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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의 ‘만나 교리’ 맞나?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16
2008년 04월 21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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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의 성경해석에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바로 문맥을 통한 해석보다는 단어 풀이식 해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의 해석은 성경의 내용보다는 자기 자신의 어떠함을 드러내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식이다.

이러한 이 씨의 성경해석 방식은 요한계시록 2:12~17의 버가모교회에 관한 내용의 해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씨는 버가모교회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맥의 흐름보다는 ‘만나는 무엇인가?’, ‘새이름은 무엇인가?’ 등의 소위 단어 찾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나마 그것마저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 씨가 성경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간히 이 씨는 성경 기록 당시의 배경을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의 성경 해설은 ‘배경 따로, 단어 따로’다.

요한계시록을 해설했다는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씨는 요한계시록 2:12~17까지의 성경해설을 한다면서 크게 4개의 소주제로 나누었다. ‘1) 발람의 교훈과 우상의 제물, 2) 니골라당의 교훈과 예수님의 입의 검, 3) 감추었던 만나, 4) 흰돌 위에 기록한 새이름’ 등이 그것이다(이 씨의 책, pp.75~77).

   
 
   ▲ 웃고 있는 이만희 씨
 
이 씨에게 '만나'는 무엇인가?

이 씨에게 '만나'는 무엇인가?

 

이 씨는 1), 2)번을 통해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나름대로 설명했다. 버가모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것을 책망한 내용을 비교적 잘 설명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우상에게 절을 하고 그 제물인 음식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이 씨는 계속해서 성경 본문에 나타나는 ‘만나’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을 ‘3) 감추었던 만나’라는 소제목을 달아 한 항목으로 취급하기까지 했다.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의도다. 이 씨는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감추었던 만나는 무엇인가?(17절)’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의미를 해설하려고 했다.

그의 해설 방식은 이렇다. 먼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온 만나의 사건을 예를 들었다. 그리고 신약성경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의 성경구절을 들어가며 ‘만나’의 예를 또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후 이 씨는 그가 주제로 삼은 ‘감추인 만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것을 위해 신구약 성경의 예를 들었던 것이다.

“약 이천년 동안 감추어진 그 만나는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고 이기는 자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주므로(10장)비로소 만인에게 공개된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만나는 오늘날까지 ‘비유’로 감추어두었던 ‘천국비밀의 말씀’이다”(이 씨의 책, p.76).

이 씨가 말하고자 하는 만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 호에 ‘이기는 자=이만희’라는 이 씨의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계 2:7, 2:14~22 등의 성경구절에 대한 이 씨의 해설을 통해서 이 씨가 성경을 곡해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지난 호의 내용과 연결을 시킨다면 ‘만나’에 대한 이 씨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이만희 씨에게 준 것이고 그것은 이 씨의 비유풀이 성경해석’이라는 뜻이 된다. 한 마디로 ‘만나=이만희 씨의 비유풀이’라는 식이다.

 

   
 
   ▲ 스승의 날 교주 이만희 씨에게 큰 절을 하는 신도들(cbs보도)
 
이번 호에서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버가모교회를 향해 준 하나님의 말씀 중 이 씨 스스로 소제목으로 삼은 ‘발람의 교훈’과 ‘만나’가 이렇게 무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발람의 교훈과 만나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인가 하는 점이다. 이 씨의 성경해설을 보면 그 관계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각각이 따로 논다. 마치 이 책 저 책에서 짜깁기를 해 놓은 듯하다.

 

이 씨의 네 번째 소제목인 ‘흰 돌 위에 기록한 새이름’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시 ‘감추었던 만나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흰 돌은 무엇이며 그 위에 기록한 새이름은 무엇인가?(17절)’라는 질문을 던지며 성경을 해설하려고 한다. 이 씨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몇 구절을 들어가며 ‘흰돌’과 ‘새이름’의 단어적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나마 ‘새이름’이란 단어의 의미는 계 3:12에서 설명하겠다고 그 해설을 미루었다. 동일한 단어의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설명하겠다는 뜻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 문맥을 통해서 보면 그 본래의 의미가 명확하게 살아나게 된다. 성경은 국어사전이나 단어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해석, 이해의 묘미는 바로 문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 2:12~17절의 버가모교회를 향해서 만나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문맥을 따라서 해석해 보며 어떻게 되는가? 먼저 ‘만나’가 ‘우상제물’과 대조됨을 생각해야 한다. 버가모교회 당시의 유대인들과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제사를 지냈던 음식을 관행처럼 먹곤 했다. 몇몇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그것이 금지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 행위가 남아 있었다. 니골라당 역시 성적인 부도덕과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으라고 가르쳤던 것이다(David E. Aune, Revelation(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솔로몬, 2003, p.621).

