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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기독교인을 찾아라”
가을 초입에서 성숙한 책 읽기
2008년 09월 18일 (목) 00:00:00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그리스도인인 당신의 이미지는 어떤가?
<나쁜 그리스도인> 데이비드 키네먼·게이브 리이언 지음/이혜진 옮김/살림

   
 
 
교회에 대한 평판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박수치며 환영을 받지 않았지만 여전히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환영을 받는 무리들은 아니다. 다신을 숭배하는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은 이상한 종교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래서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당해야 했다.

어느 시대이든 그리스도인들은 핍박과 순교를 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은 단순히 복음, 즉 그리스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삶에서 비쳐지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는 것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배척을 당한다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보고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특히 저자인 데이비드 키네먼은 미국의 기독교리서치 기업인 바나의 대표로 있으면서 경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평가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또 날카롭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방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한 평판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란 매우 보수적이고 자신들의 사고의 틀에 갇혀 있고, 항상 화가 나 있고, 공격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하고,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이 없지요.”

저자의 말이 자신에게 크게 공감이 간다면 그는 매우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이거나 혹은 이방사람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이유, 특히 세상의 가치와 거슬려 살 때 적대감이나 좋지 않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으로는 정당하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정적 이미지 중에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고의적이거나 아니면 미성숙한 것으로 발생시키는 잘못들이다.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정확한 사람들의 지적과 평가를 다룬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하다. 실수할 수 있고 또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연약함이 이방인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욕먹는 교회, 막혀버린 전도, 이것이 교회의 현실이고, 또 그것이 단지 십자가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행실에서 비롯되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우리는 가고 있는 길을 되돌아서 바른 길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회개의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길을 제시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세상의 평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반성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할 것인가를 다룬다.


“주의 재림, 당신의 준비해야 할 문제”
<당신을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 R·A. 토레이 지음/반민희 옮김/드림북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에 초림에 대한 인식과 지식은 뚜렷하지만 재림에 대한 인식은 많지 않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고 지금 내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림이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한부종말론자를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그분의 재림에 관해 “도적같이 오리라”고 교훈하셨다. 도적은 오는 날짜와 시간을 정하지 않고 불시에 온다. 예수님의 재림도 이같이 올 것이라는 비유적인 말씀이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갈망이 매우 높았다. 마치 아담의 타락과 함께 그들을 구원할 후손에 대한 기대가 아담 당대에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와 같은 형국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초대교회의 기대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런 점에서 그분이 재림한다는 기대에 대한 교회 성도들의 갈망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다. 왜냐면 그것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오직 삼위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대의 종말에 대한 현상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느낀다. 그럼에도 섣부르게 내일이다, 일년 후이다, 10년이 지난 뒤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 책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재림에 대해 먼저 다룬다. 저자는 오직 성경에 설명을 통해 재림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그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기에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긴장’이 없는 현실안주의 신앙생활은 불시에 임하실 주의 재림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재림에 대한 날짜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재림의 준비라는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오신다. 그러나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오실 것이라는 가정 가운데 현재 내 삶을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 36)의 말씀처럼 언제나 준비된 신앙은 재림에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예배를 만날 수 있다

<워십 리바이벌> 라마 보쉬맨 지음/조계광 옮김/생명의말씀사

   
 
 
예배는 기독교의 중요한 예전이다. 예배에 실패하면 신앙의 모든 것이 실패다고 할 만큼 기독교의 예배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실패할 확률이 많다는 점에서 예배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해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참 예배자는 음악, 춤, 깃발, 예배 테크닉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경배하는 것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다. 순수한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예배를 예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we don't worship Worship. we worship God.). 예배는 기술이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살아있는 내적 반응이다.
세상에는 예배자들이 넘쳐난다. 가장 미개한 부족조차도 나름대로 신을 숭배한다. 문제는 예배가 아니라 누구를 예배하느냐이다. 근래 새로운 형식의 예배형식이 도입되고 많은 교회들이 앞 다퉈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참예배자는 음악, 춤, 예배 테크닉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경배하는 것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다. 예배를 돕는 수단은 예배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가능케 할 뿐 예배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순수한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배에 관해 많이 안다고 해서 저절로 참 예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예배는 생각이나 지성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예배는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17년 동안 예배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예배를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더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현상을 체험했다. 그것은 마치 식물이 꽃을 피우도록 물을 주며 돌보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 책의 목적은 열정과 생명이 충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예배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 있다. 예배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면 항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배의 형식이나 예전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것일 뿐 참 예배를 결정짓는 척도가 될 수 없다. 예배는 마음의 태도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이 책은 우리의 예배의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예배의 잠재력과 능력과 소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다. 라마 보쉬맨은 이 책을 통해 예배의 핵심을 정확히 제시한다. 그는 예배의 본질이 단순한 표현방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마음이야말로 예배 부흥의 출발점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무한한 잠재력 발견하기

<순수의식> 톰 스톤 지음/하윤숙 옮김/아시아코칭센터

   
 
 
‘순수의식’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주제다. 일반적인 통념은 ‘깨끗하고 흠이 없는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런 통념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순수의식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뭔가를 경험할 때마다 거기에 함께 하는 것이며, 내 안에 있는 속성으로서 내가 깨어 있는 상태, 내가 살아 있는 상태가 바로 순수의식이다. 또한 정신의 스크린으로서 이 스크린 위에 모든 사고와 지각이 비쳐진다. 순수의식이란 바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이다.

순수의식은 너무 간단해서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한다. 왜냐면 순수의식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배경으로 깔려 있으며, 통상적으로 순수의식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순수의식은 우리의 근본적인 본성이며 바로 살아 있음 그 자체이다. 순수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 있을 수 있으며 지각하고 생각하고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순수의식을 일상생활에서 생활화하게 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영원한 내적 평화를 만끽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며, 삶의 완성이다.

늘 순수의식을 경험하는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완전히 처리되지 못한 우리 안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의 감정 스트레스와 고통의 자료들 때문이며, 우리는 이를 느끼지도 않고 계속 회피하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의식을 경험하는 다섯 가지 기술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처리되지 못한 경험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해결하고 일상의 정상적인 경험과 순수의식 사이에 가로막힌 에너지 장막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마침내 얻은 것이다.

순수의식은 직관을 믿으며 직관을 따라 행동하게 한다. 또한 늘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가게 할 뿐 아니라 과거의 영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즐기며 미래를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순수의식을 알게 되면 감정이 지배당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에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며 예전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충분하게 경험하지만 결코 감정에 휘둘려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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