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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수 씨의 이단성은 무엇인가
1996년 07월 01일 (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서론 : 본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

한국교회에는 이단논쟁이 그칠 날이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 편에서 어느 집단이나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면 다른 편에서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고, 또는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느냐',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터인데 웬 이단논쟁이냐'는 식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런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락방 전도훈련원의 류광수 씨의 이단성 논쟁은 최근에 한국교회의 이단논쟁의 핵심 중에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계속 교계 주간지들과 모 일간지를 통하여 다락방이 이단이 아니라는 광고를 하고 있으며, 필자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게 다락방의 이단성을 묻는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필자는 한국교회의 유익이라는 명분 하에 많은 사람들의 이단성을 밝혀 왔다. 그러면서 필자에게는 남이 모르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그 하나는 만(萬)의 하나 필자 중심의 이단 규정이 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개인의 감정 때문에 누구를 이단이라고 한 일이 없다고 자부하며, 또 어떤 사람에게 십(拾)이나 백(百)의 이단성을 느끼면서 그것을 천(千)이나 만(萬)으로 확대하거나, 또는 반대로 만이나 천의 이단성을 백이나 십으로 축소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필자의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필자의 이단 논쟁이나 규정이 객관적으로 옳다는 증거가 되지 못함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필자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지적해 준다면 언제라도 수정 및 사과할 뜻이 있다.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인 진실이지만 독자들과 특히 류씨 편에 있는 사람들이 필자의 진실을 최소한 최대한 이해해 주기 바라며 글을 쓴다.

또 다른 하나의 고민은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고 한 그런 의미의 비판을 할까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참과 거짓을 가리지 말라는 말도 아니요, 더욱이 이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단 비판은 물론 이 땅에 설교까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목사도 거짓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의미의 비판자가 될까 염려스러워 늘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다.

필자가 류씨의 이단성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를 느낀 것은 류씨를 이단으로 정죄하자는 것보다 어떤 것이 참이냐를 밝히자는 것이다. 이 점을 류씨나 그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를 외람스럽게 바라며 글을 쓰는 바이다. 류씨의 말처럼 신학을 한 배경이 류씨나 필자가 같다는 점에서 기준도 같을 것이다.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신학적이고도 성경 해석적인 논쟁이 되기를 바란다.

I. 한국교회에 류광수 씨의 이단성이 문제가 된 과정

문제의 발단은 1991년 11월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후 예장 합동) 총회 소속 부산노회가 133회 임시 노회에서 류광수 씨를 면직시킨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이단 집단과의 관련성, 기성 교회에 대한 비판, 교회의 분열을 조장,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잡혀 수감된 일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후 류씨는 면직 당한 목사로서 그냥 다락방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활발히 해옴으로 이 운동은 계속 커지게 되었고, 따라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교회에 문제를 일으킴으로 정통 교회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여러 교단과 사람들로부터 이단인지 아닌지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연구는 그만두고 교단의 연구만 개괄적으로 살펴 보겠다.
먼저는 예장 합동측 교단으로부터 류씨의 이단성 여부를 다시 연구하기에 이르렀고, 역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후 예장 통합)에서도 연구 중이니 그 결과는 이번 가을 총회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리교 등 무려 6~7개 교단들이 류씨의 이단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연구를 완료한 교단들이 있다. 먼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이후 예장 고신)에서는 1995년 9월 18~22일 제45회 총회시(총회장:이금조 목사)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훈련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정하였다. 이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측(이후 예장 고려)에서도 1995년 9월 19~21일에 열린 제45회 총회시(총회장:김태윤 목사) 역시 류씨의 사상을 비복음적이요, 비개혁주의적이란 이유로 참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측(이후 예장 개혁)에서도 1995년 19일~22일까지 열린 제80회 총회시(총회장:정종환 목사) 이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1996년 가을에 예장 합동측의 재연구와 예장 통합측의 연구 결과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보여진다.

II. 그 동안 류광수 씨에게 제기한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나 교단적으로 류씨에게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윤리적인 문제요, 다른 하나는 교리적인 문제이다.

A.윤리적인 면에서 지적된 내용은 무엇인가?

