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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는 행복한가?>
참된 행복 방정식은?
2008년 06월 02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경제학자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자가 되면 행복하다’가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는 ‘경제=돈’ 그리고 ‘돈=행복’이라는 공식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이정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미국 매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 제직중인 그는 <우리는 행복한가?>(한길사, 2008년)를 통해서 ‘부자=행복’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행복한가?>는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의해 본부 직원 800여 명에게 책읽기 권장 도서 중 한 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와 행복에 관한 꾸준한 관심과 연구를 해 온 이 교수가 말하는 행복이란 그렇다고 철학자들이 말하는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히는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무엇일까?

과학적 접근

행복을 철학이 아닌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이 교수의 주장은 그가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과학적 접근의 대표적인 방법은 ‘통계’다. 그는 행복을 통계적 수치로 제시해 보았다.

   
 
   ▲ 표1 미국 1인당 국민소득과 행복지수의 변화
 
<표 1>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과 행복지수의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1945년부터 2000년까지 55년 동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55년 동안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배가 증가했다. 그렇게 경제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한 미국인의 비율은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의 사람들은 미국을 바라보면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꾼다. 미국에 가서 물질적 풍요와 함께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그러한 꿈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100년 전 선조들이 오늘의 미국을 바라보면 ‘유토피아가 실현됐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꿈에 그리던, 또는 꿈도 못 꾸었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정전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가 이루어졌지만, 상대적으로 행복감은 더욱 빈곤해졌다는 말이다. 그는 “물질적 풍요가 역사상 최고에 이르렀지만,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의 수 역시 최고에 이르렀다”는 지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풍요 속의 불행’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 독일은 물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많은 나라들이 여기에 속하게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을 ‘행복하지 못한 우등생’이라 부른다.

   
 
   ▲ 표2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과 행복지수
 
<표 2>는 선진국, 후진국을 모두 포함해서 각 나라별 행복지수를 비교한 것이다. 이 교수는 3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은 부유하면서 행복한 나라들, B그룹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들 그리고 C그룹은 가난하면서 행복하지도 못한 나라들이다. 이 도표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네델란드,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등 5개국이다. 그 이유로 흔히 복지시설이 잘 갖추어졌다는 것과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높다는 것 등이 꼽힌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5개국으로는 러시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불가리아 등이 꼽힌다. 이들 국가가 가난하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급격한 체제변화 이후 생활수준의 향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폭발하고 있는데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기대가 높다보니 실망도 커서 행복지수가 몇몇 아프리카 빈국보다도 오히려 더 못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인데도 선진국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 왜 그럴까?

한국은 어떠한가? 전 세계 220개 국가들을 놓고 보면 한국은 경제대국이다. 통계청 2006년 발표를 보면 국내총생산과 수출액에서 각각 세계 12위이고, 외환보유고 4위, 경제성장률 7위, 자동차 생산량 5위, 인터넷 이용자수 3위, 수입액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10위권 근처에 있다는 것은 학급에서 3등 안에 든다는 얘기다. 그런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떠한가? 경제적으로는 반에서 3등 안에 들지만 행복지수에서는 20등 밖에 있다. 다시 말해 공부는 썩 잘하면서 그리 행복하지는 못한 아이라고나 할까. 오늘 우리 주변의 학생들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선진국 사회의 뒤안길

