지 덫>
승리 위한 완전무장의 비결
2009년 03월 06일 (금) 08:21:30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사소한 것을 무시하지 말라
   
▲ 어윈 W. 루처 지음/김태곤 옮김/생명의말씀사
신앙생활을 비참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작고 사소한 실수와 죄가 그리스도인들의 견고한 믿음의 성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쉽게 그 사소한 것들을 무시해버린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접근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곱 가지 덫을 기술한다. 저자는 아주 탁월한 솜씨로 덫의 위험성을 기술하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이끌어 낸다. 탐욕, 도박, 알코올중독, 포르노, 불법섹스, 쾌락, 신비주의 같은 덫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 위험한 지뢰들을 무시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일곱 가지 덫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덫은 매우 정교하고 교묘하게 우리를 노리고 노략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우리에게 경계를 촉구한다.

‘더 많이’라고 부르는 탐욕의 괴물
죄는 장난삼아 시작한 운세, 술, 복권 등을 중독으로 치닫게 한다. 틈을 주면 들어오는 것이 죄다. 성경은 사단이 틈을 타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경고하지만 경비병을 세우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는 분명히 죄로 인해 넘어진다. 죄는 미혹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히 미끼가 있다. 방심하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하지만 사단은 교활하게도 죄를 혐오스럽게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탐욕, 하면 “다 알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에 자유로운 사람을 그리 많지 않다. 탐욕은 자족과 반대되는 개념일 수 있다. 왜냐하면 탐욕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더 많이”라고 외치며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탐욕은 단지 부유한 자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는 자의 죄이며, 현재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 자의 죄다.”

저자는 탐욕의 개념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선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이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해 신용카드를 이용한 대출은 탐욕이다.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돈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채우는 데 필요한 시간을 그분께 드려야 하며, 그분이 주실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흔하지만, 차용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조성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차용한 것을 숨겨서 나타나는 거짓된 삶은 그것을 막기 위한 더 위험한 죄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탐욕은 고통스러운 공허감을 가리기 위한 가면의 역할을 한다. 일종의 광고 유혹과 같은 방식이다. 쇼핑중독이 이런 종류의 탐욕일 것이다.

성경에는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엡 5:5) 못 박고 있다. 탐욕은 우리 안에 다른 신을 두는 것과 다름이 없다.

탐욕을 이기는 방법은 먼저 마음속에 탐욕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탐욕을 간파하기 힘든 이유는 사회에서 그것을 전혀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안에 괴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죄를 보여주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 가지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을 돈에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이 모든 근원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달리 삶에서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식일 뿐이다. 베푸는 것은 많이 소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공급함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다.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합법적인 도둑질인 도박
돈을 걸고 화투를 하는 것은 도박이기 때문에 불법이다. 하지만 카지노에서 돈을 쿠폰으로 바꿔 게임을 하는 것은 합법이다. 복권과 카지노는 상호 합의에 의한 도둑질이다. 그러나 법의 보호아래 있기 때문에 합법이고, 그리스도인들조차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는 있더라도 사회에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허용한다. 그러나 성경은 돈을 두고 화투놀이를 하는 것이나 합법적인 도박 역시 불법이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도박을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대개 더 많은 돈)을 얻으려는 마음에서 가치 있는 그 무엇을(대개 돈을)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거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도박업계는 도박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게임’이라는 명칭을 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덮을지라도 도박은 성경이 금하는 죄다. 저자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이 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재원을 더 허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문명국이라면 착취당하는 자들을(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한 몫을 잡기 위해 돈을 허비하는 자들을) 발판으로 삼아 경제를 일으키려 해서는 안 된다. 도박은 실제로 주 정부의 재원을 확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원을 허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도박에서 비롯되는 다른 범죄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도박은 죄가 아닌가? 가톨릭은 지나치지 않는 한 도박을 허용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마귀가 도박을 창안했다”고 말했다. 도박은 노동윤리를 위반한다. 노동을 조롱하는 행위다. 도박은 일하지 않고 버는 불로소득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선물이다(출 20:9, 엡 4:28, 살후 3:6-12).