사실 류씨의 비윤리적인 문제는 필자의 관심의 주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류씨의 비윤리적인 부분에 대하여 언급된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우선 이 일이 사실이라면 류씨로서는 감추고 싶고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예장 합동측 부산노회의 보고에 의하면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었고 뺑소니를 하여 구속된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신문지상에서 종종 목사가 뺑소니를 하다가 잡히는 경우를 보고 어떤 점에서 동정심을 느낀다. 필자라도 순간의 판단을 잘못하여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씨의 경우 음주 운전과 뺑소니가 사실이라면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렇게 된 상황은 순간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와 동정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것은 공인으로서 가질 태도가 아니며 더욱이 목사로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내용에 대하여는 변증을 하면서도 이 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변명한 것을 찾을 길이 없으니 그것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류씨가 이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기 바란다.

두 번째로 지적된 것들은 대부분 교회와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이것도 교회관에 관계된 교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 필요한 부분은 교회론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예장 합동 부산노회에서 류씨를 교회 행정에 순종하지 않는 목사로서 기본 자세가 정립되지 못한  자라고 한 말이나, 정통교회 98%가 마귀에 사로 잡혔으며 90%는 싸우고 갈라져 세워졌다고 비방하여 정통교회를 부정한다는 말이나, 예장 고신측에서 류씨의 과격한 말이나 극단적인 표현들을 문제 삼은 부분은 여기에 속한 것들이다. 류씨는 여러 교단이 자신을 이단시하는 교리적인 내용들 중의 대부분의 것은 자신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교단의 몰이해나 오해 또는 자신의 말의 실수를 확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몇 가지 교리는 자신이 보는 시각에는 잘못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천사동원권' 같은 것이 그것이다(필자는 류씨가 천사동원권에 대해서는 그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밀도 있게 비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류씨가 웬일인지 말의 실수라는 전제하에 자신의 말의 과격성 같은 것들은 시인한 바가 있는 것이다(본지 95년 12월호 참조). 어쨌든 필자는 류씨가 더 선명히 자신을 이단시하는 근거와 내용에 대하여는 물론 비윤리적이라고 지적받는 부분에 대하여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능동적으로 시인과 사과 및 회개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B. 교리적인 면에서 지적된 내용들은 무엇인가?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부터 독자들은 류씨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지적한 내용들이 류씨의 말처럼 교단들이 류씨의 사상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류씨가 이단적인 말과 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쳤으면서 그것을 시인하면 이단논쟁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 피하려는 류씨의 일시적이고도 임시방편적인 변명인지, 아니면 류씨가 어쩌다 한 실수요 교단은 그것을 억지로 확대해서 그를 이단으로 몰아 세운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필자가 보기에 그 동안 류씨에게 지적된 교리적인 내용들은 여러 가지인데, 필자 편에서 논쟁할 만한 핵심은 3가지라고 보여진다. 가능한 평가는 뒤에 결론 부분에서 하고 오직 소개만 하도록 하겠다.

1) 교회관이 잘못되었다
류광수 씨가 한 마디로 교회를 해롭게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말로는 "교회는 98%가 마귀에 사로 잡혔으며 90% 이상이 싸우고 갈라져 세워졌다."는 말로 시작해서 "한국 기독교에 강력한 도전 세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위의 98% 마귀에 사로잡혔다는 말이 류씨의 말처럼 어쩌다 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의 중심 사상에서 나온 말인데 그 말이 자신의 전도 활동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실제적으로 여러 교회들이 다락방운동으로 인하여 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상담 사례가 있다. 과연 이 운동 속에 반교회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통교회에 유익을 주는 운동인데 정통교회가 그들을 이단시하니까 자구적 본능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아니면 류씨의 사상은 그렇지 않은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류씨의 사상을 잘못 전달해서인지, 또는 교회에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일 뿐인데 그것이 다락방이라는 운동과 함께 얽혀서 발생함으로 다락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법과 절차에 따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류씨의 교리 자체를 살펴보고 나아가 현상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류씨의 교회관에는 문제가 없는데 현상학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수는 없을 것이요, 현상학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류씨의 교회관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류씨의 교회관을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다락방을 공부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즉 류씨나 이 다락방운동을 우상화 내지는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는지, 또는 이 운동을 전도의 수단 이상으로 보고 있거나 교회 이상의 운동으로 보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종종 이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 중에 이 운동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다락방 편에서 낸 광고 문구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이 말은 참으로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다락방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상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연 목숨을 걸어도 될 만한 운동인가?

