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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으로 인내하라
2008년 10월 13일 (월)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인내> 중에서
존 파이퍼 지음/ 신원섭 옮김/ 좋은씨앗 펴냄

우리는 현대가 일구어놓은 풍요로움에 잠겨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고통과 곤경을 겪지 않고 사는 것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한다. 삶이 우리의 그런 생각과 영 딴판으로 흘러간다면, 우리는 누가 누가 잘못해서 그렇다거나 어떤 체재가 잘못돼서 그렇다는 식으로 누군가를 쉽게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긋난 상황을 돌이키고 만회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남을 도울 만한 여력이나 시간은 조금도 남지 않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제 보편화된 삶의 궤도로 자리 잡았다. 스트레스는 멀리하고, 안위와 안전과 편리함만이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거나 사역을 생각할 때 자기 안위라는 제한선을 둔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자기 안위하는 테두리선을 긋고, 오직 그 안에서만 성장을 추구한다. 믿음을 소유했다는 이들도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곤란을 겪게 하거나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은, 설령 성경이 권하는 정상적이고 옳은 일이라 해도, 감히 그쪽에 발을 디디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네와 자네 가족을 위험에 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말을 종종 접하곤 한다. ‘안전과 안위에 대한 전적인 추구’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절대 가치가 되어버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가치관에 물들어버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갈보리로 올라가는 길을 우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시대에 한 곳에 모여 있으려 했던 성도들에게 그러셨듯, 우리 역시 억지로 흩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만 계시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교회가 다음과 같은 현실을 제대로 깨우치도록 하실 것이다.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억지로 지워져 갈보리의 길을 걷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경고에 귀 기울이고 성경이 말하는 진실에 눈뜨는 것이 낫다. 이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곤경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유한함 때문에 우리의 부패함 때문에 우리 입에서 탄식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 때문에라도 고난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좌절은 당연한 것이며, 실망도 당연한 것이며, 아픔도 정상적인 것이다. 갈등, 박해, 위험, 압박, 이 모든 것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정상적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을 배제한 채 살아가려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라면 그는 현실로부터 괴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도 멀어진 자가 될 것이다. 골고다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결코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위험과 불편과 곤경이 있어도, 우리의 발걸음이 위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내리는 결정은, 비록 영원한 안전은 보장되어 있으나, 잠시 동안은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잇다는 것이다. “슬픈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우리는 항상 기뻐하였으며…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때조차 우리는 어떻게 이웃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섬김을 실천할 수 있을까? 인내의 뿌리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참으로 중요하기에 신약 성경에서 인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내’는 잠깐 다루고 마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되풀이해서 명령한다. 우리를 넘어뜨리고 미혹하고 쓰러뜨리며 굴복하게 하는 대적에 맞서 “견고하게 서라”고 말이다.

인내는 선물이다. 내 의지만 갖고서는 내일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여전히 믿음을 갖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의지만으로는 어느 것도 결정적이거나 최종적일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렸다. 그 절벽 끝에서 안전지대로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 덕분이었다. 우리 같은 인간은 의지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믿음의 위기가 찾아올 때 우리 안에 있는 의지라는 것은 약하고 쉽게 부러지기 딱 알맞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문이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그 약하디 약한 의지를 붙잡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내려놓을 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오 하나님, 은혜를 베푸셔서 나의 마음을 주께만 묶어두소서. 당신의 영원한 언약 가운데 나를 품으시고 천국 인을 치소서.”

우리가 누리는 인내는 특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곧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 안에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떨며 구원을 이룬다. 우리가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기 때문이며, 우리 안에, 세상 안에, 그리고 사단이라는 존재가 그 인내를 이루는 데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포자기할 정도로 염려하며 떨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인내를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모든 수고와 분투는 깊은 확신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곧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수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고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으로 인내하라고 요청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값 주고 사신 은혜,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하는 은혜를 신뢰하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죄 사함과 의의 전가라는 선물을 말한다. 또 하나님은 은혜는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며 선한 행실을 넘치도록 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선물을 말한다.

우리가 애쓰는 모든 인내의 목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끝까지 인내하도록 요청하는 성경의 명령을 받은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 인내를 선물로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과 달음질과 인내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이며,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며,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약속을 통해 주어지는 삶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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