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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의 계시록 4장 오해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19
2008년 07월 27일 (일)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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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재난 영화를 좋아한다. 빙하, 지진, 홍수 등의 자연 재해가 금방이라도 실제 올 것 같은 생각이 그런 영화에 흥미를 끌게 한다.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등의 종말 재난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인식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지구에 빙하시대가 온다는 ‘투모로우’(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지구가 혜성과 충돌한다는 ‘딥임팩트’(감독 미미레더), 거대한 유람선이 침몰한다는 ‘포세이돈 어드밴쳐’(감독 로랄드 님) 등이 그 동안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들이다.

재난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이라 할 수 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목숨과 이익만을 위해 살살 피해 다니는 이들이 꼭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제 갈 길로 가게 된다. 그와 반대로 희생정신을 발휘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는 의인도 등장한다. 그 의인이 종종 죽음의 선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관객들의 마음은 ‘짠-’해진다. 재난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순수한 모습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이런 영화를 찾는 이유다.

요한계시록을 재난영화로 비유해서 본다면 너무 극단적일까? 죄와 악으로 뒤덮여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 마치 재난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상의 모습을 재난 영화로 묘사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엄청난 재난의 영상일까? 아니면 그 속에 숨겨진 따뜻한 인간애일까? 그것들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 이만희 씨(cbs 보도)
 
이만희 씨는 위 질문에 대해 그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 ‘사도요한의 입장에 있는 특별한 존재(인간)’를 만나야 한다는 식으로 답을 하고 있다. 그 특별한 존재란 누구일까? 혹시 이만희 씨 자기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 씨는 요한계시록 4장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그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계시록 성취 때에는 사도 요한의 입장에 있는 목자에게 천국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이 씨의 책, p.117). 이는 계 3장의 해설 결론 부분인 “따라서 만국 백성은 이기는 자를 통해서 천국과 영생을 얻고 예수님께 갈 수 있다”(이 씨의 책, p.103)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1, 2장의 해설 결론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다. 즉, 이만희 씨의 요한계시록 해설의 결론은 어디를 보아도 그 흐름이 일치된다. ‘특별한 존재’를 만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

요한계시록 4장의 내용이 과연 이 씨의 주장과 같을까?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4장의 핵심 내용은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본 것이다. 보좌에 앉아 계신 이와 또한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그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감동에 찬 모습으로 요한이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를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씨는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말부터 오해를 하고 있다. 그는 성령에 감동하여 본 것을 마치 ‘허상’이라도 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가 “사도 요한은 본문에 기록한 하나님의 보좌를 환상으로 보았을 뿐”(그의 책, p.109)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 이유다. 그는 계속해서 성령에 감동하여 보았다는 뜻을 다음과 같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계시록 성취 때에는 그와 같은 입장으로 오는 목자가 있어 참 하나님의 보좌 형상을 본다는 점이다”(p.109). 무슨 말인가? 사도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본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특별한 존재가 보는 것(또는 그 내용을 해석해 주는 것)이 진짜(이 씨는 ‘실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라는 말이다. 이 씨의 관심은 요한계시록의 해설을 통해 우리도 성경대로 하나님을 더욱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있다.

이 씨가 오해한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라는 말의 뜻을 무엇인가? 이는 그 상태가 성령에 의해서 생포되어 황홀한 지경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요한 자신의 정상적인 감각들이 성령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시각들과 청각들로 대체되었다는 말이다. 즉, 성령에 의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그의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오히려 보통의 상태보다 더욱 또렷하고 정확하게 보고 듣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을 ‘엔 프뉴마티’라고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미 지난 호(분석 9)에 소개해 놓았다.

계 4:3은 요한이 본 보좌에 앉으신 이, 즉 하나님에 대한 묘사다. 요한계시록 4장의 핵심 중 한 부분이다. 성경을 살펴보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벽옥과 홍보석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로움을 뜻하는 상징어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미한다. 한 편의 재난 영화 같은 대홍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노아 방주를 통해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서’ 본 것이다.
 
이 씨의 성경해설은 마치 단어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다. ‘이십사 장로’, ‘일곱 등불의 영’, ‘유리바다’ 등 본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식이다. 본문 전체가 지향하고 있는 핵심을 놓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의도하고 있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계 4:8~11은 하늘 보좌 주변에 있는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를 향해 경배하고 찬양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자신은 물론 재난과 같은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동일하게 고백하며 살아야 함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계 4:8, 개역개정).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개역개정).

이만희 씨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았다. 못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안 한 것만도 못했다’라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도 있다. 지금 그 말이 ‘딱-’ 이만희 씨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이 씨는 8~11절의 경배와 찬양의 내용 중 한 부분에 대해서 해설한다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언제 어디로 오시는가?(8절)”(이 씨의 책, p.116).

이 씨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엉뚱한 답으로 결론을 내렸다. “천국이 본래 있던 영계로 떠나갔다”는 것이다. 동문서답이다. 그는 결국 ‘이긴 자에게 임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엉뚱한 해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차라리 이 부분 전체를 언급하지나 말았으면 말 그대로 ‘중간’이나 갔을 것이다.

이 씨는 계 4:8의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는 구문을 해설한다며 손을 댄 것이다. 위 이 구문은 계 1:4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씨는 그 때에도 역시 이 부분을 해설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런 그가 계 4장에 와서 그 본문 중 일부분인 ‘장차 오실 이’만 떼어내 해설한다며 자신의 어떠함과 연결시키려는 어처구니없는 모습까지 보인 것이다. 

 

   
 
   ▲ 이만희측 신도(cbs 보도)
 
그렇다면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ο ων και ο ην και ο ερχομενος, 계 4:8)란 구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 구문은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 ‘역동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1:4),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1:8),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4:8),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11:17),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16:5) ).

본문의 구문과 같이 세 개의 시제로써 신적 존재를 나타내는 형식문들은 그리스 신들이나 철학적 지고신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이것이 후에 유대적 해석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다시 요한계시록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Richard Bauckham, pp.28~30).

삼중적 시제의 형식에서 미래형 대신에 현재분사형으로 다가올 세대를 뜻하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단순한 미래적 실존이 아닌 구원과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도래하시는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미래를 묘사하는 효과를 얻게 했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구원과 심판을 위해 오실 것이라는 구약의 많은 예언적 메시지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참조 시 96:13; 98:9; 사 40:10; 66:15; 슥14:5).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구약의 메시지들을 세상을 향한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오심으로 이해했다. 이것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ο ων και ο ην και ο ερχομενος)라는 구문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관용구다. 이 구문 중 ‘장차 오실 자’(ο ερχομενος)라는 표현이 관심을 끈다. 앞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라는 표현은 당시 로마 황제를 지칭하기도 한 것으로, 당시 사람들(헬라인)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현상을 유지시켜주는 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장차 오실 자’라는 표현을 더 첨가시켜 하나님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영화 <포세이돈 어드밴처>
 
이 표현이 의미하는 요점은,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으로, 곧 현재의 상황을 뒤집어엎으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새 창조(계21:5~6)의 하나님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종말의 끝까지 존재하여 왔던 모든 것이, ‘장차 오실 이’, 곧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변화에 휩싸이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홍창표, p.139).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기억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재난 영화는 ‘포세이든 어드벤처’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 목회자의 희생으로 여러 명이 극한 상황에서 탈출하게 되는 장면이 여러 면에서 감동을 주었다. 일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은연중에 드러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접하는 독자가 만약 영화 감독이라면, 재난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겠는가? 우리네 삶이 재난과 같은 현실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길을 제시해 주겠는가?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비성경적인 길인가 아니면 성경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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