저자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돈을 얻는 방법에 대해 “첫째는 일이다. 둘째는 유업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셋째는 투자이다. 넷째는 증여이다. 도박은 이 범주들 중 어디에도 들지 않는다. 도박은 부유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것을 훔치는 짓이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발판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진리를 통해 자유함을 얻어야 하며, 관계를 통해 정신적 치유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회복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황홀한 도피의 술 중독
술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 심지어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물질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위험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적당히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단의 중독전략은 치밀하고 또 교묘하지만 그것을 눈치 채기는 어렵다.

알코올 중독자의 특징은 자신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결코 끊을 수 없다. 강제하거나 결단을 통해 어떤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간혹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술을 끊게 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술에 대해 관대한 이들도 있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술을 죄악시 하지 않지만 한국의 경우는 죄악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적당히 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술의 먹고 마심을 논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술이 주는 폐해다. 그 폐해를 당한 자만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성경은 술을 찬미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취하지 않게 먹으면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비좁은 틈은 곧바로 범죄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노아는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인이었지만 그의 술 취함이 준 결과는 비극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죄책감이 수반되어야 하며, 술 대신 성령에 충만할 것을 요구한다. 술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분께 나아갈 때만 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망상 포르노
인터넷 발달은 인간을 포르노 세상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초등학생도 포르노에 쉽게 접촉할 수 있다. 그러나 접촉은 영혼을 죽이는 은밀한 망상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마치 몸을 파는 곳을 지날 때 여성이 접근해서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더구나 포르노는 들키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스도인들도 중독수준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음의 동기까지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포르노의 탐욕에 젖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게 된다고 경고한다.

“휴 헤프너가 본격적으로 포르노 사업을 시작했던 때인 1953년에만 해도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6분마다 강간당하지는 않았다. 소아성애는 드물었다. 지금은 소아성애가 매일 매시간 범해지고 있다. 포르노에서는 온갖 형태의 성도착이 소개되며, 그런 욕구들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갖가지 성범죄들이 발생한다.”

저자는 포르노가 영혼과 정신, 정서, 의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여성이나 남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게 한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죄를 지은 지체를 잘라버리는 것같이 절단하는 것이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눈을 뺄 수 없고 손을 잘라버릴 수 없지만 그런 고통을 동반하는 절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공개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거나 그 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단의 방법이라고 했다.

불법섹스는 달콤한 독
들키지 않으면 되는 불법섹스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결혼한 아내와 만족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직장과 거리에서 다른 섹스의 대상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가정을 파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육체적인 만족을 얻는 섹스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만족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중에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된다.

인간의 성욕은 수도꼭지처럼 잠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의 원리를 생각하면 불법섹스가 얼마나 인간에게 해로운 것인가를 알 것이다.

“성관계를 갖되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주저 없이 상대방을 바꿔 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죄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회피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저자는 결혼 언약 범위 밖에서 행해지는 섹스는 ‘이질적 결속’을 조성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관계에서도 남녀 간이든, 동성애자 간이든 쌍방 간의 형이상학적 결속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결속은 중독을 낳는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6장 15-17에서 잘 보여준다.

바울은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임을 지적한다. 남자의 난잡한 성관계는 결국 자기 부인과 다른 여자들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저자는 “에이즈 연구가들은 성관계를 맺을 때 결국 전에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졌던 다른 사람들 모두와 함께 성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난잡한 섹스를 일삼았던 상대방은 자신의 상대들과 형이상학적으로도 결합되었다.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이질적인 결속은 심각한 불법을 낳는다. 섹스 중독을 낳기도 하고, 성범죄를 통해 사회에 더 많은 죄를 전이시킨다. 이질적 결속 관계는 하나님을 향해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성적인 표현과 행동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며 섹스는 대개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간주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나머지 덫은 괘락과 신비주의다. 우리 육체의 감각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 감각과 느낌에 이끌려 살려고 한다. 그것은 극단적은 쾌락을 추구한다. 신비주의 역시 점성술, 하드 록과 영화 같은 것으로 우리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이 책은 시대의 악함과 함께 악이 보편적인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는 사단의 악한 전략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 우리는 작은 죄를 쉽게 본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전체를 흐리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게 한다. 단순한 오락, 단순한 내기, 호기심에서 본 옐로우 잡지가 우리의 영혼에 순결을 빼앗는다.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이 시대의 악한자의 노략질에 쉽게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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