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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자의 책소개] 사계절<도착>
마음으로 읽는 781컷의 그림책
2008년 04월 01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 숀탠 지음/사계절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남겨둔 채, 가족도 친구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으며 미래 또한 불투명한 미지의 나라로 쫓기듯 떠나가게 만드는 걸까요? 이 말 없는 그림 문학 <도착 The Arrival>은 모든 이민과 망명객과 난민들의 이야기이며, 또한 그들 모두에게 바치는 작품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좁게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인 호주의 이민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넓게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자가 갖는 두려움과 고독,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세계에 모인 자들이 서로를 돕고 위하는 마음씨와 따뜻한 정서가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인생관은 어린이를 주된 독자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장르의 특성의 일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획의도
이 책은 가난과 박해, 그리고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고국을 떠나 낯설고 물선 나라에 정착해야만 했던, 그리고 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한편의 서사시 같은 그림책입니다. 세계적으로 약 1억9천1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고국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 35명 중 1명이 다른 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셈입니다. 전쟁이나 재난, 정치적 박해나 가난 등 생존을 위협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향하게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세기 말엽의 혼란과 일제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과 개발독재 등 고단한 역사를 지나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를 자의로, 타의로 떠나 이국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 북미, 유럽(동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정치적 박해를 피해 우리나라로 이주해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책이 예전에 이 땅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이주자들, 그리고 지금 여기 이 땅으로 들어오는 또 수많은 이주자들을 우리들(떠나지 않은 자, 먼저 거주하는 자)이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글로 쓰는 글 없는 그림책 사용법
“글의 부재는 독자를 더 확고하게, 한 이주자 캐릭터의 입장에 서게 해 준다. 책 안에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의미와 익히 아는 것들-이것들은 감춰져 있거나 드물게 있다-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글은 우리의 주의를 끄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고, 글이 없을 때 하나의 이미지는 더 여유 있는 개념적 공간을 가질 수도 있고, 독자의 관심을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글이 있다면 독자는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설명글에 의해 상상력을 지배당할 수도 있다.”-숀 탠 ‘<도착 The Arrival>이 만들어지기까지’

처음 이 그림책을 볼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입니다. 어떤 책을 보든 글자를 먼저 찾아 읽는 사람에게는 총 781컷의 그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잘 읽히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저자가 만들어낸 처음 보는 낯선 사물들의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훑어보기만 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여유를 갖고 그림에 머물러야 합니다. 글이 없으니 읽을 게 없는 게 아니라 글이 없으니 그림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고, 읽을 때마다 그림에 숨겨졌던 의미들이 찾아집니다. 글의 행간을 읽듯 그림의 행간을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1장(53컷의 그림으로 구성됨): 아내와 딸을 남겨 두고 고국을 떠나다
반드시 책을 다 본 후에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1장의 그림이 있는 첫 번째 면 작은 그림 아홉 개와 마지막 장인 6장의 그림이 있는 첫 번째 면 작은 그림 아홉 개를 비교해 보세요. 전자에 나오는 그림은 분명히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의 모습입니다. 종이 새, 시계, 중절모, 냄비와 수저, 아이가 그린 새와 식구와 해, 금 간 찻주전자, 이가 나간 찻잔, 여행가방, 가족 사진.

후자를 볼까요? 동물이지만 우리가 아는 동물 모양이 아닌 것, 시계이지만 우리가 아는 시계 모양이 아닌 것, 중절모(이것은 전자와 똑같군요.), 우리가 모르는 음식을 담은 그릇과 포크처럼 쓸 것 같은 포크 같은 것, 아이가 그린 하늘을 나는 배 같은 것, 찻주전자처럼 쓸 것 같은 찻주전자 같은 것, 차를 담은 찻잔 같은 것과 모르는 문자로 쓰인 신문, 가족사진(이건 정말 전자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동전을 건네주는 어른의 손과 그것을 받는 아이의 손. 저자 숀 탠은 이처럼 생전 처음 보는 문자(하지만 그게 문자라는 것은 인지할 수 있는) 같은 것들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대부분의 어려움은 현실의 사람과 사물 이미지들을 완전히 상상된 세계로 연결하는 부분에서 생겨났다.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어떤 연령의, 어떤 배경의 독자라도 똑같이 익숙하지 않을 만한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곳은 물론 내 취향대로 상상한 이상한 나라였다. 새는 ‘새 같고’ 나무는 ‘나무 같은’ 것에 불과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옷을 입고, 아파트 구조는 혼란스러우며 길거리의 일상이 굉장히 이상한 그런 곳 말이다. 나는 많은 이주자들이 이렇게 느꼈을 것이라 상상했다.”

