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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에게 성경을 배울 수 없는 이유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29
2009년 03월 06일 (금) 08:07:57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이만희 씨는 자기에게 와서 성경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올바른 성경을 배울 수 있으며 심지어 구원도 받을 수 있다고 강짜를 부린다. 이 씨는 요한계시록 14장을 해설한다면서 그의 책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 자신의 ‘착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들어보자.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육백육십육 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불과 유황으로 고난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계시록이 기록된 지 어언 이천 년이나 되었고 수많은 목자와 신학박사와 신학교가 있었는데 왜 이러한 문제를 가르쳐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는가?”(이 씨의 책, p.307).

그렇다. 정말 이 씨의 주장대로 수많은 신학교와 신학박사가 지구상에 존재해 왔는데 이 씨와 같은 요한계시록의 해석과 주장(핵심적으로 ‘이만희=보혜사’)을 하지 못했을까? 왜 그랬을까? 모든 신학박사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만희 씨가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이 씨는 신학박사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과연 그럴까? 계속된 이 씨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지상 모든 목자와 성도는 약속한 본장 말씀을 시인해야 하며 구원의 처소로 추수되어 갈 수 있도록 추수꾼 목자를 찾아야 한다. ···잠자는 신앙인이 되지 말고 성경을 통달한 약속한 목자를 만나 이 모든 것을 증거받기 바란다(계 10:8-11)”(이 씨의 책, p.317).

이 씨가 신학박사의 탓이라고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자신이 바로 ‘성경을 통달한 자’라는 순진한(?) 착각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통달한 자이다’라는 주장이 과연 이만희 씨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 14장의 그의 해설을 분석함으로 성경을 통달했다는 그에게 성경을 배울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밝혀보도록 하겠다.

   


‘새 노래’ 때문이다

먼저 본고를 읽는 독자 제위께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일반 기성교회 목회자나 성도이든 이만희 씨를 추종하는 이든 상관없다.

질문)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새 노래’란 무엇인가?
1) 새(bird)가 부르는 노래
2) 새롭게 작곡된 현대 노래
3) 이만희측 단체와 관련된 노래
4) ‘예수=구원자’만을 높이는 찬양 노래

쉬운가? 아니면 어려운가? 만약 답을 잘 모르겠거든, 긴 문장의 것을 고르는 게 힌트(?)다. 물론 이만희 씨는 3번을 택할 것이다. 또한 이 씨를 추종하는 자들이 동일한 번호를 택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답은 4번이다. 새(bird)가 부르는 노래는 아니다. 단지 새롭게 작곡 작사된 곡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만희 씨처럼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둔 노래는 더더욱 아니다. 새노래란 어린양의 노래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노래, 구원의 노래이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이다.

이만희 씨는 ‘새 노래=이만희 교리’라고 주장한다. 황당하다. 위 문제에서 이 씨는 3번을 택한 것이다. 어이가 없다. 차라리 1번을 고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3번을 택한 이 씨의 주장들을 직접 살펴보자.

본문의 새 노래는 ‘신약 성경의 예언이 응한 것을 알리는 새 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출애굽 때 몸소 행하신 일을 후세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친히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셨으니(신 31:19, 21-22) 신명기 32장에 기록된 말씀이 그 노랫말이다”(이 씨의 책, p. 301).

위 해설에서 이 씨는 ‘새 노래=새 말씀’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보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새 말씀’이 우리네가 이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씨는 자신이 부른다는 새 노래가 기성교회의 그것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것 때문에 ‘이단’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떠든다. 기성교회는 틀렸고 자신들이 옳다고 한다. 계속 그의 주장들을 들어보자.

“본문의 시온산을 모르는 자는 새 노래가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이라 정죄할지도 모른다(행 7:51-54). 그러나 시온산의 새 노래는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므로 ‘정통 진리의 말씀’이며, 일반 기성 신학교에서 자칭 신학(神學)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인학(人學)과는 견줄 바가 되지 않는다. 성경을 잣대로 삼아 공평한 판단을 하는 자라면 무엇이 정통이며 무엇이 이단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이 씨의 책, p. 302).

성경 본문 계 14:3의 ‘새 노래’는 그 윗구절인 계 14:2과 연결된다. 다시 말해 ‘새 노래’는 ‘많은 물소리, 큰 뇌성소리, 거문고 타는 소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본문을 살펴보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계 14:2).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계 14:2의 ‘많은 물소리, 큰 뇌성소리, 거문고 타는 소리’는 우주적 방대성과 위엄찬 화음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요한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정도가 엄청나게 크고 위엄이 있었다는 것이다(권성수, p.306). 이러한 소리가 단순히 ‘화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가진 찬양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새 노래’인 것이다. 크고 웅장하고 위엄이 있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찬양하는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만희 씨는 하늘의 소리인 뇌성을 자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로 설명한 적이 있다. 이 씨는 계 8장을 설명하면서 천사가 향로를 땅에 쏟을 때 뇌성이 나타나는데 그 뇌성이 바로 약속한 목자, 즉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했다. 성경과 그의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 8:5).

