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네 살 난 우리 아이가 벌써 컴퓨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려움이 앞선다.

 앞으로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바깥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될 것이며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될 생각을 하면 말이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아이에게 비디오를 시청하게 하고 나 역시 필요에 의해 컴퓨터를 시작했듯이 미디어 자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되 그것에 지배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그 뜻에 따라 살기 위해서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면 다른 세상적 가치를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이의 경우는 하나님 안에서 견고히 서기까지 부모가 해주어야 할 실천적 방안들이 있어야 한다.

 매스미디어 분야에서 미국복음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인 퀀틴 슐츠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이러한 고민에 유용하고 실질적인 답들을 제공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신실한 주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매스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욱 그 부분에 예민해 져 미디어를 사악한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었었다.

 아이를 낳고 8개월 동안 꼭 나가야 하는 일(주일 예배와 집안의 대소사)을 제외하고는 아기와 조용히 집에서만 생활을 했었다. 아기를 위해 클래식 음악이나 성가를 잠깐씩, 그것도 아주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을 뿐 TV를 켜는 일도 거의 없었으므로 정말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고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하면서(8개월 동안은 남편이 퇴근 길에 장을 봐주었다) 다시 세상과의 접촉을 서서히 시작했다. 우습지만 나는 꽤 오랫 동안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정말 시끄럽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퍼마켓, 옷가게, 문구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동산에 이르기까지 귀청이 찢어질 듯한(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크기로 들리고 있는 듯한) 팝송, 혹은 가요로 가득 차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 귀가 멍멍했다. 예전엔 왜 몰랐을까. 익숙해져 있어서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종 미디어가 내는 소리에 익숙해져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소리가 사라지면 불안해 하는 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본 책의 저자는 미국 여성의 자유시간의 40%, 미국남성의 자유시간의 50%를 차지하는 주범이 TV라고 말한다. 그런 통계 수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바로 이웃집만 잠깐 들여다 보더라도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거실 중앙에는 TV가 놓여 있고 보지도 않으면서도 배경음으로 켜놓고 생활하는 집들이 많다. 나는 이 후기 산업사회를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 고요를 견디지 못하는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이에게 새소리와 바람소리, 엄마, 아빠의 말소리와 노래소리, 웃음소리, 심지어는 방귀소리조차 그 음 그대로 듣고 반응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고요와 침묵을 즐겁게 하고 싶었다. 세상은 너무나 큰 소리에 묻혀 있어 그것은 일상이 연출하는 소중한 소리들을 다 묻어버릴만큼 위압적이다.

 더구나 그것은 소음이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에 그렇게 노출되어 산다는 것이 그것이 제공하는 가치관에 자연스레 물들 가능성을 십분 제공한다. 그것이 우리의 자녀에게 더 심각하다는 문제제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계속 미디어를 완전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서히 교육을 위한 비디오 시청의 필요성을 느껴 아이가 세 살 때부터 하루 30-40분 정도의 비디오 시청을 허락했고 하루 1시간 정도 동요, 찬송, 클래식의 장르 안에서 자신이 선택한 음악을 듣게 하였다.

 소극적으로 전전긍긍한 자세로서의, 단지 제한조치로서의 나의 대안은 여기까지이다. 이에 슐츠는 그의 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시각전환을 촉구하며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까지 적용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만을 볼 때는 이 책도 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한 대안없는 문제제시로 끝나는 책이 아닐까, 우려된다.

 <미디어 시대, 당신의 자녀는 안전한가?>, 이것은 부모들이 위기감을 느껴 진열대에서 책을 들게하는 데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나 저자의 궁극적 결론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안전한가? 당연히 안전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문제제기의 일부분에 그칠뿐이다. 원제를 찾아봤더니, 'Winning Your Kids Back from the Media'였다. 미디어로부터 아이를 되찾아 오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가정을 세우는 것은 애정어린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평생의 과정이며 자녀교육 역시 거의가 다 커뮤니케이션임을 강조한다. 미디어로부터 발생되는 문제는 바로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비관계적(nonrelatinal)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자체가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디어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잘못 활용됨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그러므로 미디어에 내주는 시간을 무조건 줄이는 '제약'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제약에 대한 긍정적인 이유와 가치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 그것을 사랑과 관심의 의사소통으로 채워야 한다.

 실천적 방안으로 미디어에 대한 가족의 공통기준을 세우기, 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가족 모두가 참여하고 토론하는 시간 갖기, 새로운 미디어를 천천히 편입시키되 첫 시작부터 가족 전체의 생활로 자리잡게 하기, 부모가 미디어로 인해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감독, 해석하며 모니터 해주기 등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부모 역시 새로운 고기술 미디어에 대해 끊임 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이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일상(식사, 쇼핑, 산책 등) 속에서 진지하고 애정어린 의사소통이 이루어 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도록....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생각이든 함께 나누고 싶은 깊고 따뜻한 믿음의 선배이자 친구인 그런 엄마이고 싶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