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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17
2008년 06월 11일 (수)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 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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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는 행복한가?>(이정전, 한길사)라는 책을 읽었다. 경제학자인 저자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궁금증이 그 책을 손에 잡게 했다. ‘경제학자가 말하는 행복이란 뻔~하지 뭐’와 ‘혹시 돈 말고 다른 것을 말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가 ‘행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는 저자의 머리말에 그 책의 세계로 들어가 보도록 했다.

이정전 교수는 결국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다’며 ‘문화생활 영유’와 ‘다각적 교양 추구’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용두사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경제학자로써 ‘돈≠행복’이라는 주장에 신선함을 넘어서 도발적이라는 느낌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결국 어느 정도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저자의 행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를 만드신 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그 사랑의 메시지를 매일 같이 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어떠한 형편과 상관없이 참행복일 것이다.

이만희 씨는 행복한가? 물질이나 어떤 권세 때문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그가 성경의 요한계시록 해설서를 집필했으니 겉으로는 일단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속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의 성경해설을 분석해 보자는 것이다. 그는 정말 내면적으로도 행복할까? 

‘도둑 같이···’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3:1~6절 중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3절)의 해설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고 해설을 했다. 요한계시록을 해설했다는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께서 도적 같이 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①많은 성도들은 재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만민이 보는 가운데서 오시는 줄 알고 있다. ②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밤에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이 씨의 책, p 88).

이 씨의 해설을 읽으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자칫 논점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도적같이 온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려는 이 씨는 곧바로 ‘구름 타고 옴’에 대해 언급한다(①번 참조). 이는 ‘도적같이 옴≠구름타고 오는 것이 아님’이라는 구성이 된다. 무엇인가 어색하다. 곧바로 이 씨는 ‘그러나’로 반전시킨다. ①번이 아니고 ②번이라는 설명이 된다. 즉 ‘도적같이 옴 = ②번’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정리하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신약성경에는 그것이 일곱 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라는 논리다. 필자만 혼란스러워 하는 것인가?

이만희 씨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심과 만인의 눈이 그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부정한다(①번 참조). 이는 계 1:7의 성경구절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이다. 이 씨는 ‘구름을 타고 오심’은 ‘영으로 오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이 씨의 책, p.55). 이 씨가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고전 15:44 참조). 또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는 성경도 부인하게 되는 셈이다(이 씨의 ①번 주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 분석 8번에 자세히 나와 있다).

 

   
 
   ▲ 신도들 앞에 선 이만희 씨(cbs보도)
 
어쨌든 이 씨는 계 3:1~6의 해설 통해서 ‘도적 같이 임함’의 의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 본문의 내용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이다. 용감하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살전 5:1~5과 요 1:1~5의 신약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 구절들을 통해 이 씨는 “그들에게는 주 재림이 밤에 도적이 몰래 오는 것과 같을 것이며 멸망이 홀연히 이를 것이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은 말씀을 깨달아 주께서 오시는 노정을 알고 있으므로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씨의 주장 전체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 본문의 ‘도적 같이 임함’의 뜻은 첫째 주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며, 둘째 주의 재림은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어와 구는 문맥을 통해서

문장 중에 사용되어진 ‘단어와 구’ 심지어 어떠한 ‘문장’도 모두 문맥에 따라 해석돼야 한다(지난 호에도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예를 드는 ‘잘 논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정말 놀기를 잘 한다’는 뜻도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엉뚱한 짓을 한다’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문맥의 흐름에 따라서 구분된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이라는 단어를 예로 살펴보자. 창세기 22장 1절에 그 단어가 등장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되”(개역개정)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고 말한다. 동시에 야고보서 1장 13절을 살펴보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개역개정) 앞의 성경 본문과 정반대다.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어떻게 성경 안에 동시에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수 있는가? 신약과 구약의 문제도 아니다. 방금 인용된 야고보서 1장 안에서도 그 단어가 혼동되기는 마찬가지다.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라’(1:5),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1:12)는 등의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인쇄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그럼 번역 문제인가? 역시 아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의 헬라어 성경도 역시 동일하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답은 ‘문맥’이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의 흐름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표현한 것이 영어성경 중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이다.  NIV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테스트(test) 또는 트라이얼(trial)이라는 용어로, 사탄과 마귀에 의해서 행해지는 시험을 유혹이라는 의미에서 템테이션(temptation)이라는 용어로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 원칙을 우리는 ‘역동적 번역’이라고 부른다. NIV는 역동적 번역을 따르는 대표적인 성경이다.

NIV에 따르면 창세기 본문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뜻이 된다. 또한 야고보서 본문은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느니라’는 의미의 구절이 된다. ‘테스트’에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더 튼튼히 만들고 또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테스트)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약 1:2), ‘시험(테스트)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약 1:12)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유혹’(템테이션)에는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려는 마귀와 사탄의 계략이 숨겨져 있다. 그러한 시험(유혹)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도적 같이 이르리(라)’는 성경 본문을 생각해보자. 사데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3:1~6). 사데교회의 행위가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지 못하게 보였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다는 표현이 잘 말해준다(1). 겉으로는 교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는 책망이다. 그 사데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충고한다(3). 그와 동시에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라)’고 말씀하시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사데교회에 행위가 깨끗한 이들도 있음을 언급한다(4). 그들을 본을 삼아 회개하라는 촉구다.

성경본문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나열해 본 것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정리가 부족하다면 성경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자, 사데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훑어보자. 그런 후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라)’는 구절의 의미를 판단해 보자. ‘회개하라’ 또는 ‘책망하리라’는 뜻에 합당한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재림하리라’는 뜻에 적합한지를 말이다.

 

   
 
   ▲ 신천지의 이단성을 폭로한 cbs의 '크리스천 큐'
 
권성수 교수는 “이 때의 ‘이른다’ 즉 ‘온다’는 단어는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요한계시록 , 선교횃불, 2001, p.102). 권 교수는 계속해서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네게’ 올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온다’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 징계를 가리킨다. 주님께서 징계하시기 위해 사데교회에 오시겠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의 지적은 사데교회뿐 아니라 다른 일곱교회에 보낸 메시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버가모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살펴보자(계2:12-17). 하나님은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버가모교회를 책망하시면서 ‘회개하라’, ‘내가 네게 속히 가(리라)’고 말씀하신다(16). 사데교회는 물론 버가모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다르지 않다. 두아디라교회(계2:18-29)와 라오디게아교회(계3:14-22)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도적 같이’의 의미는 ‘예상치 못한 출현’의 뜻이다(David E. Aune,  Revelation (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솔로몬, 2003, p.666). 예수님의 재림 때는 물론이고 책망하실 때도 예상치 못하게 오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개하는 맘으로 믿음으로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성경 본문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계 3:3)에 대해 이만희 씨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할 수 없다”고 해설했다. 성경 본문을 문맥을 따라 해석한 후 이 씨의 해설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데교회의 불신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고 책망하시기 위해서 오시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잘못된 성경 해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성경의 하나님과 나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이 달라진다. 변형된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따르면서 참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만희 씨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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