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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체라 하는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⑫
2007년 08월 27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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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이 조금 넘은 요즘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여름수련회가 끝났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평상시 교회 생활을 통해 갖기 힘들었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한 신앙훈련과 체험을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수련회가 끝나면 많은 성도들은 ‘은혜 받았다’고 고백을 한다.

수련회는 그 자체 시간만을 목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련회가 끝난 이후의 삶에 더 큰 비전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련회 때 받은 은혜를 가지고 이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련회가 끝나면 다시 ‘삶의 수련회’가 시작되는 셈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수련회가 끝난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것이다. 매일 아침 정해 놓은 성경묵상, 다시 말해 큐티(QT, Quiet Time) 시간을 통해서 말이다. 그뿐 아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명 이기인 핸드폰을 통해 자신이 묵상한 말씀을 서로 간에 전달해 주는 일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명이 자신이 묵상한 성경 말씀을 주변 성도들에게 보내자 이에 자극 받은 이들이 또한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의 핸드폰도 매일 아침 불이 난다. 성도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로 진동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도 동일하게 매일 성경 묵상 문자를 보낸다. 많은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은혜의 변화가 있으리라 본다.

이만희 씨측 신도들도 수련회를 마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신도들 사이에는 수련회가 끝난 이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성교회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더욱 크게 일어날까 아니면 오히려 그 반대로 성경을 멀리하고 이 씨의 교리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될까? 성경을 멀리한다는 것은 성경을 안 본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이 씨의 교리 방식대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 많은 이들이 이씨의 교리를 배우고 있다
 
칭찬 한 마디

칭찬 한 마디

 

필자는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책을 분석하다보면 이 여름이 끝난 이후 이 씨측 신도들이 어떠한 영향을 받았을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이 씨의 성경 해설을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12-16까지의 본문을 이 씨는 ‘일곱 금 촛대와 인자 같은 이’라는 제목으로 풀어 설명을 했다. 살펴보자.

“그렇다면 요한은 왜 자신이 따라다니던 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자 같은 이라고 했는가? 그 이유는 촛대 사이에 나타난 예수님의 형상이(13-16절) 이 땅에 계시던 육신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천 년 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그 이전 형상이 아닌 변화하신 성령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인자 같은 이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글에(계2, 3장)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일곱 번이나 말한 것을 보면 육체가 성령체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이 씨의 책, p. 59).

잠시 말을 한 번 돌려보자. 누군가의 사상이나 교리를 분석하게 되면 대체로 ‘비판’을 하게 되는 경향이 짙다. 분석이 거듭될수록 비판의 횟수와 강도가 점점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분석자의 논리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마치 비판을 받고 있는 그 대상자나 사상은 ‘대체로’ 또는 ‘항상’ 틀렸다고 보기 쉽다.

이만희 씨의 교리도 그렇게 비쳐질 수 있다. 이 씨나 이 씨의 사상으로부터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 씨의 교리는 정통 기독교 핵심에서부터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씨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100%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말이 나온 김에 이 씨의 성경 해석 능력(?)에 대해서 칭찬 한 마디 해보려고 한다. 이 씨의 책에 나타난 비성경적인 사상 비판의 자리에서 그를 칭찬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엉뚱해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위와 동일한 본문(계 1:12-16)의 해설 중 이 씨는 ‘좌우에 날선 검’이라는 소주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설을 하고 있다.

“인자 같은 이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이 선 검은 무엇인가?(16절) ···초림 예수님께서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 말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고(마 10:34)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였다(엡 6:17). 본문의 검 또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가리킨다”(이 씨의 책, p. 60).

