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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능력은 순종하는 믿음의 행동 뒤에 온다
2008년 03월 21일 (금)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합니다> 중에서
빌 하이벨스 지음 / 윤종석 옮김 / IVP 펴냄

고난과 믿음과 순종은 날마다 서로 섞여서 예수님의 삶이라는 피륙으로 짜여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가? 순종이 고난을 요구할 때 우리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있는가? 믿음이 우리를 극히 위험한 고난으로 부를 때 우리는 순종으로 반응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좋을 때는 스포츠 중계방송 대신 기꺼이 성경 공부를 택할 수 있는 우리이지만 또한 최악의 경우에는 믿음 대신 더 큰 집이나 신유의 기적을 택할 우리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지니고 살 뿐만 아니라 험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 모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믿음의 가능성이 옴짝달싹 못할 때가 있는데, 실은 거의 항상 그렇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틀에 박힌 일상과 분노 사이에서 좌충우돌할 때가 많건만 우리는 열정을 되살릴 불꽃을 어디서 피울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 중에는 실제 또는 가상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면서 그것 때문에 고통과 울분과 당혹감으로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중에는 날마다 직장에 가서 발끝까지 지루하거나 머리끝까지 스트레스에 차서는, 정신 이상도 장애의 정당한 사유가 될지 남몰래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자녀들 중에는 불안과 분노로 온 집을 뒤흔드는 음악에 푹 빠진 아이들이 있다. 우리 중에는 숨이 막할 정도로 진한 침묵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중에는 파산, 우울, 별거, 사별에 직면한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변을 둘러보면 신앙이 없는데도 형통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아신다. 성경에는 우리처럼 절망, 죄의 본성,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 망가진 모습, 치유의 소원을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즐비하다. 성경에는 나약함, 죄성, 비극 등 인간의 실상이 뜨끔하리만치 자세히 나온다. 야곱은 나쁜 일을 묵과한다. 모세는 자신이 못났다고 느낀다. 베드로는 대책 없는 바보처럼 행동한다. 다윗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과 죄라는 바로 그 정황 속에서 성경은 믿음 - 심령과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종류의 믿음 - 이 가능하다는 과격한 주장을 감히 내놓는다. 많고 많은 실패와 실망 후에도 말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계획의 구심점이 된다. 모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을 이루어 낸다. 베드로의 지도력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죄책감과 절망감이 오히려 더 들 때가 많다. 우리도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건만 대신 우리는 좌절에 짓눌린다. 일상생활을 초월하여 믿음의 실체를 잡는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한다. 그보다 이것은 과정의 문제다. 우리 대부분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리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신비한 기운의 느낌인지 혹은 어떤 혁신적인 생각인지 혹은 솟구치는 하나님의 능력인지- 자신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다가 대개는 기진맥진하여 원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기다림, 복지부동이다. 변화시키는 믿음은 움직임의 정황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온다. 그리고 순종은 행동을 취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취항이 아니다. 우리는 차라리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동작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역경과 도전 속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순종의 길로 걸음을 떼서 믿음을 보이지 않는 한, 그분은 그리하실 수 없다. 우리는 고통이나 두려움이나 환멸의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믿음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무리 수줍고 자신 없고 두려울지라도 우리가 먼저 전화기를 들지 않는 한, 관계는 회복될 수 없다.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의식적으로 수를 써서 멈추지 않는 한, 성적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적절한 도움을 받기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중독은 정복될 수 없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약속, 우리는 그 약속에 의지하여 행동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인다. 무서워 보인다. 우리 중에 더러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하느니 차라리 넘실대는 강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능력은 도중에 온다. 하나님은 도중에 능력을 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하신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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