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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행복할 수 없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
2007년 10월 18일 (목) 00:00:00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허진호 감독은 한국 멜로영화의 대표감독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봄날은 간다>, <외출> 등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화들을 선보이면서 멜로영화 전문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그가 네 번째 사랑이야기 <행복>을 선보였다.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종업원과 시골총각의 사랑을 그린 <너는 내 운명>처럼 운명적인 사랑이나 격정적인 사랑은 그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소위 ‘드라마틱’한 요소가 적다. 멜로영화의 백미는 단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인데, 허진호표 영화는 고백조차 너무나 현실적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고백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외출>에서는 이렇다. “우리 사귈래요? 복수하게.” 심지어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고백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허진호 감독의 멜로는 현실적이고, 그래서 우리네 실생활과 가깝다. <행복>은 몸이 아파 요양원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도시와 단절된 곳에 위치한 요양원에서의 젊은 남녀의 만남과 연애라는 지극히 ‘일어날 만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허진호 감독은 스타배우들을 선호한다. 당시 최고 배우였던 한석규와 심은하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하여, 몸짱 유지태와 산소 같은 이영애가 주연한 <봄날은 간다>, 그리고 국가대표 한류스타 배용준과 청순함의 대명사 손예진이 만난 <외출> 등 꽃미남, 꽃미녀들을 등장시켜 사랑이야기를 그려간다. 이런 이유로 내용은 현실적인데, 인물이 영화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행복>은 여배우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임수정이라는 스타를 여주인공 은희 역으로 낙점했다는 점에서 전편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의 설정에서 지금껏 지켜왔던 ‘꽃미남’ 법칙에서 벗어났다. 연기파 배우로 정평 난 황정민이 남자주인공 영수 역을 맡았다. 하지만 <행복>에서 이 남자, 완벽한 연기력으로 앞선 그들보다 훨씬 멋있어 보인다. 비록 역할은 지금까지 허진호표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 중 가장 악랄하고 비열하지만 말이다.

영수는 서울에서 경영하던 바를 처분하고 간경변 치료를 위해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들어온다.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 그는 오랜 기간 동거하던 여자 수연과 막 헤어졌다. 요양원에서 영수는 심각한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은희를 만난다. 적극적인 성격의 은희는 영수에게 먼저 다가가고, 영수도 은희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그들의 연애는 시작된다. 이 둘은 요양원을 나와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1년 뒤, 은희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게 되자 영수는 은희와의 시골 생활이 점점 지루해진다.

영화는 행복한 그들의 동거를 뒤로하고 관객의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같은 바람을 가진다. ‘제발 은희를 버리지 마라! 이 나쁜 자식아!’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보란 듯이 영수는 은희를 버리고 도시생활과 옛 애인 수연의 곁으로 떠난다.

   
<행복>은 전형적인 신파극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에 추측 가능한 전개가 반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멜로영화 전문인 감독의 실력은 이런 뻔하디 뻔한 이야기에서 더욱 빛난다. 등장인물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곱씹어지고, 인물의 심리상태를 말이나 행동이 아닌 표정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빼어난 기술을 선보인다. <행복>은 이전 허진호표 영화에 비해 가장 단순한 스토리를 가진 동시에 가장 집중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전개를 선보인다.

이러한 뛰어난 연출에는 배우들의 역량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다. <행복>은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영화다. 황정민과 임수정의 사소한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에는 영수와 은희의 감정이 담겨 있다. 설렘과 행복, 그리고 애절함과 고통스러움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특히 연기의 물이 오를 만큼 오른 황정민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하명품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이 영수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나쁜 남자로 여기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 황정민의 힘이다. 화면 안에 계절을 담뿍 담고, 예쁜 배경에 멋있고 아름다운 배우들을 배치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찍어왔던 허진호표 영화의 계보에서 <행복>은 배경보다 인물이 더 부각된 영화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영수의 옛 애인이 시골로 찾아왔을 때 시골 생활이 “다 좋다”고 말하는 영수에게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영수와 은희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 영수가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묻자 은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화답 대신 영수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그런 게 있긴 있구나.”

믿지 않는 이들은 인간을 향한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야기를 듣고선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인간 세상에도 그런 사랑이 있으니, 분명 그런 게 있긴 있다.

영수에 대한 은희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고 온전하다. 그래서 현실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반대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는 조금 더 닮았다. <행복>에 등장하는 은희와 영수의 사랑은 주님과 우리들의 사랑과 너무 흡사하다. 영화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면, 영화 <행복>은 참으로 행복한 영화다.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아가는 영수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난다. 자신이 경영하던 바를 친구에게 넘기면서 영수는 “나 완전 망했지?”라는 한마디를 남긴다. 당시 그는 돈, 가정, 애인도 잃고, 심지어 건강까지 잃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행복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그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수많은 이들이 시련으로 인해 벼랑 끝에 섰을 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는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은희의 사랑은 주님이 인간에게 쏟으시는 사랑과 많이 닮아있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이며 희생적이다. 은희의 구애에 응답한 영수는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 영수가 은희의 충고에 따라 절제하며 살아갈 때 건강을 되찾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인간이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순종할 때 행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기독교의 진리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고, 행복이 일상이 되어가자 영수는 은희의 사랑을 하찮게 생각하게 된다. 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다. 관객들은 영수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영수와 같은 행동을 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배신하는 것임을 알고도 그릇 행하는 것처럼.

영수가 은희에게서 마음은 떠났으나 차마 헤어지자는 말은 못하고 있을 때 둘은 놀이공원에 간다.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은희를 두고 혼자 놀이기구를 탄 영수는 괴로운 듯 외친다. “으아~ 미치겠네~!!” 하지만 그런 영수를 보고 있는 은희는 자신을 떠나버린 영수의 마음을 이미 읽은 듯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항상 주님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명심할 것이 있다. 자신을 떠나 또 다시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려는 인간들을 보며 주님은 항상 안타까워하시며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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