이 씨는 본문에 나타난 문제, 즉 ‘좌우에 날선 검’을 발견했다. 또한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접근을 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씨는 ‘좌우에 날선 검’의 뜻을 사도 바울이 언급한 ‘성령의 검’과 연결시켰다. 그리고 그 뜻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설했다. 훌륭한 접근이다. 성경에 나타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다른 성경과 연결시켜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가 충분히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이 씨가 항상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위의 ‘인자 같은 이’에 대한 이 씨의 해설을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이 씨는 ‘인자 같은 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발견했다(이 씨의 책, p. 59). 그 문제에 대해 이 씨는 “요한은 왜 자신이 따라다니던 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자 같으신 이라고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그 문제에 답을 대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씨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의미로 ‘인자 같은 이’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자들의 눈이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말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예수님이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 씨는 성경 본문(계 1:12-16)에서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며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씨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사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씨는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마다 관련 성구를 자주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그 관련 성구를 통해 성경을 통일성 있게 해석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위의 ‘좌우에 날선 검’의 해석적 접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와서는 전혀 다르다. 마치 글쓴이가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먼저는 자신이 제기한 ‘인자 같은 이가 누구인갗에 대한 문제에 대해 ‘요한은 인자 같은 이, 즉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엉뚱한 의미로 해설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관련 성구를 언급하지 않았다. 왜일까? 자신의 주장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관련 성구를 찾지 못해서일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는 사건은 성경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 씨의 주장이 나올만한 성경구절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요 20:14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요 20:14).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지만 마리아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이 성경구절이 과연 이 씨가 주장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내용과 어울릴까?

이 부분에 대해서 부르스(F.F. Bruce)는 “마리아는 단순히 그 눈의 눈물로 인하여 눈이 가리워졌을 뿐”이라고 언급했다(F.F. Bruce, The Gospel of John, 서문강 역, <요한복음>, 도서출판 로고스, 1996. p. 677). 극도의 슬픔에 잠긴 마리아에게 보인 한 사람은 그저 동산지기로 보였을 뿐이라는 뜻이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요 20:15)라는 성경 본문도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다시금 “마리아야”라고 부를 때 마리아는 곧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다(요 20:16).

마리아가 자신의 슬픔 상황 속에 빠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엠마오 사건’(눅 24:16)은 조금 다르다. 제자들의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교훈을 본문은 말하고 있다. 성경을 곡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마음이 뜨거워짐을 제자들은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엠마오 사건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다.

위와 같은 성경 본문들이, 이 씨가 주장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 씨는 다른 본문을 예를 들어 보여줄 수 있는가?

희한한 이 씨의 ‘성령체’ 교리

이 씨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성령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그 증거로 요한계시록 2, 3장에 걸려 나타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구절을 들고 있다. 그 구절을 통해 이 씨는 “성령체임이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이 씨는 ‘부활하신 예수님’, ‘인자 같은 이’, ‘성령’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씨의 해설은 한 마디로 위의 세 단어는 동일한 존재이며 그 모습은 인간이 잘 알아볼 수 없는 유령체와 유사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이 씨는 ‘성령체’(?)라고 부르고 있다.

먼저 이 시점에서 이 씨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씨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과 성령님을 같은 존재라고 보는가 아니면 다른 존재라고 보는가? 기성신학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믿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가?

 

   
 
   ▲ '부활 예수 = 성령체'라는 희한한 이 씨의 교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 씨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부활체에 대한 언급은 이미 필자가 ‘분석 8회’ 때 언급한 바 있다. 그 때의 언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그 부활체의 몸으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 12제자 중 한 명인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20:24), 도마는 ‘그럴 리 없다’며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0:25)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내 눈으로 보고 또 손으로 만져봐야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영’이 아닌 직접 자신의 눈과 손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그런 ‘몸’이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다가오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신령한 몸’(Spiritual body, 고전 15:44)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 육체와 같으면서도 다른 그런 신령한 육체의 모습으로 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하늘로 승천하셨다. 사도행전 1장 9-11절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1, Jesus will come back in the same way you have seen him go into heaven)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란 것 아닌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영’(Spirit)으로 승천하셨나? 사도행전 1장 9절은 위에서 이 씨가 자신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든 본문이기도 하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 놓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마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책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 마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가 볼 수 없는 희한한 어떤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씨는 ‘성령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려고 하고 있지만 성경을 곡해할 뿐이다.

‘인자 같은 이’란?

