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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세종처럼>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발휘한 세종대왕
2008년 03월 24일 (월) 00:00:00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 박현모 지음/미다스북스
 
조선왕조에서 세종은 어느 임금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그의 뛰어남은 한국사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그의 탁월함은 한글 창제라는 이유 하나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의 삶 가운데 보여준 리더십과 백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박식함으로 그는 더욱 탁월한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처럼>은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해서 <실록학교>를 연 저자의 강의 중에서 <세종실록>에 강의한 것을 새롭게 책으로 구성한 것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관료는 국민의 ‘머슴’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실록에서 세종은 현재 우리가 갖춰야 할 삶의 자세를 세 가지 관점에서 보여준다.

소통의 리더십
세종은 소통의 지도자였다. 그의 소통은 군왕과 신하들과의 소통이다. 부왕(父王) 태종으로부터 왕위를 승계한 뒤에 세종이 한 첫 마디가 “의논하는 정치를 하겠노라!”였다. 그의 통치 철학을 엿보는 첫마디는 그의 모든 정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인재의 선발에서부터 법과 제도의 혁신, 그리고 파저강 토벌과 같은 영토개혁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사안을 신하들과 열린 토론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지도자였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개인의 아이디어로만 집대성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소통을 통해 신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옳은 것이면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의 핵심 참모였던 허조가 죽을 때 남긴 말이 있다. 그는 “비록 나라의 임금은 세종이셨지만,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신하들은 모두가 나라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목숨을 바쳐 일하도록 만든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헌신의 리더십
“임금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며,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단 한명의 백성이라도 하늘처럼 섬기고 받들어라.”

세종의 언명은 정치와 경영의 시작이자 핵심이요 끝이었다. 그는 22세에 즉위하여 54세에 사망하였다. 조선 시대의 왕으로서는 짧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긴 치세를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질병으로 인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과로 때문이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의 수면을 취하며 일에 매달렸던 것은 백성을 위한 국가 경영 때문이었다.

그의 훈민정음의 창제의 동기를 보면 △억울한 사연을 말과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언어의 통일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계층 간의 단절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명나라 중국이 버티고 있고, 완고한 유학자들의 강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측은히 여기며 헌신하는 마음에서 훈민정음 창제를 완수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세종식 정치의 핵심을 ‘마음경영’(감동경영)이라고 말한다. 세종은 천민과 양반을 차별하고 구분하지 않았다. 천민과 양반을 상관하지 않고 여든이 넘은 노인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으며 능력이 있으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등용했다. 대기근이 일어났을 때는 자신의 자식들인 대군들이 소유하고 있던 도지를 일부 삭감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또한 노비들에게 100간의 출산 휴가를 준 일과 그 남편에게도 30일간의 산간 휴가를 준 일 등 마음 경영을 통해 섬김과 헌신의 통치를 하였다.

설득과 추진의 리더십
세종의 업적은 모두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세종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많은 반대가 있었다. 세종은 반대하는 자들과 반목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 그리고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자신의 일을 추진해 나갔다. 세종은 때론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며, 설득, 협상, 투쟁도 했다. 이런 것을 통해 그는 모든 일들을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모든 이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예가 재위 15년인 파저강 토벌이다. 그의 나이 37세가 되던 때인 1432년(세종 14년) 겨울에 백두산 아래 여연 지역을 침범하여 약탈한 이만주 일파를 토벌하기 위하여 세종은 파저강 토벌을 위한 3단계 대논쟁을 실시한다.

1단계 논쟁은 ‘토벌을 명나라에 보고할 것인갗의 문제였다. 2단계 논쟁은 ‘토벌을 실제로 감행할 것인갗에 대한 것이었다. 3단계 논쟁은 전략과 전술에 관련한 ‘토벌을 어떻게 할 것인갗였다. 이 3단계 논쟁을 통해 세종은 이만주 일파의 토벌과 국가의 영토를 보전하고 확대하는 문제 앞에서 반대자를 포용하고 끌어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저자는 세종을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취미가 공부이며, 생각하는 두뇌회전 속도가 빠른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고기가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을 정도로 육식체질이었으며, 하루 네 끼 식사를 할 정도로 식성이 좋았으며 비만형이었다고 한다. 세종은 술을 적당히 마시고 그칠 줄 알았으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했으며 대군 시절 외국의 사신을 접대할 때는 풍채와 언사에 권위와 의젓함이 있어 사신들의 존중을 받았다고 한다.

세종은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고, 서예와 예기에 정통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문약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종은 23년의 치세 동안 “이것이 오직 백성을 위해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이냐?”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살았다. 이 책은 무미건조한 실록을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의 도를 넘어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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