2) 정통교인들을 다락방의 구조 속에서 예수를 다시 영접시킨다
류씨는 다른 점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이 점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믿는 자에게 재 영접해야 한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식 밖의 이야기임을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고백합니다."(국민일보, 1996. 5. 2. 광고)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졌다. 만일 류씨의 사상 속에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의미 이상의 영접의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그리고 다락방을 한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교인들에게 예수를 다시 영접하도록 말하고 권고하는 경우가 있다면 분명히 이는 이단적인 행위요 사상임을 류씨도 인정한다는 말이다.

결론 부분에서 류씨의 사상속에 예수를 믿는 자에게도 다시 영접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 증거를 제시하고 비판하겠다.

3) 마귀론의 영향을 받았다
이 점이 류씨가 이단이냐 아니냐의 핵심 문제라고 본다. 즉 그의 신학의 핵심 부분에 김기동 씨의 마귀 사상이 차지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즉 마귀를 멸하려 오신 예수를 알아야(요일 3:8) 예수를 아는 것이요, 예수를 믿는 것이요, 그것이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류씨가 어떤 부분에서는 김기동 씨를 비판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류씨의 `천사동원권' 같은 것도 바로 마귀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류씨는 이것도 부정한다. 자신이 김기동 씨의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했다는 말은 헛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류씨가 김기동 씨의 베뢰아 훈련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 류씨에게 김기동의 귀신론적인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는 답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공부를 한 사람도 사상은 다를 수 있으며, 직접 가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그보다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없었어도 사상은 똑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류씨에게는 귀신론의 영향이 있다. 이 점도 결론 부분에서 그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비판하겠다. 그것이 김기동의 귀신론이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다. 단지 그의 신학의 핵심 부분에, 즉 구원론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비성경적인 마귀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필자는 귀신론, 또는 마귀론의 영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타에는 그의 사탄 보상설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위의 사상을 그의 이단성의 핵심으로 보고 논지를 제한하여 진행하겠다.

III. 류광수 씨 편에서 하는 변증의 내용은 무엇인가?

다음은 위의 지적들에 대하여 류씨나 류씨 편의 사람들이 글과 말로 하고 있는 답변들을 필자 편에서 분석해 본 것이다.

A.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히며 능력과 기적이 일어난다

이 다락방 운동은 1992년 9월에 `1단계 전도합숙훈련' 제1기생을 시작으로 그 뒤로 4년 남짓한 지금까지 100기가 넘도록 이 훈련 과정이 진행됐으며, 훈련받은 인원만도 1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말하며 그 중에 3,000명 이상이 교역자라고 한다(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 pp.182~183).

그리고 저들은 이 다락방 운동을 통해 침체되어 가고 있는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독특하고도 유일한 운동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훈련을 받았고 더욱이 이 운동을 통하여 초등학교 전도, 중.고등학교 전도, 대학교 전도, 무당 전도, 개척교회 전도, 큰 교회의 증거, 선교사들의 증거를 열거하며 자신들이 이단일 수 없다는 것이다(국민일보, 96. 5. 18. 광고).

언제나 자신들을 통해 일어나는 선교의 역사와 기적적인 사건들을 자랑하고 강조하고 있다. 류씨의 설교 테이프에서 직접 인용해 보자. 천하에 똑똑한 사람도 자신들을 통하여 일어나는 기적을 보기만 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것이다.

'천하없이 똑똑한 사람도 증거 앞에는 할 말이 없어요. 그렇지요? 우리 교회 예배 때마다 증거 나타나고, 자꾸 밀려들어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여러분이 주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이는데 아무리 지식인도 말 못해요.'(류광수, 복음편지, Vol. 3B).

좀더 살펴보자. 위의 신문에 난 글 중에 재미있는 말이 있어서 하나만 직접 인용해 보고 싶다.

'얼마 전에는 `심진송' 무당이 대한민국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떠든 바가 있었습니다. 우리 요원 목사님 한 분이 청와대 비서실장 장로에게 전화해서 언론이 자제하도록 요청한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흥시에 있는 심진송 무당집 근처에 봉고차를 세워 놓고 점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1:1로 전도를 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예수 영접하고 복체를 헌금하고 돌아간 증거가 많습니다. 심진송 무당은 견딜 수가 없어서 서울 강남구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 시간 심진송 윗집에서 다락방 말씀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어느 누가 심진송에게 전도했습니까?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심진송에게 전도하는 다락방 전도요원들이 사이비입니까? 사이비요 이단이면 심진송 무당이 웃을 것입니다.'(국민일보, 96. 5. 2. 광고)

