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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이기는 자'가 이만희 교주인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⑮
2008년 03월 17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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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사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세계교회사>(Clyde L. 맨슈랙, 총신대학교출판부, 1996) 중 근현대사 부분에 특별히 빠져 있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와 설교자>(복있는 사람, 2007)를 읽으면서 ‘삶과 신앙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 교회사를 읽어보라’는 저자의 권면 때문이기도 하다. 역시 역사는 항상 우리에게 반성과 각오 등 교훈을 전해준다. 한 동안 역사책과 멀어졌던 것이 미안한 맘이다.

프랑스의 통치자 루이 14세가 생각난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독재정치를 편 이다(1661년).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그는 기둥이 1천400여개로 이루어진 베르사이유 궁전을 짓고 그 속에서 초호화판 만찬을 즐겼다.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 2만5천여 명을 강제로 이주시키도 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 속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죄된 본성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다. 단지 루이 14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본성 말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이만희 = 이긴 자’(?)

요한계시록을 해설했다는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읽으면서도 이 씨의 독선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의 그의 해설을 통해서 확인해 보자. 특별히 7절 말씀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개역개정판).

위 본문 말씀 중 ‘이기는 그’ 또는 ‘이기는 자’라는 용어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장 7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용어이고 또 의미도 중요하다. 성경을 곡해하려는 자들이 특별히 이 용어의 의미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용어에 대한 의미만 알아도 오늘날 성경을 곡해하고 우리네 교회를 어지럽히려고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게 된다.

 

   
 
   ▲ 보혜사를 드러내는 이 씨의 책
 
이만희 씨는 계 2:7에 등장하는 ‘이기는 자’에 대한 설명을 특별히 하지 않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이만희=이기는 자’라는 공식과 같은 자신만의 해설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그 용어에 대한 설명은 지금 시점에서 나오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착각한 것인가?

 

그러나 이 씨의 책을 몇 장만 더 넘기다 보면 ‘이기는 자’에 대한 이 씨의 의도를 바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계 2:14절~22절의 해설에서 언급한 이 씨의 주장을 들어보자.

“구약 39권이 예수님 한 분을 증거한 책이라면(요5:39) 신약 27권은 이기는 자 한 사람을 알리는 말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상고하여도 이기는 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이 씨의 책, p.102).

이 씨의 책이 2005년에 출판된 것이니 그의 해설에 나온 ‘오늘날’은 지금의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나 이 글을 대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대를 말하는 것일 게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엉뚱한 주장을 이 씨는 실수로 한 것일까? 이 씨의 책에서 같은 의미의 표현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이라는 말이다. 살펴보자.

“영생과 천국을 얻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 사단의 무리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들이 여러 명이 있으나 그들이 전부 예수님께서 ‘약속한 목자’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고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과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기록 받는 이기는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수의 이기는 자들과 이 약속한 한 목자 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이 씨의 책, p.101).

“주 재림을 앞둔 오늘날 모든 성도는 계시록이 응하는 것을 확인하여 무엇보다 2, 3장에 약속한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이 씨의 책, p.102).

 

   
 
   ▲ 이 씨는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씨는 ‘이기는 자’를 찾아야 한다고 매우 강조를 하고 있다. 그것이 구원, 즉 영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것 같아 보이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사뭇 다르다. 그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따라서 만국 백성은 이기는 자를 통해서 천국과 영생을 얻고 예수님께 갈 수 있다”(이 씨의 책, p. 103).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 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이 씨의 책, p.37).

‘이기는 자’는 곧 ‘약속한 목자’이고 그를 만나야 영생을 얻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이 씨의 주장이다. 지금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이 씨는 ‘이기는 자’를 누구라고 말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이 씨의 주장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 씨는 과연 ‘이기는 자’를 누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본장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목자 한 사람을 우리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그는 바로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와서 하늘에서 온 열린 책을 받아 먹고 통달한 자요 보혜사 성령의 위치에 있는 본장의 천사가 함께하는 예수님의 대언자이다”(이 씨의 책, p.217).

“계시록 성취 때에는 사도 요한의 입장에 있는 목자에게 천국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이 씨의 책, p.117).

“이 천사가 보혜사 성령이면 그가 함께하는(요 14:17) 사도 요한과 같은 목자도 보혜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 씨의 책, p.210).

위에 인용된 구절들을 종합해 보면 ‘이기는 자=약속한 목자 한 사람=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온 목자=보혜사라 부를 수 있는 이’ 등이 모두 같은 표현이다. 그리고 누구인가 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이 씨의 주장 중 한 구절만 더 살펴보자.

이기는 자가 중심이 되어 이룬 교회는 만국이 가서 소성 받고 주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릴 증거장막 성전이며 어린양의 혼인 잔칫집이다”(이 씨의 책, p.40).

결국 ‘이기는 자’는 구원자이고 그가 세운 단체가 참 교회인데 그곳은 ‘증거장막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만희 씨의 단체 이름이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다(이 씨의 책, p.17). 이 씨가 그곳에 총회장이란 직책으로 있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이만희’를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 씨도 이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가 쑥스러운지(?) 아니면 감추어보려고 했는지 이리저리 말을 돌리고 돌려서 표현해온 것이다.

