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작년 연말 개정된 변호사법 개정안 안에는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있고 요즘 대한변협은 이 공익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연간 총 공익활동시간, 의무 불이행시 범칙금, 공익활동 범위 등)을 만드느라 고심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 처음에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불만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현 대한변협회장은 이 조항을 신설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변호사들에게 공익활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설득하며 그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한변협의 연구원으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자료를 찾고 연구하여 협회장님의 일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일에 대해 뒤돌아본다면 - 어떤 일이든 일 자체가 가지는 기본적인 긴장을 논외로 할 때 - 나는 꽤 만족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뜻을 구하며 일하는 같은 선 상에 협회장님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동시에 상사에게 충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협회장님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며 정의를 추구하는 분이어서 나는 하나님 안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글을 맘껏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의 업무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중 법조직(法曹職) 역시 일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힘든 직업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은 법조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법조인에 국한해 쓴 책이라 해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른 지역에 충분히 적용 가능한 책이라 생각된다.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교회와 사회, 가정에서 각각 다른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가져야 할 참그리스도인의 일관적인 자세에 대해 이 책은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의 법조인에게 있어 신앙과 일의 간극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지적하면서 깊은 우울증에 빠져가는 미국 변호사들의 상황을 통계수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법조직이 당면한 문제의 핵심은 윤리의 위기나 상업화 또는 사회적 관계의 위기라기보다는 영적인 위기라고 본다. 오늘날 변호사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도덕률에 상관없이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 고용된 총잡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보고 법조인이길 포기하는 그리스도인을 변호사 규약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저자는 분류한다. 반면 신앙과 일을 철저히 구획화함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과 법조인으로서의 업무 사이에 어떠한 충돌도 없는, 규약과 조화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또 두 번째 모델과 실제적 유사한 결과를 보이는 모델로서 상반되는 두 가지 도덕률의 지배를 받고 사는, 규약과 긴장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약을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네 번째 모델은 자신의 삶을 영역별로 구획화하기보다 통합된 삶을 추구하며 일의 영역에서도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희망하는 법조인의 모델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소명으로서의 법조직(法曹職)을 이야기한다. 일의 영역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일관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조직이 단순한 일자리가 아닌 소명으로 바라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 의뢰인과의 관계이다. 저자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계약을 넘어 언약(covenant)의 관계로 본다. 의뢰인을 변호사보다 모자란 존재로 보는 시각도, 혹은 반대로 의뢰인이 지불하는 보수에 지배를 받는 두 경우 모두를 지양하고 쌍방이 모두 마음을 여는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며 서로에게 위탁하고 함께 도덕적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시간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할 때 변호사는 단순히 고용된 총잡이가 아니라 의뢰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말하는 대신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요구할 수 있는, 정의를 향한 예언자적 사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선지자적 사역 안에는 궁핍한 자를 위한 공공봉사가 포함된다.

 더 나아가 변호사는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소송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중재, 범죄자를 섬기고 동반자가 되어 주는 일, 법적으로 옳은 것뿐 아니라 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 법적 절차가 적개심이나 복수의 수단으로 왜곡되는 것을 감시하는 일 등 수많은 일들이 포함될 수 있다. 저자는 책 뒷편에 잘못된 인생을 살았던 법조인의 표본인 이반 일리이치와 그리스도인 법조인의 모범인 토마스 모어, 이 두 법조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종합적인 논의를 계속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것은 궁극적인 충성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라고 ···.

 우리의 직업은 수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본질적인 과제는 그 누구나 똑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본업은 누구나 같은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