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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수 씨의 신학은 과연 건전한가
1995년 11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박진규 목사(대구진광교회)

최근 한국교회는 류광수 씨의 '다락방 신학'으로 말이 많다. 류씨에게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금번 주요 교단 총회에서도 이 문제는 핫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고신, 고려측은 '다락방 신학'에 대해 각각 '위험한 극단성', '비성경성' 등의 결론을 내렸다. 각 교단의 이러한 규정은 지난 91년 합동측에서 류씨의 '목사면직' 결정보다 강도가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합측을 비롯 여타 교단도 '다락방 신학' 문제를 좌시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류씨의 이단성 문제는 앞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락방 신학'에 대한 피해사례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최근 한기총 '이단 사이비 종파 피해 상담소'가 발표한 종파별 피해 사례 자료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동 자료에 의하면 '다락방 신학'에 의한 피해상담 사례는 단일 단체로서 최고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류씨는 두 번의 공식 언론행위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 7일 류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변호,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성토했다.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류씨의 이러한 자세는 금번 각 교단 가을총회 직후 변했다. 류씨는 지난 10월 18일 모 일간지 광고면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정립했다. 당시 류씨는 국외집회 차 미국에 체류 중인 상태이었음을 볼 때 상황이 매우 다급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류씨는 지난 기자회견 때의 강경 자세에서 일단 한 발 물러난 모습이다. 류씨는 '국내외 교회에 올리는 글'이란 제하에 자신의 이단성 문제를 '말의 실수', '오해'라고 설명, 실수에 대해서는 '수정키로 노력'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렇지만 언론을 통해 글로 표현된 자신의 비판에 대해서는 '지나친 해석', '부분적해석', '목적을 둔 해석' 등으로 몰아 부쳤다.   

 이에 따라 본지는 계속되는 '다락방 신학'의 불씨를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하고자 지난 8월호에 이어 다시 한번 기획하기로 했다. 박진규 목사의 글과 함께 고신, 고려 교단의 총회 발표문을 긴급입수, 수정 없이 게재한다. 더불어 류광수 씨에게 본지의 편집방침대로 반론권의 기회가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편집자 주>


 최근 들어 한국교계는 류광수 씨의 다락방운동에 대하여 심히 소란하다. 본인은 일차적으로 본지 <교회와신앙> 1995년 8월호에 류광수 씨의 신학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그런데 공식적인 반응은 없었으나 그 후에도 계속 한국교회는 이 문제로 인하여 소란한 것을 보고 이제 더 심도 있게 이 문제를 취급할 필요를 느껴 다시 펜을 들게 되었다.

 금번 1995년도에 들어 와서 여러 교단의 총회를 통해서 류광수 씨가 인도하는 소위 다락방운동에 대한 정체가 어느 정도 윤곽을 나타낸 것 같다(최근에 들어서 '다락방운동'이란 이름 대신에 '미션 홈-Mission Home'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꿀 것인지는 두고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류광수 씨의 다락방운동이 신학적으로 전혀 이상이 없다는 류광수 씨 측의 성명서(기독교호남저널, 1995년9월17일, p.6; 한국선교신문, 1995년 9월17일, p.1)가 있는 반면, 그와는 대조적인 신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측과 고려신학교(학장 석원태 박사)의 성명서(국민일보, 1995년9월22일, 석간, p.12)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류광수 씨 편의 성명서가 옳다면 한국교회의 보수교단으로 알려진 고려측과 고려신학교는 당연히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과연 어떤 입장이 성경적인지 살펴보자.

