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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 현충원에 가다
2008년 06월 05일 (목) 00:00:00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6월 6일은 제53회 현충일이다. 지난 4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우리가 오늘날 주권국가의 지위와 자유 및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 때문이었기에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서다.

   

국립현충원은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소,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국가유공자묘역, 장병묘역, 경찰묘역 등 7개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현충일을 앞두고 묘역마다 노랗고 붉은 국화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일찌감치 참배를 마친 이들의 흔적이 묘비에 남아있기도 했다.

   

손수건을 들고 묘비를 닦고 있는 할머니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바쁘다.

   

   

오락가락하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하루 종일 가족단위, 전우회 단위로 묘소를 찾는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이다. 1950년, 6.25전쟁이 삽시간에 국토를 유린하자 16-18세 소년들이 나섰다. 전쟁 한 해 전인 1949년 학교마다 설치됐던 ‘학도호국단’이 6.25 발발과 함께 ‘학도의용대’로 바뀌면서였다. 학도병들은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일가량 훈련을 받은 후 소총 한 자루, 담요, 커다란 군복을 지급받고 전방부대에 배속됐다. 군번도 없었다. 5만 명이 직접 전투에 참가해 약 7천명이 전사했다.

   

   

경찰충혼탑과 그 앞의 경찰묘역이다. 다음 희생자를 위한 빈자리도 보인다. 이 탑의 탑신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 듯한 날개는 민주경찰의 따뜻한 보호를 나타내고, 탑신 하단의 3인상은 경찰활동의 상징인 신, 의, 용 정신을 나타낸다. 탑 하단 전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 중앙에 ‘경찰 충혼탑’이란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휘호한 것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순국선열 주기철’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로마서 8장의 말씀이다. 애국지사묘역에는 구한말과 일제치하에서 항거해 의병활동과 독립투쟁을 하시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10분이 모셔져 있다.

   

   

1939년 12월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가 평양 남문밖교회에서 임시회의를 열어 “주기철을 목사직에서 파면한다”고 결의한 것은 주 목사가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세 번째 감옥에 갇혀있을 때였다. 묘비 뒤편에는 “평양 산정현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일제의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반대하는 등 종교항일로 투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 목사는 1940년 징역 10년을 받고 복역하던 중 평양형무소에서 옥사 순국하였다. 지금은 남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양노회는 지난 2006년 4월 17일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을 67년 만에 복권시켰다.

   

   

   

애국지사묘역의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이다.

   

   

   

충렬대와 무후선열제단이다. 충렬대 뒤편에 마련된 무후선열제단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으나 유해도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1분을 위패로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는 기미년 3.1독립운동의 횃불을 전국 방방곡곡에 비췄던 유관순 열사, 고종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위종, 이상설 열사, 만주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홍범도 장군과 정의부 총사령 오동진 장군, 정인보, 엄항섭, 조소앙 등 납북독립유공자 15분도 위패로 모셔져있다.

   

   

충렬대 앞 애국지사묘역엔 3.1운동 때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을 현장 르포와 사진으로 세계에 알려 국제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등 독립운동을 도왔던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의 묘소가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못지않다고 해서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그의 한국이름은 ‘석호필(石虎弼)’. 굳은 신앙(石)과 용맹한 성격(虎)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弼)는 뜻이다. 그는 본명과도 발음이 비슷하고 자신의 의지가 실린 이 한국 이름을 몹시 아꼈다.

   

   

석호필 박사는 1916년부터 연세대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재직 중인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이 있자 파고다공원에서 한국인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는 광경을 촬영하여 국내외에 알렸다. 박사는 학생과 부녀자들까지 마구 잡아가는 일본 경찰을 보고 일본 경찰국장을 방문하여 많은 제자와 시민들을 석방시키기도 했다. 1920년에는 일경이 암살을 기도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여러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다시 연세대교수로 재직하였고 1968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며 임종시에는 “생전에 정든 한국 땅에 묻어 달라”며 “내가 도와주던 소년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달라”고 유언했다.

   

   

   

   

   

   

   

   

현충원 담장과 외곽 뒷산을 상암 월드컵공원이나 뚝섬 서울숲 같은 서울의 대표 공원으로 가꾸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오는 2012년까지 외곽 뒷산 26만평이 공원으로 조성되면 동작, 사당, 상도, 흑석동 등 4개 동과 중앙, 숭실, 총신대 등 3개 대학을 연결해주는 거대한 녹지 보행 축이 완성된다. 복음의 빚진 마음처럼 주권국가의 빚을 가까이서 되새길 날도 멀지 않았다.

   

   

서울 국립현충원은 지하철 4호선 동작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서초구 반포동과 바로 맞닿아있다. 자녀들과 함께 현충원을 찾아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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