미국의 급성장에 따른 그림자를 살펴보자. 이혼율 2배, 10대 자살률 3배, 폭력범죄 4배, 미혼모가 낳은 신생아률 6배, 동거부부 7배, 우울증 10배 증가다. 이 교수는 특히 전통가정의 붕괴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서구사회를 휩쓸고 있는 소위 ‘섹스 혁명’(the sexual revolution)은 동거, 이혼, 미혼모 등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동거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진입로일까? 동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 성공적인 결혼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통계는 정반대를 나타낸다. 동거의 90%가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결혼한 10%조차도 정식결혼한 부부보다 이혼할 확률이 2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한 문제는 또 있다. 혼외출산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신생아의 절반이 혼외출산이다”라며 미국사회를 꼬집은 적이 있다. 이는 성병과 함께 사회 폭력범죄율과 높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쿨리지 효과’도 선진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늘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가지고 싶은 것’도 비례해서 많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 등 자신이 가진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쁨이 사라지게 되고 새로운 욕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지수는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소득증대나 상품소비로 오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물주의와 개인주의도 마찬가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장에서 그 사상을 학습 받고 또 그것에 강화되어간다. 한 가지 실험 결과가 있다. 사회성에 대해 경제와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의 형태를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경제와 경영을 전공하는 학생이 다른 분야를 전공한 학생보다 현저하게 비협조적이었다는 점이다. 통계적 유의수준을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학습되고 강화된 개인주의와 유물주의에 젖은 사람들이 시장 이외의 영역, 즉 가정과 교회 등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데 있다. 친척, 이웃, 교우 등을 대할 때 은연중에 손익계산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수록 비인간화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정전 교수는 돈과 재물에 탐심이 많은 유물주의자들이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득과 부를 행복의 원천으로 삼고 또 사람을 평가할 때도 수입의 정도로 쉽게 구분하는 유물주의자들에게서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공짜의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물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성향이 구분된다고 한다. 유물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3배 이상으로 자신만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매사에 자신이 선택하고 또 그에 따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의 징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슷비슷한 수많은 상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고통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메뉴가 있는 식당보다 단조로운 메뉴가 있는 식당의 매출이 더 크다는 게 실험 결과다. 선택할 게 너무 많아도 반대로 선택할 게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이정전 교수는 ‘우리가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접근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가정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긍정의 심리학을 강조했다. 화를 내지 말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화가 날 때도 폭발시키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용불용설이라는 말처럼 화를 자주 내면 사소한 일에도 계속 화가 나고 불행해 지게 되며, 계속 참으면 화날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식이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5가지 요인이 있다. 가족관계, 재정상태, 일(work), 공동체와 친구, 건강 등이다. 행복결정의 ‘빅 파이브(Big 5)’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 가족관계과 첫 번째로 꼽힌다. 한국은 행복의 원천으로 건강을 첫 번째로 그리고 가족관계를 두 번째로 꼽았다. 화목한 가정, 특히 건강한 부부를 중심으로 한 화목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집단은 별거하는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이혼한 사람들이다. 그처럼 가족관계의 붕괴는 행복지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이 교수는 ‘문화 교육’을 통해서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선진국 사회로 들어갈수록 학교의 교과 과정은 돈벌이에 직결되는 생산기술에 편중된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의 교과 과정의 75%가 그렇다는 것이다. 유물주의와 개인주의가 바로 이러한 교육의 여건에서부터 형성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문학, 미술, 음악, 역사, 철학 등의 문화 영역이 교육과목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문화 교육이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가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여가나 자유시간을 건전하게 쓰는 법이 서툴러서 폭력과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 교수가 말하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항상 긍정적으로 다스리고, 가정 중심의 삶을 살아가며 문화활동을 가능하면 많이 하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정전 교수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으로 ‘신앙’을 언급하기도 했다. 신앙생활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줌으로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난 그는 곧바로 신앙이 없이 긍정적인 심리학을 통해서 얼마든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하는 긍정심리학의 핵심은 ‘신앙이 없더라도 용서가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 할 수 있다(p.199). 그는 ‘착한 행동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태도가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p.196).

이 교수의 행복론도 개인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개인주의적 정신이 화를 내야하는 순간에도 참을 수 있는 마치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인 것처럼 참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것을 요불용설 또는 긍정심리학이라는 고급 단어를 써가며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선과 악의 경계도 무너지게 된다. 개인의 악은 물론이고 사회적, 국가적 그리고 절대 진리 앞에서의 악을 보고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좋은 게 좋은 것이잖아’라는 식으로 반응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한다(롬 3:23). 이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등 모든 것이 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없이 행복을 생각하고 누리려고 하는 것이 미련한 방법인 셈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참된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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