 필자는 먼저 류광수 씨 편에서 낸 성명서에 대해 모순점을 느꼈다. 류광수 씨 측의 성명서의 내용 중 첫번째 내용이 류광수 씨는 건전교단 신학교(고신대, 고신대학원, 총신대신학원)를 졸업했으며 합동 교단 등에서 전도사, 부목사로서 13년간 시무한 건전한 목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건전교단이라는 합동 교단 소속의 부산노회에서 1991년도에 류광수 씨가 목사직을 면직을 당했으며(기독신보, 1991년12월21일, p.12), 또한 그들이 건전 교단이라고 말한 고신 교단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1992년 제42회 고신총회에서 서류룰 반려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합동 교단은 지난 9월19일 부터 서울 충현교회당에서 열린 제80회 총회에서 "다락방 확산 방지 및 이단성 규명"에 관해 7인 위원을 구성하여 기독신보에 발표키로 하였고(기독신보, 1995년9월30일, pp. 2, 10), 고신 교단에서도 9월 18일부터 열린 제45회 총회에서 류광수 씨의 전도운동의 조직과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일체 금지하였으며(기독교보, 1995년9월30일, p.1), 또한 합동개혁 교단도 류광수 씨의 전도운동은 본 교단 신학과 위배되므로 집회에 참석하거나 강사로 초청하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는 것이다(개혁공보, 1995년9월25일, P.1).

류광수 씨가 몸을 담았고, 류광수 씨 편에서 건전 교단이라고 내세우는 합동과 고신 교단이 왜 그를 건전한 신학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는지 그 점이 이상하지 않은가? 류 씨 편에서 건전 교단이라고 하는 그 교단이 그를 건전하다고 보지 않는다면 그의 논리에 의해서도 그는 건전한 신학을 가진자로 볼 수 없지 않겠는가? 그가 건전 교단이라고 말하는 그 교단이 그를 건전하지 않다고 하면 그는 건전한 목사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고신 교단의 한 부류인 고려측(석원태 목사)에서도 왜 같은 입장을 취했을까?

 예컨대 'A'와 'B'가 있는데 A와 B가 서로 자기가 옳다고 한다면 누가 옳은 것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일이지만 만일 A는 B를 옳다고 인정하고 B는 A를 옳지 않다고 인정한다면 A는 옳다고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틀린 자로 잰 길이는 옳을 수가 없으나 옳바른 자로 잰 길이는 옳은 것과 같을 것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류광수 씨의 신학은 보수신학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본인이 이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류 씨가 자신의 신학은 보수신학임을 너무나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류광수 씨의 편에서 그는 신학적으로 이상이 없는 건전한 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그의 신학적인 문제점들을 밝히고자 하는 바이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류광수 씨는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는 세 부류의 영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첫째는 윗트니스 리(Witness Lee)의 영향이요, 둘째는 귀신파의 영향이요(김기동 또는 한만영), 셋째는 구원파의 영향이다. 이 점을 본론에서 하나씩 밝혀 가겠다. 물론 윗트니스 리의 신학사상은 귀신파나 구원파의 사상적인 모체가 되므로 어느 하나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라도 받았다고 한다면 결국 다 영향을 받은 것이 될 것이다.

 지방교회는, 천주교는 마귀적이고 개신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며, 신인합일주의(神人合一主義), 삼일 하나님(사위일체)을 주장하며, 죄를 사단의 화신이라고 하여 회개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이 사단의 거처와 화신이 되었다고 가르치고 어느 도시든지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하고 참된 표현은 '지방교회'이므로 지방교회 안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서울에는 윗트니스 리의 서울교회가 있으므로 다른 교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지방교회의 주된 교리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위트니스 리의 교회 외의 다른 교회는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교파를 죄로 보는 지방교회의 입장에서는 기성교회들을 이단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정동섭, 그것이 궁금하다, pp. 187-211). 이러한 경향은 류 씨의 다락방운동을 지지하는 분들 중에서 '21세기는 다락방 복음이다'라고 하거나 '다락방 안하면 교회 안된다'하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와서 류광수 씨의 강의는 요한 웨슬레(John Wesly)와 무디(D. L. Moody)도 고난을 받았고, 일제치하의 신사참배도 노회가 가결했다고 하며 복음을 전하므로 고난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기 변명에 급급해졌다.

 먼저 본인이 류광수 씨의 이단성을 밝히는 자료로 그의 테이프를 사용하였으므로 글로 기록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말이 되도록 만들었고 필요에 따라 설명을 붙였는데, 그것은 괄호 속에 넣었음을 서론적으로 밝혀두는 바이다. 그러나 후에 류광수 씨가 혹 본인이 그의 말을 부분적으로 선택하였다고 하거나 또는 본인이 잘못 이해했다고 변증하는 일이 있다면 추후 더 많은 량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테이프 전체를 녹취해서라도 밝힐 수 있음을 전제하고 본 글을 시작하는 바이다.

