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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는 14만4천명에 속하나?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22
2008년 09월 19일 (금)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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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 속한 자들은 정통 교회를 공격한다. ‘모든 교회(또는 교리)가 부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등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교주 또는 단체가 태어나야만 하는 필연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또한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진 각종 부정적인 사고 사건들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이단에 속한 자들은 교회를 교회로 보고 있지 않다. 교회를 다른 모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세모(△)를 네모(□)로 보고 있는 식이다. 그리고 네모를 공격하면서 세모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네 성도들이다. 이단에 속한 자들이 교회를 다른 모양으로 보고 공격을 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그것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인 줄 알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다. 우리는 세모의 모양이다. 상대는 그 모양이 네모인 줄 알고 네모를 공격한다. 우리는 네모가 바로 자신의 모양인 줄 알고 공격을 당하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다는 꼴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한 이단에 속한 자를 만나 대화해 본 적이 있다. 그는 우리네 교회를 공격하려고 했다. ‘기성교회는 왜 날을 지킵니까?’라고 말이다. 무슨 말인가 하여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기성교회는 부활절, 성탄절 등의 날을 지키지 않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신도는 우리의 교회가 우상을 섬긴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야 말로 정통이라는 식으로 논리를 펼쳤다. 그들의 준비된 논리에 잘못하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섬뜩하기도 했다.

우리가 ‘날’을 지켰는가? 날을 지킨다는 것은 지키지 않으면 큰 화가 미친다는 의미인데 교회에서 그렇게 배운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렇게 가르친 적도, 배운 적도 없지 않은가. 다행히도 그들 스스로의 논리에 문제점이 있다. 부활절은 매년 그 ‘날’이 바뀌기 때문이다. ‘날’ 자체가 중요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여기에 일부 성도들이 넘어간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교회’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그 진실함을 배우고 맛보기 이전에 이런저런 ‘상처’를 받은 것도 그 큰 원인 중 하나다. 그래서 교회를 부정적으로 설명할 때 동의를 하고 ‘그래서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다’라고 할 때 그들의 손을 붙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만희 씨가 이해하는 정통교회는 어떠한가? 요한계시록 7장을 해설한 그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말씀(요한계시록 17장을 언급하는 것임-필자 주)에 비추어 볼 때 모든 교회와 교단이 음녀에게 미혹을 받아 귀신과 행음했음을 알 수 있다”(이 씨의 책 p.164).

이 씨는 기성교회를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다. ‘음녀에게 미혹을 받았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계속해서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서 새 제사장이 세워졌으니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기독교 세계의 목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도 생명도 평강도 없어 육적 이스라엘처럼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계6장). 하나님께서는 이천 년 간 존속한 기독교 세계를 끝내시고 7장과 같이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새로운 제사장이 될 십사만 사천 명을 먼저 인 치신다”(이 씨의 책, p.161).

기존 기독교에는 ‘생명도 평강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이 씨의 희망이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만희 씨가 이해하고 있는 기성교회는 ‘음녀에 미혹 받아 생명과 평강도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 씨가 알고 있는 기독교다. 그런가? 이만희 씨는 ‘기독교’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 이만희 씨(MBC PD수첩 보도)
 
십사만사천명은 이만희측 신도들?

요한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중요한 용어 중 하나는 ‘십사만사천명’이라는 숫자다. 위에 언급된 이 씨의 주장에서도 발견된다. 이만희 씨는 십사만사천명은 특별한 존재의 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특별한 존재를 이 씨는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라고 부른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계시록 성취 때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언약을 지키는 자만이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하는 참 선민이 된다”(이 씨의 책, p. 161).

이 씨는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 즉 ‘십사만사천명’에 속하는 것은 구원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십사만사천명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해서 하나님의 자녀, 즉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보다 십사만사천이라는 숫자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그 숫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반기독교적 사상이다. 

이 씨는 자신의 비성경적인 사상을 계속해서 나열했다.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하지 않는 자는 선민도, 정통도 될 수 없다”, “영적 새 이스라엘이 예언대로 나타났는데도 자신이 속한 지파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면 이방인이라는 증거이다. 이방인에게는 구원도 영생도 천국도 없다”(같은 책, p.161).

그렇다면 이만희 씨가 말하고 싶은 특별한 존재인 십사만사천명은 누구일까? 이 씨는 기성교회 성도들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본장을 살펴본 결과 성경대로 창조되는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잠시 비추었다가 심판을 받아 사라지는 일곱 금 촛대 교회와, 일반 기성교회 중에서 어디에 구원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이 씨의 책, p.169).

