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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읽고
마지막 최고의 단어, 은혜
2000년 02월 01일 (화)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진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나는 어느날 성경공부모임에 데리고 갔던 아이를 어두운 복도로 데리고 나가 엉덩이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도록 때려준 적이 있다. 아이가 내 무릎 위에 몇 번 올라왔던 것이 그 이유였다. 아니 사실 그건 이유가 아니다. 물론 우리 아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말이겠지만 모임 구성원 한 두 사람이 가끔씩 했던 말, 예를 들면 우리 아이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입을 다물고 있자 "요즘 우리 아이도 옆 집 아이와 놀기 시작하더니 노래하라, 해도 안하고 불순종을 배워가고 있다"고 하는 등의 말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화가 났던 것이다.

커 가는 어린아이를 쉽게 판단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내 품위를 유지시키는데 협조하지 않아 화가 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날 비은혜의 사람이었다.

 우리 아이는 내가 보기에 집에서는 종일 춤추고 찬양하면서도 성가대 서기는 쑥쓰러워하고, 뛰노는 놀이는 좋아하면서도 책 읽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집중하며 솔직담백한 성격을 지닌 아이다. 나는 아이의 개성을 관찰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칭찬에도,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이 어김없이 드러나는 그런 순간이 있게 된다.

 물론 나는 내 주위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악의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무섭다. 그건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우린 성경지식이 늘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그 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에 도사들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사람을 몇 번 보지 않고도 그 사람을 분류하는 등급의 도장을 '꽝꽝' 찍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어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 자신은 바르게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넓게 품을 수는 없을까.

 필립 얀시는 15여 년 전 「고통의 하나님」이란 책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 책을 통해 고통에 대해 새로이 눈 떴고 지금도 우리 집 책장에 꽂혀 가끔 들춰보게 하는 책이 되었다.

 그는 다시 한번 은혜를 주제로 내게 도전하고 있다. 저자는 세월이 가면 단어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지만 '은혜'라는 단어는 그 용례마다 본연의 영광스러움이 살아있어 모든 좋은 것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은혜와 관련된 많은 영단어들을 보고 난 정말 놀랐다.

 그러나 그는 묻는다. 세상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배울까…. 그는 말을 잇는다. 교인들 중에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천국을 향한 여정의 기쁨을 놓치는 이들도 있고, 현대 '문화전쟁' 이슈에 관심을 갖느라 비은혜 세상의 안식처라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들도 있다고…. 그는 책 전체에 걸쳐 한 창녀가 한 말을 중간중간 반복한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그렇잖아도 비참해 죽겠는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이 창녀의 예화는 얼마 전 우리 목사님께도 들은 이야기이다. 강남의 환락가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교회가 관심을 갖는 사역 중에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구원시키는 일도 들어 있다.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초창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 왔었는데 도덕적인(?) 교인들과 교제하면서 상처를 입고 모두 떠나갔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은혜에 대해 정의하시지 않고 몇 가지 비유와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탕자의 비유, 포도원 품꾼을 쓰고 일의 양에 상관없이 같은 품삯을 주는 주인의 비유,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마리아, 과부의 헌금 등이다.

 한마디로 은혜는 우리의 합리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편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합리적인 계산법에 의한다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지 못할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해질 무렵 끼여 든 품꾼이 아니라 온종일 고생한 자로, 또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니라 모범적인 큰아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뭔가 좀 낫다는 생각에 자꾸 다른 이를 판단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도 그리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은혜란 성취가 아니라 선물로 받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받은 자는 값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 또 은혜이다. 그래서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또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악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비은혜의 사슬을 끊어야 하는데 용서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용서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은혜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일어났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자신의 겪었던 일들을 엮어 얼마나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설명하는지, 우린 세계사의 국면국면을 신앙의 눈으로 재해석하게 되고 책의 갈피갈피마다 숨어 있는 충격과 도전에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내가 얼마나 편협한 그리스도인 속에 목을 꼿꼿이 세우고 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유치함과 옹고집이 판치는 세속 좌익의 편협성에 대해서는 따로 책을 한권 써야 할 것이라 못박으며 이 책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의 일종의 자기비판서라 말한다. 세상에 대한 도덕해결사로서의 교회가 아닌 참으로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는 사랑이 없다는 사실, 오직 주님 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 베푸는 수밖에는 도저히 방법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오늘도 목놓아 울어야 하리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게 힘 주세요. 주님···.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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