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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영혼의 창>을 읽고
2001년 05월 01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때론 귀로 듣기만 할 때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최근 어느 주일예배 중에 목사님께서 '광야'에 대한 실제적이고 현대적인 예로서 어느 책의 한 부분을 읽어주셨을 때  머리가 다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 책을 더 알고 싶었다. 급하게 책제목과 저자를 받아썼는데 저자의 이름을 '캔가'로 알아들어 'Kenga'라고 쓰고는 인도계 미국인쯤 되나보다 생각했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대형서점에 가서 제목으로 검색을 하니 두 개가 떴다. 그 중 하나가 '캔가이어'가 쓴 것이었다. 찾던 책이었다. 머리 속에 있었던 'Kenga' 는 곧 'Ken Gire'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그 책을 찾아주던 직원은 "품절입니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없으니까 왜 더 보고싶지?" 우리 가족은 기꺼이 또 다른 서점에 들르는 것에 동행해 주었지만 그 날 나는 책을 구하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인터넷서점에 주문했고 이틀 뒤 책을 받았다. 어렵게 구입한 책이었다.

 저자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창들은 얼마나 감동적인지. 더구나 그의 글은 문학적이기까지 해서 순간순간 숨막히게 공감되는 표현들을 접하는 기쁨까지 주었다.

 그는 우선 글쓰기 전의 기도를 통해, 인간이 '영혼'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서툰 짓인지에 대해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파도를 향해 달려가 힘껏 물살을 걷어차지만 바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영혼의 창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표면에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이면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의 창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영혼의 창을 들여다보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좇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보셨다. 나인성의 과부, 우물가의 여인, 나무 위의 세리, 십자가의 강도, 부자와 나사로에게서 예수님은 그들의 이면을 보셨다.

 영혼의 창은 사람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특정한 상황을 통해, 때론 그림을 통해, 때론 문학을 통해, 때론 영화를 통해 열린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 삶의 도처에서 영혼의 창을 열 수 있다. 저자는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할 만큼 스케쥴에 쫓겨 그냥 지나쳐 버린 지혜가 얼마나 많을까? 라고 묻는다.

 그는 또 고백한다. 하루하루의 삶의 창을 들여다보게 되고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그것이 그의 영혼의 소음을 고요하게 했고, 바퀴가 아무리 빨리 돌아도 고정되어 있는 중심 축 같은 영혼의 고요함을 찾고 나서부터 그에게 베풀어지는 선물은 물론 그 선물을 주시는 분도 함께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인간을, 나무처럼 두 세계 사이에 끼어있는 존재로 본다. 한쪽은 이 땅에 뿌리를 두고 한쪽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그러나 잎이 하늘을 붙들기보다는 뿌리가 땅을 붙드는 편이 안전하기에 언제나 현실성이 커 보이는 쪽은 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주는 것을 박탈하면 나무는 뿌리에 더욱 더 매달리게 되고 결국은 시들게 된다. 그게 우리 인간이다.

 그는 세상을 둘러보라고 말한다. 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 말씀의 흔적이 있다고. 모든 꽃잎의 가는 줄무늬 속에조차도 말이다. 그는 머거리지의 말을 인용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로, 거기서 메시지를 읽어 내는 것을 삶의 예술로 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삶 속에서 영혼의 창을 찾아 여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 하나로 직업의 창이 있다. 슈바이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일을 하기까지 그가 놓치지 않고 보고 깨달았던 몇 개의 창이 유년시절에 있었다. 저자 역시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서고 나서도 작가가 되는 것이 그의 진짜 길임을 확신케 하는 '부르심'을 몇 가지 영혼의 창을 통해 들었다. 그렇다고 목회의 길이 더 어렵고 작가의 길이 상대적으로 더 쉬웠던 것도 아니다. 그가 작가가 되는 과정은 광야의 길을 걷는 일이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어야 했던 그 대목이 '광야의 창'이라는 장에 소개되어 있다.

 또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이 어떻게 헨리 나우웬에게 하나님 나라로 들어설 수 있는 신비의 창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가 '예술의 창'이라는 장에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그 외에 시의 창, 영화의 창, 추억의 창, 꿈의 창, 성경의 창, 눈물의 창 등 영혼의 창이 될 수 있는 재료는 우리 삶만큼이나 다양하다.

 혹자는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 말씀이 아닌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으로 그가 삶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람들, 또는 예술 등이 성경 말씀과 똑같은 비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는 너무나 분명한 복음적 신앙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신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오히려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에서 비롯되지 않고서는 세상 곳곳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영혼의 창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서 램브란트의 그림 그 자체가 헨리 나우웬을 헌신하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 1장에 이런 글이 인용되어 있다. '앞에 유리창이 하나 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유리를 볼 수 있다. 품질을 주시하고 결함을 관찰하고 성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리창 저편을 볼 수도 있다. 광활히 펼쳐진 육지와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다.'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많은 것 중에 너무도 귀한 영혼의 창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매일 매일은 주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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