물론 이 말은 무당까지 전도하는 자신들을 알아 달라는 말로 들을 수 있다. 류씨는 웬일인지 전도의 이유와 방법마저도 우상숭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마귀, 귀신, 우상숭배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다. 류씨는 1996년 2월 5일자 <한국선교신문>에서 "전도해야 할 이유가 뭔가?"라는 항에서도 전도의 이유를 오직 우상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우상을 청와대로 옮겨 놓고 실패의 종말을 맞이했고, 5·18 사건에 휘말린 전직 대통령도 우상숭배를 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 분은 팔공산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지금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일본이 망한 것도 신사참배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는 30만의 역술인과 50만의 무당이 있음을 말하며 전도의 이유를 말하였다.

칼뱅은 말하기를 인간은 우상 제조기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항상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상숭배는 전도를 해야 하는 하나의 소극적인 이유는 될 수 있지만 적극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위의 말 중에 일본이 망한 것도 신사참배 때문이라는 말도 얼마나 억지스러우며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말인가? 일본은 패망 후에도 신사참배와 우상숭배가 더 증가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우상을 제일 많이 숭배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금 최상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은 그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이제 앞으로 망한다'고 하겠는가?

물론 하나님의 백성을 제하고는 다 망하게 되어 있다. 비록 도덕적으로 선해도 말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지만 불신 자체가 우상숭배요, 또 불신은 우상숭배를 가져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전도의 의무를 류씨의 말처럼 우상숭배와 연결시켜 말하고 있지 않다. 전도는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가 해야 할 당위인 것이다.

또한 필자가 볼 때 류씨가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혔다고 하는 광고를 보고 그 사실성을 확인하기에는 구체성과 신빙성이 약하다는 것이요, 또한 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이비 이단이 아니라는 증거로 보는 그 시각에 참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이단의 현실을 보면 이단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그런 논리를 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이 바른 신학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단인지 아닌지 잘 안다는 말을 하는 점에 비하면 모순된 말로 들린다.

위의 광고를 볼 때 사이비 이단 문제를 무당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는 점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류씨의 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단들은 무당마저 웃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건전한 신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교단들, 즉 류씨로부터 건전한 신학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정받은 합동측과 고신측 교단이 류씨를 이단시 결의한 것을 보면 이 교단들은 무당 심진송이 웃을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다락방에 속한 사람들과 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전도의 열심을 자랑한다. 전도의 열심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모든 열심이 다 바람직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열심의 내용과 동기와 목적과 방법이 반드시 성경적일 때만 그렇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망의 언덕을 향하여 달려가는 비행기와 같아서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 된다. 기어서라도 생명의 언덕을 향하여 가야지 죽음의 언덕을 향해 빨리 가면 그만큼 빨리 죽을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이단들에게 더 열심이 있음은 한국교회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예컨대 필자는 지금까지 시한부종말론자들만큼 종말신앙이 뜨거운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고, 김기동 씨만큼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구원파만큼 구원의 열심이 큰 사람들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B. 다락방은 하나의 전도 운동인데 이단 운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류씨는 자신을 전도자로 보아 달라고 말하였다. 국민일보 96년 5월 2일자 신문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조사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답변서'라는 광고 중에 `재영접설에 대한 답변'이란 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마시고 전도자로 보아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말에 모순을 두 가지로 지적하겠다.

첫째, 이 말이 객관적으로 모순된다.
신학이 가장 변질되기 쉬운 곳이 선교 현장이다. 그래서 선교학에서는 이단 문제를 더 심각하고 날카롭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단논쟁에 무슨 전도자니 선교사니 목사니 신학자니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비판 기준은 원칙론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복음을 변질시켜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류씨는 스스로 정통신학을 했다고 말하는 목사로서의 전도자다. 전도자나 선교사는 이단논쟁의 안전지대에서 있을 수 있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목적 없는 방법은 없듯이 전도의 방법도 신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전도자에게도 신학이 있다. 그것이 반드시 이단논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단사상이 있을 때에는 이단논쟁을 일으켜야 한다.