이 씨가 본문(계 1:12-16)을 곡해하게 된 기본적인 이유는 ‘인자 같은 이’라는 용어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자 같다’고 했기 때문에 인자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계2, 3장에 7번이나 연속해서 나타나는 ‘성령’이라는 단어와 ‘아무런 이유 없이’ 연결시켜 ‘부활하신 예수님=성령체’라는 희한한 교리를 만들어 낸 셈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인자 같은 이’의 뜻은 무엇일까? ‘인자 같은 이’(ομοιον υιον ανθρωπου) 또는 ‘인자’(υιον ανθρωπου)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난해 구절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전혀 접근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씨의 주장처럼 ‘알아 볼 수 없는 존재’라든지 또는 이영수 씨의 말대로 ‘애매한 표현’ 등으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영수, <계시록 강해>, 서울 집문당, 1975, p.30).

일반적으로 ‘인자 같은 이’ 또는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본다. ‘인자’의 표현은 당시 메시야를 뜻하는 특별한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인자 같은 이’(ομοιον υιον ανθρωπου) 또는 ‘인자’(υιον ανθρωπου)의 용어는 비록 정관사(ο)가 없지만, 동반하는 소유격으로 한정된 ‘아들’이라는 뜻의 ‘그 사람의 아들 같은 이’(one like the Son of Man)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흔히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묘사한 내용과 인자(그 사람의 아들)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자 같은 이’의 표현에 대해 필립 E 휴즈는 “이 형상(인자 같은 이)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은 마땅히 그가 받아야 할 영광 가운데 찬연히 빛나는 성육하신 아들 그리스도이시다”고 결론지었다(Hughes Phlip E., Revelation, 오광만 역. <요한계시록> 서울 여수룬, 1993). 홍창표 교수는 ‘인자 같은 이’의 표현이 그 동안 ‘천사 같은 이’나 ‘한 인간’ 등으로 이해해 온 경우도 있다며 본뜻은 다니엘 7:13절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홍창표, p.212).

홍 교수는 ‘인자 같은 이’가 예수님과 동일화되는 표현임은 요한계시록의 문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홍창표, p.213). 선지자, 제사장, 왕의 3겹의 직무를 가진 예수님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 1:1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적 직분’을 받은 분으로, 계 1:5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 즉 왕의 직무를 소유하신 분으로 그리고 계 1:13은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계 1:13의 ‘인자 같은 이’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다는 것이다.

이만희 씨가 특별히 해설을 안 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표현은 본문(계 1:12-16)에 계속 나타난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 눈은 불꽃 같고···”(계 1:14) 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장엄한’ 환상을 표현하는 구절들이다.

계 1:9-20(본문을 포함)은 뒤에 이어질 요한계시록 2-3장의 머리말임과 동시에 일곱 서신에 대한 서문의 형식을 띄고 있다. 따라서 이 본문의 중심 내용은 일곱 서신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있다. 구약의 몇몇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이사야 6:1; 겔 1:1-3 참조) 요한도 이 서신을 쓰면서 그가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장엄한 환상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서신의 주관자가 ‘누구’임을 명확히 밝히고 한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를 이만희 씨가 곡해한 것이다.

   
 
   ▲ 요한계시록 1장 13절의 헬라어성경
 
이만희 씨와 함께 성경 읽었으면

이만희 씨와 함께 성경 읽었으면

 

수련회가 끝난 후 은혜의 유무를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에 대한 사모함이 나타나는가에 있을 것이다. 올바른 수련회는 성경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또한 성경은 거룩한 수련회를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꼭 수련회 때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우리가 항상 접하고 있는 정기적인 예배 때의 모습도 동일하지 않을까? 그것은 성경 말씀 속에 은혜가 있으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이단자와 거리에서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가능하면 그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날은 예외였다. 늘 그랬듯이 이단자들과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성경을 말하는 것 같지만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때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다. 필자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집시다. 어떠한 해석을 서로 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성경만 읽기로 해봅시다.’

필자는 믿었다. 성경이 능력임을 말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있는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 역사하시리라 본 것이다. 필자의 제안에 그 이단자는 무엇이 두려웠는지 거절을 했다. 그는 성경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떠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만희 씨와도 그 일을 해 봤으면 좋겠다. 아무런 토를 서로 달지 말고 같이 성경을 1독만 해볼 수 있다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은가?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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