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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읽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1999년 09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언젠가 신앙을 가진 지 얼마 안 되는 한 후배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윗은 정말 나쁜 놈이에요." 그 후배가 성경의 어느 대목에서 그렇게 흥분했는지가 빤히 보였으므로 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다윗에 대해선 몇 년쯤 지난 후에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했다.

 나 역시 과거엔 다윗이 못마땅했었다. 그의 성범죄가 너무나 결정적인 것이라 그를 도무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이 쓰렸지만 그 사실에 기초하여 다윗을 묵상할수록 그를 내 마음 밖으로 무작정 밀어낼 수만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준 사람을 내가 어떻게...  그 후 시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자세에 감탄했고 그를 조금씩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초신자일 때는 다윗을 싫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게 된다고 일반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단지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다윗의 삶을 이해하기가 좀 쉬워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다윗의 성적 범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다윗을 평가할 때 그 문제를 좀 접어둘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유진 피터슨은 다윗 이야기를 일종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읽어 내고 있다. 확실히 그는 다윗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그의 그런 탁월함은 어린 시절, 뛰어난 단어 구사와 능숙한 어조로 성경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던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자라났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하여 지금 막 살아서 움직이는 다윗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저자를 따라다니며 생생하게 듣는 다윗 이야기라 해서 그의 삶이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윗의 삶은 역시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본 받을 만한 성경적 모델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법에 대해서 그에게 배울 것은 거의 없다. 그는 불행한 아버지였고 신실하지 못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다윗이 중요한 것은 그의 시적 감각이나 탁월한 전투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었던 그의 체험과 증언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 생애가 하나님과의 대면이었던 다윗의 삶... 저자의 표현대로 단 한 번의 기적도 없었던 다윗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바로 그 이야기 플롯의 중심부에 계신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다윗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다윗일 수 없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읽고 있는 대부분은 다윗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현세를 사는 영성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는 사무엘상 16장부터 사무엘하 그리고 열왕기상 2장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다루면서 중간중간 각 사건에 관련된 시편 내용이 함께 묵상된다. 이 책과 함께 해당 성경 본문을 함께 읽으면서 은혜가 더해진 기간이었다. 또한 이 책은 4복음서의 예수님 이야기를 함께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다윗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를 예기하고 예수님 이야기는 다윗 이야기를 전제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하카톤'···. 막내라는 의미로 하찮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불려지는 다윗···. 그러나 그는 그런 무명의 신세지만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선택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사울왕을 섬기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음악 연주를 통해 혼돈에 빠진 사울의 정신과 감정에 다시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었다. 왕업의 기초가 되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골리앗과의 대결이 있다. 자신의 상상력이 골리앗에게 사로잡히는 대신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이야기이다. 처음의 이 세 가지 이야기는 함께 모여 삼각대와 같은 밑판 역할을 함으로 나머지 다윗 이야기는 모두 이 밑판 위에 얹히게 된다고 책은 말한다.

 다윗 인생의 많은 사건을 담당했던 많은 인물과 장소들이 있었다. 다윗에 대한 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혔던 사울. 다윗의 영혼을 점령하여 다윗을 다윗답게 했던 우정과 언약의 사람 요나단. 성소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도엑.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사는 법을 준비시킨 광야. 어리석은 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영성이 아님을 알려준 여인 아비가일.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대변하는 도시 시글락. 관대함의 상징인 브솔 시내. 어리석음의 상징인 스루야의 아들들. 성장의 도시 예루살렘. 거룩의 본질을 잊었던 웃사. 다윗에게 필요했던 간섭자, 나단. 충성된 사랑의 대상, 므비보셋. 다윗의 죄와 관련된 이름, 밧세바. 다윗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던 압살롬···  그러나 그의 이야기의 모두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셨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아이에게 책을 한두 권 읽어 주고 축복기도를 해 준 후에 불을 끄고 눕게 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도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그 때마다 나는 되도록 성경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재미없게 되기가 일쑤이다. 아이는 다 아는 얘기라고 맞받아친다.

 이 책을 덮고 시도한 일은 아이에게 요즘 읽은 다윗 이야기를 되도록 생생하게 들려준 것이다. 그것은 성경 동화책을 읽어줄 때와도, 또 성경 줄거리를 요약해서 말해줄 때와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려 노력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개입되기를 기도했다. 아이는 매우 흥미 있어 했고 만족해하며 잠이 들었다. 아이를 속이기란 참 어렵다. 언제나 나의 상태가 정직하게 비춰지는 거울과 같으니까··· 언제나 진실함만을 요구하는 존재니까···.

  믿는 어머니라면 다윗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내용을 그 본래의 형태인 이야기 형식으로 눈에 본듯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밤에 문득 든다.
(월간 <교회와신앙>199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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