그렇다. 알게 되었다. 이 씨의 의도를 말이다. 이만희 씨는 자신의 단체만이 영적 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기존의 교회가 아닌, 자신들만이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이요, 정통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속마음이지 않을까? 계속되는 그의 주장이 바로 그것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의 보좌가 임하는 이 땅의 장막은 바로 만국이 주께 경배 드리러 가야 할 증거장막성전(계 15:2~5)이다. ··· 영적 새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께서 장막을 치신다고 하셨다”(이 씨의 책, pp.169~170) 과연 그럴까? ‘십사만사천명’이 이 씨측 단체 신도들을 뜻하는 숫자일까? 

‘십사만사천명 =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

요한계시록 7장은 6장 맨 마지막 절인 16절, 즉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씀의 답변이다. 6장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불신자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반면에 7장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을 사람들(1~8절)과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 이유(9~17)를 밝혀주는 내용이다. 6장은 심판의 내용이지만 7장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 ‘십사만사천명’의 숫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만희 씨는 십사만사천의 숫자는 상징의 수가 아니라, 실제의 수라고 주장한다(이 씨의 책, p.160). 과연 그런가? 살펴보자.

   
 
   ▲ 신천지를 소개하는 신도(신천지 홍보 비디오 화면)
 
먼저 성경을 보자. 계 7:5은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이천”이라며 12지파를 모두 동일한 숫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무슨 말인가? 각 지파의 인구수 중 일만이천 명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일만이천 명이 넘으면 그 넘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말인가? 단지 숫자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아니면 각 지파의 인구수가 정확히 일만이천 명씩이라는 뜻인가? 각 지파의 인구수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게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는가? 

따라서 십사만사천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 그 동안 학계에서 여러 의견이 대두되어 왔다. 첫째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 둘째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셋째 기독교 순교자들, 넷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전체 그리스도인들, 다섯째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 등이다(David E. Aune, Revelation(WBC) 6-16, pp.201-202). 권성수 교수는 십사만사천의 의미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딤후 2:19)”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콜만도 같은 의견이다. 성도들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숫자라는 말이다(Robert E Coleman, pp.107~109).

‘십사만사천’의 숫자는 요한계시록에서 7:4 외에 14:1, 3에 두 번 더 나온다. 모두 3번 언급된다. 그렇다면 7장의 숫자와 14장의 숫자의 의미는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7장에서의 십사만사천은 유대인, 즉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해당되는 숫자이다. 그러나 14장의 십사만사천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없이 시온산에 선 자들 전체를 의미하고 있다.

7장의 숫자는 특별히 기독교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은 반면에 14장의 숫자는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1절), 즉 그리스도인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상이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7장과 14장의 십사만사천명은 각각 그 이마에 표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이러한 것 등으로 보아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7장과 14장의 십사만사천의 수를 동일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데이비드 E 아우네, p.182). 이만희 씨도 7장과 14장의 십사만사천의 숫자의 의미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만희 씨는 계 7:4의 십사만사천명과 계 7:9의 ‘흰옷 입은 큰 무리’를 각각 다른 존재로 보았다.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까지 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이 씨의 책, p. 160). 과연 그런가? 다른 그룹인가?

결론부터 말하며 십사만사천명(계 7:4)과 흰옷 입은 큰 무리(계 7:9)는 동일한 그룹이다. 흰옷 입은 큰 무리는 마지막 완성된 구원에 동참할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의 장래 상태를 미리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다. ‘흰옷’은 오직 어린양의 큰 희생의 피로만 씻어 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 14절을 보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즉, 흰옷 입은 자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계 14장에 언급된 십사만사천명의 숫자에 해당된다(1절). 그리고 14장의 숫자는 7장의 십사만사천과 동일하다. 따라서 7장의 십사만사천의 수는 흰옷 입은 큰 무리와 같은 의미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만희 씨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 7장과 14장의 십사만사천의 숫자는 같은 의미로 보았는데, 7장 안의 십사만사천의 숫자와 흰옷 입은 큰 무리는 각각 다른 그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계시록 7장의 ‘십사만사천명’은 이만희 씨를 추종하는 신도들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일반적인 성도들의 전체 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십사만사천명’과 ‘흰옷 입은 큰 무리’는 각가 다른 그룹이 아닌 동일한 그룹을 의미하며, ‘흰옷’은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지난 분석의 글을 통해서 이만희 씨에게 ‘같이 성경을 읽어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성경 자체만 읽자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을 내면 1장도 못 읽고 논쟁에 빠질 수 있으니, 서로 아무런 설명을 하지 말고 같이 성경만을 읽어보자는 말이었다. 한 절씩 교독을 해도 좋고 한 문단씩 번갈아 읽어도 좋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책을 읽는 중에 교회의 참 모습, 기독교의 올바른 이상을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강하게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한 번 도전해 볼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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