“계시록의 성취 때에는 본문의 천사가 금 향로와 같은 약속한 목자의 마음에 말씀의 불을 담아 일곱 금 촛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쏟아 심판한다. 그럼 본문 금 향로의 불을 쏟을 때 나는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은 무엇인가? 뇌성과 음성은 약속한 목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진노의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며 ···본문의 진노의 말씀을 금 향로와 같은 목자의 마음에 담아 쏟으니 뇌성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고 ···”(이 씨의 책, p.177).

이 씨는 계 8장을 해설한다면서 하나님께서 진노의 말씀을 자신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뇌성’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다시 본문 계 14:2로 돌아오자. 이 씨는 ‘많은 물소리, 큰 뇌성소리, 거문고 타는 소리’가 시온산에서 들려온다고 했다. 그럼 그 시온산은 어디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 씨는 그 시온산은 “영적 새 예루살렘 열두 지파를 의미한다”고 했다(이 씨의 책, p.300). 영적 새 예루살렘이란 이만희 씨의 단체 또는 이만희 씨를 추종하는 자들을 말한다(필자의 <분석 22> 참조, www.amennews.com).

결국 이만희 씨는 자신의 입을 통해서 ‘새 노래’가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씨가 밝힌 대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 아니고,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이단 소리를 듣는 사람이 문제라는 말이다.

계 14:1의 ‘시온산’은 이 땅의 어느 특정한 장소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장소를 뜻한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1절에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사천 명이 시온산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온 다음 바로 2절에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언급되어 있다. 3절에서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은 계 4-5장에 의하면 하늘에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시온산을 이 땅 위의 특정한 장소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더욱이 이만희 씨의 단체로 설명하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자금 이후 죽은 자’ 때문이다

이만희 씨의 요한계시록 해설을 읽다보면 종종 ‘이 씨에겐 상식이 있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바로 요한계시록 14:13에 대한 그의 해설을 읽을 때도 그러했다. 아무렇게나 해설해도 자신을 따르는 이들은 다 그렇게 믿어줄 것이라는 굳은 확신이 있기 때문일까? 계 14:13에 대한 성경구절과 이 씨의 해설을 살펴보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지금부터’라는 뜻의 자금(自今) 이후는 멸망의 기간인 마흔 두 달이 지난 뒤를 말하며, 자금 이후 주 안에서 죽은 것은 ‘죄’이다”(이 씨의 책, p.309).

성경 본문은 ‘복’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복(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중의 두 번째 복에 해당되는 구절이다. 영어성경을 보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Then I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 ‘Write: 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from now on.’ ‘Yes’, says the Spirit, ‘they will rest from their labor, for their deeds will follow them.’ ”

‘복이 있도다’는 선언에서부터 역시 시작된다(필자의 <분석 6> 참조, www.amennews.com). 누가 복이 있다는 것인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들이 복되다는 말이다. 이만희 씨의 말대로라면 죽은 것은 ‘죄’인데 그럼 그 ‘죄’가 복이 있다는 꼴이 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본문은 ‘노동으로부터의 쉼’이라도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신자들이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이제는 천국의 안식에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라고 하는 말이다.

이만희 씨는 “사도 바울처럼 매일 죽이며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역대 모든 이보다 복된 자이다”는 말로 복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이 씨의 책, p.310). 그러나 그러한 식의 해설도 권장할만하지 않다. 성경 본문의 죽음이 일반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순교’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희 씨의 ‘착각’이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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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 이전기사

1) 계시록의 주제가 과연 ‘이만희’인가
2) 계시록의 중심인물이 과연 '이만희'인가
3) 환상계시는 뭐고 또 실상계시는 뭔가
4) 이만희 씨가 말하는 '계시의 전달 과정'
5) '사도 요한 격의 목자'란게 왜 필요할까
6) "계시록 바르게 가르쳐 줄 사람 없다"?
7) 비유, 예수님 의도와 이만희 씨의 곡해
8) 예수님이 영으로 이미 재림하셨다고?
9)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허상을 봤다?
10) '알파와 오메가'도 비유로 보는 이만희 씨
11) 이만희 씨는 자신이 神이라 생각하나
12)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체라 하는가
13) 예수님께 직접 안수 받은 자?
14) 도대체 누구를 드러내려 하는 것인가
15) 계시록의 '이기는 자'가 이만희 교주인가
16) 이만희 씨의 ‘만나 교리’ 맞나?
17)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18) 이만희 씨 마음 문 흔들릴까?
19) 이만희 씨의 계시록 4장 오해
20) 이만희 씨 때문에 요한이 울었다?
21) 이만희 씨는 비유풀이의 달인?
22) 이만희 씨는 14만4천명에 속하나?
23) 이만희 씨의 성경해설 원리
24) 이만희 씨가 말하는 '재앙'
25) 이만희 씨가 말하는 '예언'은?
26) 이만희 씨가 ‘두 증인’인가?
27) 이만희 씨의 'New' Vs 기독교 목사의 'Old'
28) 요한계시록 13장 배경이 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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