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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
한국교회 개혁 위한 또 하나의 쓴소리
2008년 08월 04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기독교 서점을 돌다 눈에 ‘확’ 들어오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조엘 박 지음, 박스북스, <한국교회 비판>)이 그것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저 그런 내용을 포장만 자극적으로 해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책에 손이 갔다. 일말의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아마도 비슷한 제목의 책인 <생사를 건 교회개혁>(김동호 지음, 규장)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시 <한국교회 비판>도 여러 모로 한국교회 내의 가려운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한국교회 개교회주의와 교파주의 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특히 성전건축이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당건축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오랜만에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몇몇 부분은 진한 펜으로 밑줄까지 쳐 놓았다. 기회가 되는 대로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다.

“‘80:20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모든 집단은 그 구성원의 2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린다고 합니다”(p.44).

“교회 안에는 잘못된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부적절한 두 부류가 있는데 첫 번째 부류는 주인공이 되려는 부류이고 나머지 부류는 방관자 부류이다’ 모두가 주연이 되려고 해도 안 되고, 방관자가 되어도 안 됩니다. 좋은 팔로워(follower)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p. 180).

“조연이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은 조연을 ‘연극에서 주연의 연기를 돕는 사람, 또는 그 일’(Supporting performance, Helper)라고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주연을 도와 자리를 빛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은 조연의 정신입니다. 철저히 조연이 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자세입니다”(p.185).

그런데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마음이 조금씩 답답해졌다. 저자가 비판하려고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복음을 추구하기보다는 축복을 추구합니다”는 등의 대목에 와서는 이 책의 저자가 한국교회를 알고 하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한국교회 언론사 기자로 20여 년간 뛰어온 필자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문구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어두운 점을 꼬집는다는 의도로 표현한 것인 줄은 알지만 일부분에서는 ‘헛다리 긁기’인 듯했다. 저자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교회의 트레이드마크(Trade Mark)는 배타주의입니다. 만약 아직도 동의하지 못한다면 다음(Daum)이나 네이버(Naver)에 배타주의라는 단어를 쳐보십시오”(p.15).

“한국교회는 다른 교회를 배타하기 위한 무기로 교파, 또는 교단을 사용해 왔습니다”(p.67).

“한국교회는 교파라는 특성을 수용할만한 성숙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p.74).

“한국교회는 보내는 일에 침묵했습니다. 이 말씀(요 20:21의 선교관련 구절-필자 주)을 기껏 아프가니스탄이나 중국에 단기선교를 보내는 정도로만 해석했습니다”(p.93).

“한국교회는 교회의 지상사명이 성전건축으로 집결됩니다. 자기 예배당이 없는 교회는 그 건축을 하나님에게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p.107).

“상황판단이 되지 않으면 엉뚱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배가 아픈데 머리를 낫게 해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이것이 한국교인들의 문제입니다”(p.168).

“지금 한국교회는 말씀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고, 범사가 잘 되고, 병이나 고치고, 귀신이나 쫓겨나가고, 예언이나 방언하는 일에 호들갑을 떱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표적을 구하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p.245).

“한국교회는 복음을 추구하기보다는 축복을 추구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에 골몰합니다”(p. 226).

   
 
   ▲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 목차
 
한국교회 트레이드 마크가 배타주의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한 무기로 교파, 교단을 사용하고 있는가? 저자의 주장이 옳은가? 납득하기 힘들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사건으로 한국교회의 선교를 운운하는 것 역시 난센스다. 120여 년의 길지 않은 기독교 역사에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선교사 파송 국가라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는가? 한국교회의 선교를 기껏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중국단기선교로 정도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이 책의 저자는 ‘한국교회’라는 ‘사실(Fact)’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 이단 단체 신도가 한국교회를 비판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한국교회는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자꾸 ‘날’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야 말로 이단입니다. 우리는 날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로 참 성경적인 단체입니다”라고 주장하며 한국교회 성도들을 유혹하곤 했다. 안타깝지만 적지 않은 기성교회 성도들이 그 단체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교회가 언제 ‘날’을 지킨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성탄’을 지킨 것인가 아니면 그 ‘날’을 지킨 것인가? 심지어 우리가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부활절은 그 날이 매년 다르지 않은가? 이런 꼴이다. 이단 신도는 개신교를 출처도 없는 ‘기신교’ 정도로 알고 공격한 것이고, 슬프지만 일부 우리네 성도들은 그것이 우리 모습인줄 알고 이단 신도에게 유혹되고 만 것이다.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마치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했다며 무조건 야단치는 이웃집 아주머니’라는 상황이 연상되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럼에도 한국교회를 향해 내뿜는 저자의 독소는 한국교회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교회버스를 매각하자, 건축을 위해 준비해 둔 대지를 팔자, 고급용지의 전도지와 주보 경비를 줄이자, 1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기도원을 팔자, 담임목사의 고급 승용차를 없애자. 화려함을 지양하고 가장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자’는 등의 주장은 당장 실현 가능한 일들이다. 또한 그것으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강조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의 비판에 해당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한 대형교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그 교단 산하 75% 교회가 미자립교회라고 한다.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은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보아 의미 있는 숫자로 보인다. 흔히 약 5만여 개의 한국교회 중 90%는 성도 수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 수 전체 중에 10%만이 100명 이상의 교회라는 말이다. 더욱이 교인 수 1천명 이상의 중 대형교회는 2~3%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우리네 교회의 모습은 한 마디로 중대형교회의 그것들이다. 교회버스, 건축용 대지, 기도원, 고급승용차 등은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극히 일부 중대형교회들에 해당되는 문제일 뿐이다.