이러한 부정적인 음식에 대한 죄악이 버가모교회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계2:16). 그리고 그 부정적인 음식이 아닌, 감추었던 만나와 새이름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계2:17). 즉, 만나는 멸망 받을 부정적인 음식에 대조되는 용어인 것이다. 문맥을 통해서 여기까지만 봐도 만나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의미를 바탕으로 다른 성경에서의 사용 예를 참고하면 된다. 그리고 이를 먼저 연구한 연구가의 의견도 참고할 수 있다. 데이비드 앤과 권성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을 했다. 종합해 보면 만나는 요한복음 6:49~51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생’으로 나타내는 또 다른 은유인 것이다(David E. Aune). 또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74).

이 씨의 새이름 해설, 완전히 '새'됐다!

이 씨는 버가모교회에 관한 성경을 해설하면서 중요한 배경을 하나 놓치고 말았다. ‘배경 따로 해설 따로’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면 역사적 배경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버가모교회 주변에는 중요한 이방신전들이 있었다. 제우스 신전이 유명했고, 특히 황제를 숭배해야 한다는 신전도 있었다. 버가모는 로마 황제 신전을 최초로 세운 도시로서 황제 숭배에 있어서 리더격의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당연히 ‘황제가 주님이시다’는 고백과 만나게 된다. 이것이 버가모교회의 어려움이자 고난이었다. 이러한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는 고백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권성수, p68~69).

 

   
 
   ▲ 스승의 날 신도들로부터 큰절을 받는 이만희 씨 부부(cbs보도)
 
버가모교회 교인들은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믿고 그분을 향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성경에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고 표현된 것이다(계 2:13). 이 씨가 설명하고 싶은 ‘새이름’은 바로 13절의 ‘내 이름’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본문 문맥을 통한 접근이다.

 

성경에서의 ‘이름’은 이름을 받은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소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이름 안에서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된다고 했다(창 12:2~3). 그리고 ‘새이름’은 이와 관련된 사람의 입장의 변화, 곧 특별한 위치로의 높아짐이나, 혹은 의존 상태로의 낮아짐들의 변화를 표현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한 백성의 앞으로의 날을 고려하여,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예를 들면, 야곱은 이스라엘로 말이다. 죄인들의 이름은 ‘저주’가 될 것이지만(사 65:15),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시 69:28, 사 4:3)되게 된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 북, 1999, p397).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은 버가모교회에게 새이름이 기록된 ‘흰돌’을 주시겠다고 했다. 그들이 저주받을 백성이 아니라 의로운 백성이라는 뜻이다. 멸망받을 백성이 아니라, 소망의 백성이라는 칭찬이다. 그 증표가 새이름이며 또 그것이 기록된 ‘흰돌’인 것이다. 권성수 교수는 새이름이 기록된 흰돌은 메시야의 잔치에 확실하게 참석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한다는 의미로 보았다(권성수, p.75). ‘새이름’에 대해 홍창표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킬 구원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요한계시록 14:1의 ‘어린 양의 이름’도 역시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홍창표, p.464).

이만희 씨의 이름 중에는 이희재라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름을 사용함으로 자신이 좀더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를 지칭하는 이름은 여러 개 더 있다. 이 씨를 따르는 이들에 의하면 이 씨는 ‘보혜사’, ‘충신과 진실’, ‘선생’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정통교회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도 여럿 있다. ‘이단자’, ‘자칭 재림예수 유재열의 아류’, ‘마니교 교주’ 등이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상태, 비전 등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예수님만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이만희 씨를 부른다면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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