저자는 ‘이상한 그런 곳’을 글 없이 그림만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을 이주자의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그림을 아주 꼼꼼하게 그렸습니다. 그 결과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조화로운 이 작품이 탄생했지요. 숀 탠은 근현대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전쟁과 궁핍, 혁명과 탄압, 학대, 그리고 그것을 피해 이주자가 되거나 난민이 되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해야만 했던 기억들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외계의 것 같은 환경(새로운 생물과 의복, 음식들의 생김새 등)을 창조해낸 것입니다.

2장(245컷): 여정, 새로운 나라에서의 첫날
새로운 세계의 항구에는 악수를 하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듯한 동상의 두 인물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른 세계로 들어가려면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고 두렵기까지 한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이주자들은 제각각 흩어집니다. 남자는 기차를 타듯 애드벌룬에 매달린 우체통 닮은 것을 타고 이파리 같은 나무들이 있는 도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온통 낯설고 괴상한 일상 속에 첫발을 디딥니다.
익숙한 것이라곤 자기 자신과 가족사진뿐인 세계로.

3장(211컷): 새로운 만남과 호의
왜 남자 곁에 있는지 모를 괴상한 생물은 마치 고양이처럼 남자의 주변을 맴돕니다. 분명한 것은 그게 남자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지도를 펴고 길을 묻고 도움을 받아 탈 것을 타고 또 식료품을 사며 도움을 받고, 그러면서 남자는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져 갑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이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의 사연을 저자는 서너 페이지의 그림으로 간결하게, 상징적으로, 하지만 섬세한 묘사력으로 잘 보여줍니다. 특히나 무언가를 내뿜는 분무기를 쥔 거대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 한 장면으로 그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인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임을 당하고 억압 받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장(157컷): 직장을 구하고 시간이 흘러간다
남자는 이제 괴상한 생물을 고양이 쓰다듬듯 어루만지고 먹이를 줍니다. 둘은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일자리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한 공장에 취직한 남자는 생산라인에 서서 망가진 제품을 골라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노인을 사귀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5장(85컷): 식구들을 불러오다
3장에서 남자가 선물 받아 창턱에 놓아둔 조그만 항아리에 물고기를 닮은 새 같은 것이 둥지를 틉니다. 남자는 식구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항아리에도 식구들이 생기고, 이파리 같이 생긴 식물은 꽃 피고 열매 맺고 지고. 어느덧 눈이 쌓입니다. 남자는 두고 온 식구들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가 타고 왔던 우체통 같은 것에서 아내와 딸이 내립니다.

6장(30컷): 정착
따뜻한 김이 오를 것 같은, 즐거운 콧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일상이 보입니다. 딸아이가 식료품을 사러 나갑니다. 괴상한 생물을 데리고 다녀오는 길에 지도를 펴든 젊은 여인을 보고 아이는 기꺼이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펼칩니다.

그리고 다시 표지부터 돌아보자면, 중절모를 쓰고 여행 가방을 든 남자가 왼손을 입가에 댄, 엉거주춤한 동작이 주는 불안하고 걱정스런 느낌이 제대로 전달될 겁니다. 기이한 생물은 아마도 이 남자가 마주하게 될 낯선 세계, 새로운 세계를 상징하는 것일 겁니다. 면지에는 예순 명의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민 증서에 붙여졌을 법한 사진들입니다. 근심스런 눈빛부터 도전적인 표정의 얼굴까지, 모두 약간은 굳은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참, 면지 첫 번째 세로 줄의 세 번째 사진은 작가 자신의 어릴 적 사진입니다. 이렇게 되돌아보기를 할 때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 의미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의미 있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사계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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