저자는 책 표지에 ‘3천242명이 대형교회를 떠났다’는 문구를 넣는 등 대형교회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의 지적이 상당 부분이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한국교회 문제’라고 말하기에는 불합리하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에서 <맞아죽을 각오로 쓴 일부 대형교회 비판>이라고 하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 같다. 왜 그런가? 저자의 시각이 백번 옳아도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의 왜곡된 시각은 ‘류광수 다락방 공청회(저자는 청문회라고 잘못 표현했다)’ 사건을 언급한 대목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98년 8월 27일 서울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사랑성전에서 열렸던 ‘류광수 목사 이단성 검증 공청회’를 두고 한 말이다. 저자는 그 공청회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증인으로 출두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를 가리는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 내내 이단의 문제에 대해선 논하기보다는 류광수 목사의 음주운전을 운운하다가 아무런 결과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p.91).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술과 담배 문제는 각자 자율에 맡겨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시비를 걸지 말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본질을 잊어버리고 지나치게 술·담배 문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먼저 ‘류광수 목사 이단성 검증 공청회’에 대해서 저자는 크게 오해하고 있다. 그 공청회에서 류광수 목사 이단성 문제의 핵심인 ‘재영접설’과 ‘사탄배상설’ 등에 대한 문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 졌다. 물론 음주운전과 뺑소니 사건 등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견해도 있었다. 목사의 음주문제가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그 공청회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입견으로 사건을 판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저자의 선입견은 또 발견된다. 저자는 지난 2007년 9월 4일 서울 연동교회(이성희 목사)에서 ‘증오 받는 한국교회, 나 때문입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장로교 목사 안수 100주년 기념 기도회’를 들었다. 그 기도회의 기도 전문까지 소개하면서 저자는 ‘참회와 성찰이 있는 기도회였다’고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그런 후 그는 한 기자가 쓴 ‘눈시울이 젖거나 목이 메인 목회자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보였다)’는 기사에 대해서 갑자기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 기사에 대해서 곧바로 “문제는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p.66)고 혹평을 했다. 그렇게 평가를 받아야 될,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어떠한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감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 대형교회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에 대해서 지나친 배타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친 가톨릭교회(천주교)성 발언도 귀에 거슬렸다. 한국교회의 면면을 비판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잘 하고 있는 곳을 들어 비교하려고 한 점은 이해가 가지만, 가톨릭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한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한국교회는 가톨릭을 배타하지만 한국교회는 가톨릭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p.30).

“성남에 있는 어느 가톨릭교회가 교인들이 많이 늘자 더 큰 건물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 교회를 짓는 일을 포기하고 인근 지역의 세 개의 교회에 교인들을 나누어 보냈습니다”(p.113).

이 책의 저자인 조엘 박 목사는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성당의 건물, 수녀, 신부 등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을 정도다. 마치 한국교회의 부패를 더욱 밝혀내기 위해서 가톨릭교회의 거룩함을 사용하려는 듯해 보인다. 구역질나는 대입이다.

교회당 건축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대안과 같은 식으로 드는 예가 가톨릭교회의 예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는가? 한국교회를 무시하려고 색안경을 쓴 것이든 아니면 가톨릭교회가 환상으로 보이게 하는 안대를 착용한 것이든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한국교회 교파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교파문제를 북한의 주체사상과 연결시키려는 것(p.69, 73)과 술 담배 문제를 유대인의 모습과 연결시키는 장면(p.89)은 지나쳤다. 마치 양복입고 갓을 쓴 모양과 같다.

그럼에도 저자의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책 속에 깊숙이 녹아져 있다. 사실 한국교회를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고는 이러한 지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깊숙이 파내는 지적이 계속 나타나야 한다. 저자가 이 책으로 인해 한국교회로부터 정말 ‘맞아 죽을지’ 아니면 ‘무시당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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