물론 ‘증거장막 성전’이라는 단체 이름이 또 있다. 이만희 씨와 상관없는 곳이다. 주로 자칭 재림예수 유재열 씨 수하에서 이만희 씨와 함께 교육 받은 이가 세운 단체들이다. ‘증거장막성전’(홍종효), 무지개 증거장막(심재권) 등이 있다(장운철, 월간<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장막성전의 후예들’ 참조). 이 씨의 주장을 글자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면 구원자와 구원의 단체는 이 씨측 외에도 많다는 셈이 된다. 이만희 씨가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단체만이 바로 그곳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 '이기는 자'를 통해서 영생얻는다는 이 씨의 주장
 
“나도 이기는 자이다”

“나도 이기는 자이다”

 

재미있는 일이 또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기는 자’가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만희 씨만 그 주장을 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과연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은 감람나무 시대입니다. 그 이전과는 다릅니다. 당시에는 주님만 열심히 믿으면 구원받았어요. 주님이 직접 역사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안 됩니다. 이긴자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주께서 그에게 권한을 맡겨서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계 2:27, 3:21~22 참조). ‘너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게 올 자가 없다’ - 이게 비극입니다. 왜 시대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나도 몸과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아 주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여야 합니다”(이영수, <에덴의 메아리>, 제 11설교집, 서울:에덴성회 선교원, 1997, p.303).

“이와 같이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사명자 곧 이기는 자에게 예수님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이 권세를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자는 예수님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이니까. 이로써 하나님도 아니요 예수님도 아닌 끝까지 예수님의 일을 지키는 자 곧 이기는 자가 만국을 다스리는 심판의 권세를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렘 51:20~23). 예수님이 이러한 권세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은 권세라고 한 것이다.”(김풍일, <생명나무>, 서울: 실로출판사, 1982, p.146)

이영수 씨(기독교에덴성회)와 김풍일 씨(새빛등대중앙교회) 등도 이만희 씨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기는 자’는 독특한 한 개인을 지칭한다는 말이다. 위 3명이 한 자리에 앉아 토론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기는 자’의 의미는

과연 ‘이기는 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기는 자=교주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교주들의 논리는 옳은 것인가. 요한계시록 2:7에 처음 등장하는 ‘이기는 그에게’(τω νικωντι)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격려하는데 자주 사용하신 말씀으로 1세기 당시 널리 잘 알려진 히브리적 표현(Hebraism)이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제 1권>, 서울: 크리스천 북, 1999, p.420). ‘이기는 자’라는 표현은 계 2장~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향한 각 서신의 끝부분에 모두 나타난다. 각 서신은 ‘이기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복된 약속의 말씀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홍창표 교수는 ‘이기는 자’를 세 부류로 구분했다. 첫째, 충성된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계 2:11, 17, 26; 3:5, 12, 21; 12:11; 15:2; 21:8). 둘째, 그리스도 자신을 묘사한다고 한다(3:21; 5:5; 7:14). 셋째, 아무런 도덕적 의미를 갖지 않는 표현으로 사용됐다고 한다(6:2; 11:7; 13:7). 다시 말해서 ‘이기는 자’란 아무리 연약한 성도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마침내 승리하게 될 성도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권성수 교수도 이러한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 교수는 계 2:7절의 해설에서 “ ‘이긴다’는 것은 요한1서 5:5 말씀처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막연한 이김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며, 그에 해당되는 신자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니(다)”고 했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서울: 도서출판 횃불, 1999, pp.54-55).

그렇다면 ‘이기는 자’가 싸워서 이기는 이김의 대상이 무엇인가? 즉, 무엇을 이기느냐는 것이다. ‘이기다’라는 동사는 요한계시록 11장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이겨야 하는지 그 대상에 대한 언급이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다. 12장~13장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 이김의 대상이 명확히 등장한다. 그것은 ‘용’, ‘뱀’, ‘짐승’, ‘바다 괴물’, ‘땅의 괴물’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해 철저히 반대하는 세력들이다.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해 보려는 존재들이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반대 세력의 등장과 그들로부터의 ‘이김’에 대한 논리는 요한계시록에 대단히 중요한 골격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독자로 하여금 신적 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모든 대적자들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우주적 왕국을 세우기 위한 싸움에 참여하도록 격려해 준다(Richard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chapter 4.).

‘이기는 자에게’(τω νικωντι)의 시제는 현재분사다. 이때의 현재분사는 일반적 현재분사로 어떤 종류의 것을 표시하며, 동시에 시간의 개념이 없는 현재사(the timeless present)이다. 이는 항상 현재적인 투쟁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의 특징을 나타낸다.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끈질긴 투쟁으로 마침내 승리한 자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 승리는 육적 혹은 세속적 승리가 아닌 그리스도가 이긴 것과 같은 승리의 의미를 함축한다.

 

   
 
   ▲ 이기는 자를 언급하고 있는 헬라어 성경
 
‘이기는 자’를 ‘순교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계 3:21, 15:2 등을 근거로 사탄의 갖은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죠지 래드(G. E. Ladd)는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원리상 순교자이며, 신앙으로 인해 기꺼이 그의 생명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며 순교자의 의미를 확장시켰다(G. E. Ladd, Revelation, <요한계시록>반즈주석성경, 서울: 크리스천서적, 1993, p.50).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이미 순교자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래드는 특히 이기는 자가 얻게 될 복을 설명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특별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것이다”며, ‘이기는 자’는 특별한 존재가 결코 ‘아님’을 강조했다. 

결국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이기는 자’는 어느 특별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특별한 존재가 ‘교주 자신’이라고 연결하는 것은 성경 근거가 전혀 없는, 터무니없는 외침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이만희 씨와 ‘이기는 자’와의 관련이 있다면, 앞의 첫 글자가 한글로 ‘이’자라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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