둘째, 이 말이 주관적으로도 모순된다.
물론 모르는 것은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어린 사람에게 어른과 같은 윤리를 요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신학생과 신학교 교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서 이단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신도 전도자에게 신학자와 같은 수준의 교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 얼마든지 전도자에게 동정과 이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류씨가 이런 말을 하려면 전도자로서 무슨 이단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할 일이다. 이단성이 없다면 전도자니 신학자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류씨는 자신에게 어떤 이단성이 없다고 말하면서 전도자로 보아 달라고 하는 말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모순된다.
더욱이 다락방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락방을 하나의 전도 단체라고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다락방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문제는 후에 교회론에서 다시 비판하겠지만 하나의 전도운동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참으로 외람된 것이다.

다락방에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의 전도운동으로 주장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도 교회 이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전도자에게 이단논쟁을 일으키는 것이 옳지 못한 것인양 말하는 것은 스스로도 모순된 소리이다.

이 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월간 <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를 인용해 보겠다. 류씨도 <목회와 신학>의 입장이 다락방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여길 것이다.

'다락방전도를 교회성장의 수단이나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달려들면 99퍼센트 실패할 것입니다. 저는 다락방전도를 통해 순수하게 복음 전하겠다. 철저히 하나님의 소원을 따르겠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락방전도는 전도 이전에 하나님과 성경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습니다.'(목회와 신학, 96년 2월호, p.188).

이는 서울 목동에서 다락방운동을 지지하며 K교회를 목회하는 K목사의 말이라고 하였다.
어떤가? 다락방은 하나의 전도운동으로 볼 수 없다. 그러니 류씨의 위의 말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모순된 소리다.

C. 인간으로부터 나왔으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면 망하지 않을 것이니 이단 운운하지 마라

이 말도 <국민일보> 96년 5월 2일 광고에 나온 말이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그러므로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에 대한 입장을 한국교회와 교계가 어떻게 취해야 될 것인가를 가말리엘 교법사의 말에서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말리엘 교법사 가로되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24~39). 따라서 제한적인 인간의 생각과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과 복음사역을 잘못 판단하거나, 그릇되게 이단으로 규정하면 그 잘못된 결정과 실수로 인해 나중에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판단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의 사역(The work of God)임이 확인되면 생명 걸고 동참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국민일보, 96. 5. 2. 광고)

어떻게 신학을 총신과 고신에서 했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필자에게는 이런 말이 오히려 류씨 스스로 정통교회의 시각으로는 자신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위의 말은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이단논쟁을 피하려고 인용하는 전용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일교가 이 말을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은 이단이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예수교성결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이재록 목사도 같은 말을 하였다.

위의 글을 본인 편에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 이해된다. 첫째,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니 사람이 이단이다 아니다 하지 말고 이단 문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다는 것이요, 둘째,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단논쟁을 하거나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셋째, 이단 문제를 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인가?
첫째,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 성경에서는 류광수 씨의 말처럼 이단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두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만 예를 들겠다. 요한은 이단과는 인사도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하였는데(요이 1:10),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단을 판단할 수 없도록 하셨다면 하나님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신 것이다. 이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누가 이단인지 알고 이단과 인사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분명히 우리가 이단을 알아야 하고, 알 수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이 아니겠는가?

물론 궁극적인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정통교회는 이것을 부정하기에 이단을 규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통교회가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진리를 따라서 하는 일이요, 그것이 성경이 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 기자마다 이단을 경계하지 않았는가? 특히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점이 더욱 선명할 것이다. 이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면 우리는 이단을 알 수도 없으니 따라서 경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둘째, 교회사적으로 잘못되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류광수 씨의 말은 맞지 않는다. 만일 류광수 씨의 말이 맞다면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이단논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정통교회가 먼저 정통신학을 말하고 그 후에 이단이 이단 교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단이 먼저 이단의 교리를 가르침으로 이단에 대한 변증의 필요가 정통신학을 낳은 것이다.

류광수 씨의 말에 의하면 정통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회의를 통하여 이단을 규정해 왔는데 이는 다 잘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아리우스나, 아볼로나리우스나, 에비온파나, 유디키안이나, 사벨리우스 등 누구든지 교회사적으로 이단으로 규정된 모든 사람들이 이단으로 규정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이 되지 않겠는가?

셋째,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 "누가 이단이다"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면 똑같이 누구를 "이단이 아니다"라고도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문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라면 이단이 아니다는 말도 역시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단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엇이 이단이 아닌지도 모를 일일 것이다. 류씨의 말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류광수 씨는 자신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교훈하면서 자신은 이단이 아니라는 변증은 자신이 스스로 하고 있는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이다. 류씨를 이단이라고 하는 자도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요,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니 말이다.
(월간<교회와신앙> 199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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