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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 마음 문 흔들릴까?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18
2008년 06월 27일 (금)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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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상담 차 방문한 것이다. 같이 식사를 하고 차를 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물론 그의 고민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 교환을 했다. 그러던 중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문득 “평소 자네가 꿈꾸어왔던,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순간 당황해했다. 뜻밖의 질문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진지하게 답을 했다.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 다음부터 나오는 그의 고백은 오히려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술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그는 선생님이 된 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온 것이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그의 꿈은 지금 그가 걷고자 하는 길과 매우 달랐다. 다시 말해 꿈과 현실이 따로따로인 꼴이다.

‘꿈에 도전해 보라’고 권면했다. 마음에 담긴 꿈을 선교의 방법으로 폭발시켜보라고 제안해 본 것이다. 그는 큰 숨을 내 쉬었다. 조금 더 긴장된 얼굴을 띠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는 했지만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점에 대해서 같이 인식했다. 기도제목이 된 것이다.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읽으면서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만희 씨의 마음의 문도 두드리시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소망이기도 하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만희 씨가 구원자?

 

   
 
   ▲ 이만희 씨 부부(cbs 보도)
 
이 씨는 요한계시록 3장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2장 결론에서 “편지에 말한 사건과 약속은 3장과 함께 결론내리기로 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3장의 결론은 사실상 2-3장의 결론이라는 셈이다.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영생과 천국을 얻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 사단의 무리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들이 여러 명이 있으나 그들이 전부 예수님께서 ‘약속한 목자’라는 말은 아니다. 이기는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이 씨의 책, p.101).

“주 재림을 앞둔 오늘날 성도는 계시록이 응하는 것을 확인하여 무엇보다 2, 3장에 약속한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이 씨의 책, p.102).

“구약 39권이 예수님 한 분을 증거한 책이라면(요5:39) 신약 27권은 이기는 자 한 사람을 알리는 말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상고하여도 이기는 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이 씨의 책, p.102).

“<결론> 따라서 만국 백성은 이기는 자를 통해서 천국과 영생을 얻고 예수님께 갈 수 있다”(이 씨의 책, p.103).

무슨 말인가?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2~3장의 결론을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한 마디로 ‘이긴 자=구원자’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특정인 한 사람이라고 지적한 그 ‘이긴 자’를 이만희 씨는 누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예수님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긴 자를 통해 예수님께 갈 수 있다’는 그의 주장 등을 볼 때 논리상 맞지 않는다. 그럼 누구인가? ‘바로 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닌가?(참조 <분석 15>).

다시 말해 이만희 씨는 계 2~3장의 결론으로 ‘이긴 자’라는 특정 인물을 드러낸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구속사적 신앙, 신학과 차이가 난다. 이만희 씨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의 핵심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씨가 예수님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드러내려고 애쓴 장면도 보인다. 계 2~3장에서 이 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행실을 고침으로써 깨끗해 짐을 알 수 있다”(p.89),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지켜 심령과 행실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뜻이요”(p.89), “본문 사자가 가진 것은 예수님께 받은 말씀이요 면류관은 그가 받은 직분을 말한다”(p.93) 등의 해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이 씨는 예수님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해설을 한다. 단순한 예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연결이 아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었다는 식이다. 들어보자.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신다고 약속하였다(12절)”(p.94).

“하나님의 새 이름이 그가 장가드신 예수님의 이름이 된 것처럼, 예수님의 새 이름은 예수님이 신부로 삼은 이기는 자의 이름이 된다”(p.95).

 

   
 
   ▲ '이긴 자 = 구원자'라는 이 씨의 주장
 
이 씨는 ‘새 이름’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해설을 했다. 이기는 자를 이만희 씨라고 여긴다면 ‘예수님께서 이만희 씨에게 권세를 주었다’는 식의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이를 위해 이만희 씨는 ‘예수님 찬양’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부터 출발한 비성경적인 해설이다. 그럼 ‘새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글, <분석 16>을 통해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미지근한 신앙자 누구?

이러한 이 씨의 오류는 계 3:14~22까지의 ‘라오디게아교회의 편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씨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설하면서 오늘날의 신학교수, 목사, 성도들을 비판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책망하시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 씨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신학교에서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몇 퍼센트나 가르치냐’며 기성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기성 신학교와 교회에서 신약 사복음서의 예언조차 풀지 못한다며 요한계시록을 못 풀 것이라고 단정하듯 언급했다. 이만희 씨, 자신만이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듯하다.

물론 라오디게아교회의 교훈을 통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자는 측면의 해설이라면 좋은 일일 것이다. 건전한 비판이요, 충고이다. 미지근한 신앙의 모습을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만희 씨도 그러한 의도로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인 것일까? ‘약속하신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 ‘다수의 이기는 자들과 이 약속한 목자 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p.101)는 그의 주장을 보면 그렇다고 동의하기 힘들어진다. 

이 씨의 목적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곡해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 한국교회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미지근한 신앙’(계 3:16)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근처, 다른 면으로는 히에라볼리 근처에 있는 지역이다. 히레아볼리에는 온천이 있었다. 현재의 데니질리라는 곳에서 북쪽으로 19km 떨어져 있는 온천지역으로 고대에 목욕탕이 있었다. 로마의 황제들도 그곳에 와서 석회수 온천을 즐기며 목욕을 했었다. 지금도 섭씨 35도의 석회수 온천이 있으며 의학적인 효과도 크다. 히에라볼리에서 솟아난 뜨거운 물이 내려오면서 라오디게아근처에 오면 석회가 섞인 아주 미지근한 물이 된다. 그러다가 골로새에 가면 아주 차가운 물로 바뀐다. 지정학적으로 히에라볼리에는 뜨거운 온천수가 골로새까지 흐르면서 아주 차가운 물로 변하는 그 가운데 라오디게아에는 미지근한 물이 흐르게 된다. 라오디게아교회의 신앙을 지역의 환경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은 영적인 미숙함이라고 보기 힘들다. 권성수 교수는 영적성장과정의 미성숙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입술로 고백하면서 실제로 행동을 통해 보여주지 못하는 외식적인 상태를 말한다고 지적했다(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122).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는 15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신앙의 겉모습이 잘 갖추어진 교인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미지근한 신앙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계 3:20말씀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많은 이들이 외우고 있는 잘 알려진 구절이다.

첫째, 위 구절은 문맥상 앞의 19절인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의 뜻과 연결된다. 미지근한 신앙에 대해서 먼저 회개할 것과 열정을 낼 것을 촉구하면서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그 초점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고 그분을 향한 열정을 다시금 일으키라는 말이다.

둘째, ‘더불어 먹겠다’(20절)는 말씀은 예수님과의 만찬을 말한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친밀함의 표현이다. 따라서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권면이다. 이것이 미지근한 신앙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 재림 이후에 영원 상태에서 완성될 교제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권 교수도 “21절의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한다’는 말씀도 현세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하고 재림 후 미래 천국에서 완성된 통치에 동참한다는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미지근한 신앙의 상태를 해결하는 것은 내 인생의 문 밖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을 제외시킨 상태, 이것이 바로 미지근한 상태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 주님을 다시 내 심령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이미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회개를 통해 성령충만을 회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면에서 아직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임을 고백하고 영접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만희 씨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리라고 믿고 싶다. 그의 마음 문이 흔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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