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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절대악, 조커에 맞서다
2008년 09월 11일 (목) 00:00:00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박쥐탈을 쓴 영웅 ‘배트맨’에 대한 열광으로 전세계 극장가가 뜨겁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배트맨이 아니라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에 대한 반응이며, 배트맨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살인마’ 조커에 대한 열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크 나이트>는 올 여름 블록버스터 경쟁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올 여름 뿐만 아니라 역대 영화사상 두 번째로 많은 흥행수익인 5억 달러를 넘기며 1위인 <타이타닉>의 턱밑까지 추격해 전 세계 영화인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다크 나이트>는 오락영화로 구분되는 블록버스터이고, 영화적 재미가 충만하더라도 ‘허황하고 유치한 이야기’라는 취급을 받는 슈퍼히어로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이번 열풍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걸작 블록버스터가 탄생하기까지

슈퍼히어로 배트맨의 시작은 ‘코믹스’라고 통칭되는 미국만화에서 시작됐다. 1939년 <디텍티브 코믹스>에 처음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만화 ‘배트맨’ 시리즈는 이후 슈퍼맨과 함께 대표적인 미국 슈퍼히어로로 자리잡았다. 1989년에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영화 <배트맨(Batman)>이 제작되면서 영화사에도 배트맨 시리즈가 시작됐다. 영화 <배트맨>은 개봉 당시 암울한 미래상과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고담시의 풍경,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등의 요소로 인해 폭발적인 흥행을 이루어 속편들이 개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이후 <배트맨 2(Batman Returns, 1992)>와 <배트맨 포에버(Batman Forever, 1995)>, <배트맨과 로빈(Batman & Robin, 1997)>을 거치면서 배트맨은 원작의 어두운 영웅에서 벗어나 점점 만화스러워졌고, 이로 인해 관객들도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를 내놓으면서 배트맨의 기원에서부터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했다. <배트맨 비긴스>는 배트맨의 진지함을 다시 찾았다는 것 외에도 슈퍼히어로 영화에 사실주의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사실 만화 원작에서부터 배트맨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딴 별에서 왔거나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었다. 돈의 힘을 빌려 최첨단 과학장비로 자신을 보호하고 악당을 섬멸하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배트맨 비긴스>는 배트맨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을 철저히 부각시키면서 새로운 슈퍼히어로 장르를 탄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올 여름 개봉해 흥행 성공을 거둔 <아이언 맨> 또한 엄청난 재력으로 만들어진 첨단장비를 입은 슈퍼히어로라는 것을 보면 과장과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사실적인 슈퍼히어로는 이제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모델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배트맨의 탄생 기원을 설명하느라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의 활약은 살짝 맛배기로만 보여준 <배트맨 비긴스>는 제대로 된 활약상을 다음 편으로 양보했다. <배트맨 비긴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담시의 청렴한 경찰 고든(게리 올드만)이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에게 “골치 아픈 놈이 있어. 범죄현장에 꼭 카드를 남기지”라며 조커 카드를 보여줌으로써 후편의 악당으로 배트맨의 앙숙 '조커'가 등장할 것을 미리 암시했다. 후편 <다크 나이트>에서도 감독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약속대로 조커를 등장시켰는데, 이 인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악당으로 등장해 관객들을 사로잡게 된다.


모든 매력을 갖춘 영화

<다크 나이트>는 일반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그리고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와 무엇이 다르기에 이처럼 반응이 좋을까? ‘명품 블록버스터’ 또는 ‘블록버스터의 걸작’으로 추대받고 있는 <다크 나이트>는 감히 영화가 가지는 매력을 모두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가지는 특징인 큰 스케일과 과감한 액션장면, 그리고 어둡지만 화려한 영상은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고, 쉴틈없이 물고 물리는 선과 악의 대결은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 허술하다는 오락영화들의 특징을 무색하게 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진지한 삶에 대한 고찰이 더해지면서 <다크 나이트>는 단순 액션영화가 아닌 진정한 명품으로 거듭났다.

관객을 쉴 틈 없이 몰고 가는 액션의 향연은 두 시간 반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짧게 느껴지게 만들고, 장면장면 보여주는 비장한 영상미는 다른 블록버스터의 그것 이상이다. 큰 스케일의 장면을 좀 더 생생하게 담기 위해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한 주요 액션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 속으로 빨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볼거리에만 치중하다 이야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조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악행과 그것을 막으려는 배트맨과 경찰의 대결구도로 빈틈이 없이 이야기를 꾸려간다. 어두운 고담시의 상황과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더 강한 악이 등장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배트맨의 고뇌는 영화를 더없이 진지하게 끌고 간다. 이러한 대립 속에 묻어나는 심리적 대결과 갈등은 액션장면에서의 갈등보다 더 강하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더 나아가 <다크 나이트>에서는 영화적 만족과 함께 등장 인물의 심리적 갈등에서 선과 악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도 찾을 수 있다. 이 메시지는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드러나는데, 바로 조커와 배트맨, 그리고 정직한 검사와 복수의 화신 두 얼굴을 가진 하비 덴트다.


조커, 절대악의 등장

조커를 연기한 배우 히스 레저는 <다크 나이트> 촬영을 끝낸 지 몇 달 뒤인 2008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치 자신의 연기 인생의 모든 것을 담은 듯 히스 레저는 조커를 악의 화신으로 부활시켰다. 히스 레저의 불타는 듯한 조커 연기와 크리스찬 베일의 얼음 같은 배트맨 연기는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두 주인공들은 잘난 체 하느라 바쁜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진지하고 솔직한 연기를 선보여 오락영화라는 장르를 무색하게 한다.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스크린을 지배하는 이미지의 강도와 마치 악에게 영혼을 맡긴 듯한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배트맨의 그것을 압도한다. 조커를 연기하기 위해 그의 몸짓과 정신상태까지 연구를 거듭했던 히스 레저가 촬영이 끝난 이후로도 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만큼 조커의 존재는, 그리고 그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연기는 끔찍할 만큼 완벽하다.