 I. 구원론(救援論)에 나타난 문제점.
 1)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영접'(迎接) 사상은 윗트니스 리의 것과 같다.
 류광수 씨가 말하는 '영접'이라는 말의 의미는 전통적인 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보여진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류광수 씨는 "EBS 양육" 테이프 2A(015)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로마서 10: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5: 24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그렇지요. 헌금 많이 할 것도 없고 뒹굴 것(기도를 표현한 것으로 봄)도 없(습니다.) 믿는 자는 어떻게 믿습니까? 요한복음 1: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는 말 중에서)....' 영접한다는 말은 또 잘 모르고 있는 데요. 전도를 할려면 영접이라는 말을 잘 알아야 됩니다. '목사님! 저 사람 영접했는데 구원 확실히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이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접을 시켰는데 분명히 그 다음 보니 아니더라고(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 진리('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의미함)를 몽땅 받아 들이는 것을 보고 "영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 받아 들였는데 영접해도 아니겠지요? 뭔('무슨'이란 뜻) 말인가 알겠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진리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영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즉) 간단한 이름으로 '예수 영접' 그러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은)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교회 다닌다고 해서 신자는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 이 부분('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의미함)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느냐?' 이게 또 중요하거든(요). 이런 것을 우리 머리 속에 언제든지 넣어 있으라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우리는 영접하면 끝나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영접한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 나는 것 있지요. 구원 받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비밀이 더 많습니다. 구원받은 이전에 어마어마한 사건을 주님이 만드셨다고 하면 구원받은 이후에는 더 큰 사건을 만드셨습니다."

 위에서 류 씨가 말하는 영접이란 성경이 말하는 영접 즉 정통교회가 말하는 영접이 아니라는 것을 신학을 바르게 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그의 말을 들어보고 비판하자.

 또한, 류 씨는 "다락방개요-수영로" 8B(492)에서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①아는 단계...(사 53: 5, 요삼 1: 2)...그 다음에 ②믿는 단계, 세번째가...③영접하는 단계(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락방개요-수영로" 테이프 vol. 9A(002)에서 실제적으로 평신도들 중에는 수십년 예수를 믿어도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는데, 다락방에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예수를 헛 믿었다고 말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앞의 말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는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웬일인지 윗트니스리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살펴보자.

 지방교회의 교주인 윗트니스 리는 "요한복음 1: 12...복음과 주 예수의 구속에 찬성하더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여길 수 없다. 믿음에 찬성과 인정함이 포함되었지만 믿음 그 자체는 영접이 아니다. 찬성한 것과 인정한 것이라 해서 반드시 영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접한 것은 반드시 찬성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접만이 믿음이다..."(聖經要道 Vol. 1, pp. 105-106)라고 하였다.

 결국 윗트니스 리는 믿음은 영접이 될 수 없고 영접만이 참 믿음이라고 함으로서 믿음과 영접을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류 씨의 주장도 이와 다를바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류 씨의 전도운동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하는 P목사가 있는데 그가 평신도들이 실제로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매일 영접해야만 한다고 했으며, 류 씨의 집회에 참석한 평신도들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위의 결론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평신도들이 미혹에 빠지게 되는 사례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과 영접은 정말 다른 것인지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믿음과 영접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 종합주석에서 요한복음 1: 12의 주해를 찿아보면, "영접하는 자라는 말은 구원은 개인적인 영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믿는다'라는 말은 '피스티오'의 현재분사인 '피스튜우신'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삶 속에서 인정하는(believing in) 강력한 신앙을 의미한다"(제자원, 그랜드종합주석)고 하였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생이나 철인이나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영접해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근 박사는 "믿는 자라는 말은 '믿는다'라는 표현 중 가장 강한 용법으로 현재분사(이다). 이는 현재로서...단지 그리스도의 역사적 생애나, 구원의 능력을 믿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하고 있다"(신약주해, 요1: 12)고 하였다.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나 "그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이라는 용어는 현재분사형으로써 동격이며, 중복성이나 반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자면,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셨으면 영접한 생활을 지속하라는 뜻이지 예수 영접을 중복하거나 반복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제자원, p.580).

