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북리뷰
       
북리뷰 <로드>(THE ROAD)
암울한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2008년 12월 15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암울하다. 온 세상이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세상 한 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도대체 희망은 있는 것일까?

소설 <로드>(The Road, 코맥 맥카시 지음, 문학동네)가 말해주고 있는 세상은 ‘검은 색’이다. 그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또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색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마치 온 세계가 폭격을 맞은 것 같은 오늘의 현실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다음 날 정오에 도시를 통과했다. 권총은 금방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카트 위의 접은 방수포에 올려놓았다. 소년을 옆에서 바짝 붙이고 걸었다. 도시는 대부분 탔다.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거리의 차에는 재가 떡처럼 덮여 있었다. 모든 것이 재와 먼지로 덮여 있었다. 마른 진창에는 화석 흔적들. 문간에는 말라붙어 가죽만 남은 시체 한구. 빛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p.17).

<로드> 전체가 위와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정처 없이 길을 걸어간다. 도시는 폐허다. 전쟁이라도 방금 치른 듯하다. 여기저기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먹을 것도 없다. 폐허가 된 집의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야만 한다. 날씨 또한 추워져 간다. 혹 누군가를 만나면 경계를 해야 한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나를 죽이게 된다. 희망은 없어 보인다. 바로 그런 길이다.

<로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 ‘아마존·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등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대단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www.amennews.com)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란 문구다. 홍보용이라는 것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끌렸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는 길(The Way)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소설의 주인공 소년은 초등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인다. 그는 아버지를 철저히 의지하며 길을 간다. 아버지와 아들은 길을 걷다가 몇몇 사람들을 만난다. 먹을 것을 위해 자신들을 해하려는 사람들을 만난다. 또한 자신들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노인도 만난다. 모두들 어둡다. 미쳤다. <로드>가 말해주는 그 절정은 자신의 갓난아이를 불에 태워서 먹으려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아. 아빠. 남자는 고개를 돌려 다시 보았다. 소년이 본 것은 검게 탄 아기였다.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빠진 채 꼬챙이에 꿰어져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p.226).

아버지는 아들을 철저히 보호한다.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키려 한다. 부성애 그 이상이다. 아버지는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느님이 나에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알아들었니?”(p.90). 자신의 역할을 ‘신적 부름’으로 연결시킨다.

그들이 운반하고자 하는 ‘불’ 때문일까? <로드>는 그 불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받았으며 또 어디로 가져가는 것인지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는다. 단지 어떠한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이 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듯하다.

   
 
   ▲ 세상을 암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결말은 어떻게 될까? <로드>를 읽어나갈수록 그 궁금증이 더해간다. 누군가 위대한 존재를 만나 그들이 운반해 온 ‘불’을 전달해 주는 것일까?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아니면 그들도 역시 다른 이들처럼 죽어서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 등의 성구가 자연스럽게 뇌리에 떠올랐다. 책장의 후반부를 넘기면서 필자 스스로 해피엔딩의 결말을 내리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길’과 ‘빛’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참된 위로를 만났으면 하는 강한 바람 때문일까? 그 아버지와 아들도 그것을 발견하고 이 어두음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맘이 들었다. 그렇게 될까?

아버지는 기침을 자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침의 횟수가 많아졌고, 또 종종 피도 섞여 나왔다. 그는 자신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어느 해변의 야영장에 누웠을 때 그는 그 자리가 자신이 죽을 장소임을 알았다.

남자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한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pp.313-314).

남자는 죽었다. 아들은 울었다. 3일을 그의 곁에서 울었다. <로드>는 독자를 더욱 절망으로 끌고 간다. 희망의 연기조차 사라졌다. 절망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적’이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소년은 한 남자를 만나 어느 여자에게로 인도되어 갔다. 그 여자는 소년에게 ‘신’에 대해서 자주 말을 해 준다. 소년은 그 신과 대화를 해보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죽은 아버지와 대화하게 된다. 여자는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의 숨이 그(아버지)의 숨이고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도 건네진다”(p.323)고 알려준다.

‘어두운 세상,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나약한 소년, 목숨 걸고 보호해 주신 아버지, 여자를 만남, 어두운 세상을 탈출 그리고 숨을 통해 그 아버지와 계속 동행함’ 등의 구조를 통해 <로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는 카피문구처럼 ‘어두운 세상 - 예수님 믿음 - 천국’이라는 도표를 설명해 보려고 한 것일까?

   
 
   ▲ <로드>의 마지막 장면
 
흔히 ‘오늘’을 ‘어두운 세상’으로 표현하곤 한다. ‘말세’라는 말로도 그 부정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그렇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며 고백한 바울 사도의 표현을 빌리더라도 그 모습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암울한 세상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로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견디는 것’일까? 정영목 씨(<로드> 옮긴 이)는 그렇게 봤다(p.326). ‘그 날’이 올 때까지 고통을 참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3:1)는 바울 사도의 말을 한 번 더 빌려 보자. ‘주 안엷(in christ)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습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기쁨’이라는 것 아닌가. 소설 <로드>를 통해 비록 어두운 세상이지만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길(the way)’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장운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정명석의 범행에 대한 구체적 사
자유통일당, 22대 총선에도 '3
김노아, “오늘날 기독교의 구원관
JMS 신도들, 정명석 교주 재판
동국대학 캠퍼스, 신천지 포교로
신천지인의 스토킹 행위에 대한 법
JMS 교주 정명석, 여신도 추행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최삼경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12125)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도제원로 32-2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