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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인맥을 끊어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제1 법칙
2007년 08월 30일 (목)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 김영안 지음, 도서출판 새빛 펴냄
 
‘인맥을 끊어야 성공을 한다?’ 매우 도전적인 인상을 남기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제 1법칙’이라는 부제도 달고 있다. 인맥의 끈을 많이 붙잡을수록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끊으라고 하니 말이다. <인맥을 끊어라>(강영안 지음, 도서출판 새빛, 2007년 6월)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한 회사에 근무하는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을 비교함으로 시작된다.
“한 명은 장난꾸러기처럼 명랑하다. 그는 종달새처럼 항상 즐겁고 최대한 깨끗하고 말쑥하게 차려 입으며 일요일 아침이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간다. ···반면 다른 한 명은 그와 월급은 거의 같지만 아침마다 언짢고 슬픈 얼굴로 가게에 나온다. 항상 툴툴거리고 옷은 후줄근하며 신발은 더럽다.”

‘누가 행복한가?’ 그리고 ‘누가 성공할 수 있을까?’를 암시해 주는 예다. 또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의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져주고 있다. 물론 전자의 사람이라고 누구나 답을 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바로 ‘인맥을 끊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인맥을 끊으라니 이것이 말이 되는가? 가능한대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인맥을 형성해야 하는 현대의 삶에서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학연, 혈연, 지연 등에 의한 인맥, 바로 그것을 끊으라는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러한 ‘선천적인 인맥’은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경제사회로 내몰지 않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선천적인 인맥은 더 이상 인맥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것을 끊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 대신 ‘후천적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맺어진 인맥에 목숨을 걸라고 권면한다. 창조적이고 전문적인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라’는 도발적인 소제목이 책장을 넘겨 목차를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슨 말인가? ‘이웃의 아내를 탐한다(?)’는 것과 위에서 언급한 ‘창조적인 인맥’과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저자는 한 사업가의 이야기로 그것을 설명해 준다. 청와대에 정책 제안을 해야 할 한 사업가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자신의 인맥으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청와대와 연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그는 그날 저녁 아내와 식사를 하는 중에 자신의 고민을 아무런 생각 없이 아내에게 툭 털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아이들 문제로 자주 대화를 하던 이웃 집 남편이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 생각할 수 없었던 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큰 문제가 너무나도 간단히 해결된 것이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라’는 뜻은 의외로 아내의 인맥이 화려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존 궤어(John Guare)의 희곡 ‘Six Derees of Seperation’(6단계 법칙)에서 오위사(Ouisa)가 말한 명언을 소개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단지 여섯 사람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6단계의 사람만 거치면 아프리카의 부시맨도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창조적인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도 바로 이러한 창조적인 인맥을 통해서 연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말이다.

끊어야 할 인맥 한 가지가 더 있다. ‘정승집 개와 같은 인맥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맥을 끊으라는 것이다. 이는 특별히 ‘희생’이 없는 인맥은 진정한 인맥이 아님을 언급한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회에서 좋은 자리에 앉게 되면 우월감에 빠지게 된다. 특히 대기업 임원이나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놓인 업체의 사장들처럼 소위 ‘성공’했다고 보이는 이들에게서 그 우월감은 잘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감으로 손쉽게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 특별히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과 인맥의 끈을 형성하려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저절로 연결되는 것이 많다.

이것이 물거품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우월적 위치와 과시로 맺은 인맥은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막상 자신이 어렵고 힘들 때 위와 같은 인맥은 안개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승집 개 죽은 데는 문상 가도 정승 죽은 데는 안 간다’는 말이 있는 것 아닌가? 어려울 때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인맥이라는 말이다. 바로 그런 진정한 인맥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창조적인 인맥 형성을 위해서 몇 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실력 없으면 인맥도 포기하라’, ‘뇌물(腦物)을 바쳐라’ 등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 얼굴 표정, 목소리, 명함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여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노력 없이는 창조적인 인맥 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맥 형성을 위해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데 좋은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선물을 주는 것이다. 선물이라면 오늘날 사회에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저자는 “‘뇌물’(賂物)이 되어서는 안 되고 ‘뇌물’(腦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의 작은 선물 하나가 상대의 ‘뇌’를 움직일 수 있는 감동과 진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뇌물’(腦物)은 값비싼 것과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매일의 이메일 점검과 답장은 반드시 하루를 넘기지 않고 하기, 핸드폰 문자에 답장 역시 가능한 대로 신속하게 하기, 선물은 경우에 따라 부인의 것으로 하기,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등이다.

   
 
 
교회의 건강함 또는 성장도 ‘인맥을 끊어라’와 무관하지 않다.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인맥이 형성되어 있다.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끈’으로 묶여져 있기도 하다. 오히려 ‘출신 교파’라는 이상한 끈까지도 발견된다. 또한 단지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거나 헌금을 특별히 많이 했다는 일부 사람들에 의한 인맥으로 교회가 좌지우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인맥이 교회의 건강함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끊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창조적인 믿음의 인맥 형성에 걸림돌이 된다면 하루 속히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저자가 강조하는 ‘창조적인 인맥 형성’, 그것이 교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전도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를 돕고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믿음으로 형성된 인맥을 소중히 여겨서 그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믿음’이라는 기준으로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SERI)도 이를 반증이라도 해주 듯 한 통계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회원 413명을 대상으로 '오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힘이 되는 습관'을 사자성어로 물은 결과 1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었다. '사람과의 인연(인맥)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다.

'창조적인 믿음의 인맥 형성'을 위해 각 성도가 ‘이웃 집 아내를 탐하기(?)’도 하고, 또 전도훈련도 받고, 얼굴 표정도 연습하며 또한 뇌물(腦物)도 바치는 등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주어진 인맥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인맥 형성에 노력을 하는 것이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며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자는 창조적인 인맥 형성을 위해 끝으로 ‘도전’할 것을 권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도전 의식 없이는 창조적인 인맥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도전하라는 의미와도 같다. ‘낯선 사람 만나기’, ‘불편을 감수하기’, ‘약속 만들기’, ‘4분 안에 승부하기’ 등으로 도전에 적극성을 띄우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위해서 ‘바보’라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도전하는 삶은 젊다. 도전하는 삶은 푸르다. 도전하는 삶은 빛이 난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다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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