요한복음 1: 12은 예수를 다시 영접해야 할 근거가 아니므로 성경은 예수를 반복적으로 영접해야 할 것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류광수 씨의 말처럼 구원받은 사람도 예수를 영접하면 축복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재영접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기성교회 교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믿고만 있다고 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다른 것인가? 어느 성경에서도 이를 보증해줄만한 구절은 찿아볼 수 없을 것이다. 믿음과 영접은 같은 것으로 류 씨의 주장은 성경적으로도 정통 신학적으로도 지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류 씨가 영접하는 것은 요한일서 3장 8절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란 내용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말도 결국 귀신파의 영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 류광수 씨의 고린도전서 5:5절의 해석을 따르면 반구원설(半救援說)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시므로 성경에는 영과 육이 따로 분리되어 구원받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류광수 씨는 성도들이 죄를 자꾸 지으면 육체는 멸해 버리고 영혼만 구원받는 것으로 말했다. 류 씨가 말하는 구원은 정통 신학적인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류광수씨는 "다락방개요-수영로" 테이프, 8B(296)에서 "구원받은 사람도 죄지을 수 있습니다...그럴 때 어떻게 되지요? 고린도전서 5: 5에 보면 그 육체는 어디에 내어주고? 마귀에게 내어주고 영혼을 건지기 위함이라.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 자꾸 하나님 뜻대로 안 살면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육체를 멸해 버리고 여러분 영혼을 어떻게 해요? 건지리라. 그러니까 똑바로 살아야 되지요"라고 하였다.

 사실 고린도전서 5: 5의 말씀은 난해 구절이므로 주의있게 해석해야할 구절이다. 고린도전서 5: 5에는 "이런 자(교인으로서 아버지의 아내-서모와 간통을 한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칼빈의 말을 빌리면, "그리스도가 교회를 지배하시는 것처럼 사탄은 교회 밖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축출된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로 넘기운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떠난 방황자가 되는 것이다"(이상근, 신약주해, 고전 5: 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주석가들이 단순한 출교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Augustine, Calvin, Beza, Olshausen, Godet)고 보는 것이다(제자원, 고전 5: 5).

 또한, 렌스키(Lenski)는 "성경에는 영과 육이 따로 분리되어 구원받거나 멸망받는 일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둘 다 구원받든가 둘 다 멸망하든가 해야 한다"(강병도, 호크마주석, 고전 5: 5)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김기동 씨의 "마귀론"과 윗트니스 리의 책에서도 찿아볼 수 있다. 이 두 사실들을 차례대로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김기동 씨는 "고린도전서 5장 1절 이하에 계모와 통간하는 음란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방인에게도 없는 일이기에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 줌으로 멸하게 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이나 얻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은 것이기에 그들이 구원은 받으나 미혹의 영에 이끌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귀론, 상, p. 145)라고 했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는 "죄있는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은 징계를 위한 것이다.

5절에 언급된 멸한다는 것은 주로 어떤 질병으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말한다(고후 12: 7, 눅 13: 11, 16). 육신은 멸해져야 할 정욕적인 몸을 말한다. 어떤 질병은 사단으로부터 온다. 그와 같은 질병은 그 영이 주님의 날에 구원받을 수 있도록 육신을 멸하는 데 이끌 수 있다. 이것은 고린도의 믿는이들 가운데 있는 죄 지은 사람이 영단번에 구원된 형제임을 지적한다(요 10: 28-29). 그는 결코 어떤 죄로 인하여 멸망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죄악을 인하여 그의 죄악된 육신을 파괴함으로 주님의 날에 구원되는 상태로 유지되도록 징계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육신을 멸함은 구원받기 위하여 필요한 준비이다"(고린도전서, p. 9)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자꾸 지으면 육체는 멸해 버리고 영혼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영혼의 구원만 주장하는  "반구원설"(半救援設)이 될 것이다. 어쨋든 이러한 사실을 보고도 류 씨의 주장은 귀신론과 지방교회의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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