   
<다크 나이트>를 흔히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 즉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하게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조커와 배트맨의 능력을 비교해 보면 둘은 ‘상대가 안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배트맨은 온갖 첨단 장비를 이용해 악당에 대항하지만, 조커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계획 세우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조커의 모든 악행은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혼자 활동하지만 너무도 완벽해서 조커 혼자 힘으로는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모든 범죄의 결과를 꽤 뚫어 보고 있고,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조차 알고 있는 듯하다. 너무도 완벽한 조커의 악행, 따라서 조커는 인간의 경지를 넘은 ‘절대악’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절대악에 대항하는 배트맨이 절대선은 아니다. 배트맨은 고뇌하는 영웅으로 그려지며, 갈등하는 존재임을 시인한다. 인간적인 존재이기에 신의 반열(비록 악의 화신이지만)에 오른 조커에 상대가 될 수 없다. 일례로 배트맨은 고층빌딩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철저한 탈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조커는 빌딩 아래로 떨어질 때조차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와 죽음을 즐기는 자는 상대가 되지 않는 법. 죽음을 초월한 조커는 그래서 절대악의 경지에 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배트맨, 미완의 구원자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절대선이 아니기에 절대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결국 조커를 없애지 못하고 더 심한 혼란만을 야기시킬 뿐이다. 영화 속 배트맨도 이런 자신의 처지로 인해 고뇌한다. 자신이 절대선이라면 조커와 당당히 맞설텐데, 그렇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알기에 시종일관 괴로워한다. 배트맨이 절대선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악을 폭력으로 응징하기 때문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롬 12:21)이 아니라 좀 더 강력한 폭력으로 폭력을 다스린다. 세상의 법의 기준으로 봐도 그는 범법자다. 이런 자신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아는 배트맨은 그래서 솔직한 슈퍼히어로다. 따라서 온갖 폭력으로 악당과 세상을 파괴하면서도 마치 구원자인양 으스대는 다른 슈퍼히어로들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다크 나이트>가 슈퍼히어로물이면서도 걸작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영웅의 등장이다.

   
구원자가 아닌 배트맨은 마치 구약시대 소돔과 고모라를 지키려는 아브라함과 같다. 고담 시(고담시의 명칭은 고모라 +소돔에서 따왔다)의 시민들이 서로를 죽이게끔 상황을 설정한 조커의 계획이 무산되자 배트맨은 조커에게 말한다. “고담 시에는 아직 의인이 남아있다.”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의인의 수를 두고 하나님과 협상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창 18:20~33)과 흡사하다.

배트맨은 자신은 영웅이 될 수 없다며, 법 앞에서 떳떳하게 악을 응징할 수 있는 ‘의인’이 등장할 때면 자신은 더 이상 박쥐가면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지목한 ‘의인’이 될 만한 이가 처참하게 쓰러지자 배트맨의 고뇌는 더 없이 깊어간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배트맨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배트맨이 지키려고 한 소중한 이들, 즉 구원자가 될 의인을 몰락시킴으로써 배트맨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분명 조커는 배트맨보다 한 수 위다.

   

하비 텐트의 동전

배트맨이 악에게 대항할 '의인'으로 정직한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그하트)를 앞세운다. 그리고 자신은 음지에서, 하비 덴트는 양지에서 절대악인 조커에 대항한다. 하지만 조커는 철저하게 하비 덴트를 몰락시킨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앗아가고 그를 파멸로, 심지어 악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하비 덴트가 조커에게 농락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가 믿음, 즉 신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비 덴트는 어떤 결정을 할 때 항상 동전을 던지는 습관이 있다. 처음에는 양쪽 다 앞면만 있는 동전을 사용하여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굳은 신념을 보이던 그가 시련이 닥치자 앞뒷면이 있는 동전던지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믿음이나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이 없이 모든 결정을 운에 맡기는 하비 덴트의 모습은 인간의 연약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절대악 조커가 그 약점을 놓칠 리가 없다.

조커는 하비 덴트가 몰락하자, 그를 무너뜨린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바로 “하비가 가장 순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욥기의 내용과 같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욥 1:11~12). 의인 욥이 사탄으로부터 수많은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로부터 고난당하는 하비 덴트로 표현했다. 이 부분에서도 조커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절대악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하비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운명을 동전에 맡기는 연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는 수많은 메시아가 등장했다.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허상을 죽이면 실제 사람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이들을 죽였던 폭력적 메시아인 <매트릭스>의 '네오'도 구원자로 그려졌다. 반지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은 절대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도 역시 메시아를 상징했다. 이들과는 다르게 배트맨은 세상을 구원하는 백마 탄 왕자가 아닌 범법을 저지르는 미완의 구원자이며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구원자가 아닌 배트맨은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배트맨은 자신이 모든 누명을 스스로 덮어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하비보다 더욱 선하고 신념이 굳건한, 평범한 인간 중에 선을 지킬 수 있는 진정한 구원자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자신은 미완의 구원자임을,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임을 자청하며 어둠의 기사, '다크 나이트'로 존재하기를 자청한다.

인간 중에 절대악에 대항할 만한 절대선의 존재는 어쩌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처럼 배트맨이 기다리는 것은 절대선 한 명이 아닌 의인 열 명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할 줄 아는 ‘다크 나이트’가 의인을 기다리고 있고, 영화는 그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암울한 고담시의 풍경과 조커의 악행으로 인해 시종일관 어둡던 영화 <다크 나이트>는 그렇게 희망을 얘기하면서 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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