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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부엌>을 읽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자
1999년 10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아주 작은 부엌이 있다. 그 부엌은 너무 작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부딪히기 일쑤다. 어쩌면 그 공간에 익숙해지기까지 주인은 여러 군데 멍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부엌은 그 집 전체를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부엌이 그러할진대 다른 공간이 넓고 화려할 리 만무하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가구들··· 그것도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은 늘 행복한 미소를 띠며 그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쿠키를 굽고 차를 끊인다. 그것도 몇 십 년을 한결 같이··· 저자가 대천덕 신부님 댁의 부엌을 보고 설명한 것을, 눈을 감고 상상하면서 요약해 본 것이다.

 그 부엌을 상상하며 이런 류의 단상이 스쳤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서서히 선선한 바람은 쌀쌀한 바람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이고 그러면 우린 금새 따뜻한 차와 갓 구워낸 촉촉한 쿠키를 그리워할 것이다. 아니 우리 입맛에는 뜨거운 군고구마가 더 적당할지 모르겠다. 눈도 내리게 될 거고 매서운 겨울 바람이 우리 코끝을 때릴 것이다.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면 양쪽 콧구멍이 붙는 듯한 느낌이 들만큼 추울지도 모른다. 난로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스난로 전기난로가 아니라 이왕이면 옛날 학교에서 쓰던 조개탄난로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 위에 좀 촌스럽고 투박한 주전자를 올려놓고 보리차를 끓이고 싶다. 적당한 습기와 보리차의 구수한 냄새는 집 전체를 감쌀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맞고 싶다. 집에는 친구들을 기쁘게 맞아 들여 어깨 위의 눈을 털어 주고 손을 감싸며 언 손을 녹여주고 싶다. 그리고 얼른 쌀을 씻어 안치고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이고 싶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남편과 아이는 따뜻한 대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것이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작고 따뜻한 이야기들은 사람 마음을 뭉클하게 적셔 그와 연관된 또 다른 단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매서운 비판도 들어 있다. 특히 믿는 자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한다. 지은이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정상작인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말이다. 그러한 그의 몸부림이 글을 통해 배어 나온다. 그가 과학자라고 해서 특별한 주제에 국한하여 쓴 책은 아니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람들, 일들, 생각들을 수필 형식으로 짧게 짧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 속에는 그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믿는 자로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생활 중에 복음은 어떻게 전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는지, 세상이 공유하는 여러 가지 상식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름답게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조용조용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진화론의 오류에 대해 정리해 주기도 하고 우리가 많이 활용하는 컴퓨터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성향이나 자질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도 한다. 또 과학적 지식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 준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내 '균형'에 대해 생각했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에 대해···. 우리는 균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간단하게는 수레바퀴 예화(물론 이 예화는 그리스도인의 기초적인 신앙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영역을 강조할 때 더 글이 쓰이기는 하지만)를 들기도 하고 직사각형의 나무 판자를 세로로 이어 붙여 만든 물통 그 예로 들기도 한다. 결국 가장 짧은 판자의 높이가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치이다.

아무리 길게 붙어 있는 판자가 있다 해도 물을 담는데 그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재물 사용을 잘 못해요. 그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줘요" 등의 말은 사실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균형 있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재물 사용을 지혜롭게 못한다면 그는 아마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은사와는 다르다 은사는 저마다 다르고 다 다른 점수가 매겨져 있다. 은사란 그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면이 함께 성장해 가야 의미가 있고 그 공통분모는 '인격'이 아닐까 생각된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균형적으로 보인다. 사실 그의 책은 전문 서적처럼 긴장된 자세로 집중하여 읽어 내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고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쯤은 깊이 생각했음직한 이슈들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어 신선하고 새로운 감은 좀 떨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뭔가 강하게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균형 있는 시각과 일관성 있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변함없는 자세였다. 그는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든, 어느 곳에서든 누구와 만나든 하나님께 합당한 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똑같이 몸부림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자의 모습이리라.

 나는 이제 반짝하는 대단한 사역을 보고 싶지 않다. 불에라도 들어 들 듯한 일시적인 충성도 역시 싫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미지근 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때론 현실적인 축복이 보장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오직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따라 일관되고 변함없이, 주님 오시는 날까지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정치계에서, 교육계에서, 이 세상 구석구석, 긴 모퉁이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자 사역을 하다보면 집을 개방하게 되는데 집을 개방하면 식사대접이 따른다. 식사대접을 할 때마다 좀더 편리하고 넓은 주방과 거실을 꿈꾸었던 나, 부끄럽다. 앞으로도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 부엌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쿠키를 구우실 그분을 생각해 본다. 여전히, 변함없이, 한결같이 말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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