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집사/ 사랑의교회, 대한변호사협회 연구조사위원

 한 달에 한 번 정도 좋은 영화를 골라보기를 한다. 주로 집에서 밤 늦은 시간에 아이를 재운 뒤 잠자는 대신, 책 읽는 대신 시간을 투자해도 좋은 작품을 골라야 하는 것이 남편과 나의 숙제이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끝까지 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통찮은 영화였을 때 우리는 함께 외친다. "시간낭비! 인생낭비!"

 남편이 고른 영화가 몇 번 실패하자 남편은 내게 영화 선택권을 거의 일임해 버렸다.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남편이 주로 스토리 위주로 영화를 고른다면 나는 감독이나 배우를 본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보장하는 사람인가 하고···.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쪽이 안전하다. 영화뿐 아니라 책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믿어도 될만한 저자들이 있다.

 이동원 목사님은 그런 분 중 한 분이다. 얼마 전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의 기도'라는 그 분의 책을 만났다. 책을 보는 순간 덥석 집어들어 목차와 서문을 한 번 훑어 본 다음 망설임없이 사버렸다.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분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마치 시처럼 쓰여진 서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최선의 탐구의 장은 성경이라고 믿었기에 성경의 사람들 - 그들의 기도를 주목했고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좌를 움직인 그들의 숨결과 기도의 무릎을 함께 배우고자 했습니다···."

 책은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의 기도가 나온 본문을 강해하는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었다. 아브라함, 모세, 한나, 솔로몬, 다윗, 이사야, 하박국, 바울, 그리고 우리 예수님을 통해 기도를 배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현실에 바로 날아 꽂혀 즉각적인 적용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살아 숨쉬는 역사 여행이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인간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 중보기도에 대해 배웠다. 참으로 기도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자비가 실현되길 기도하는 것···.

 그것은 하박국의 기도와도 연결된다. 그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행실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는 참으로 받아 마땅한 것이나 그래도 우리가 기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서도 중보기도는 계속된다. 동역자를 주실 것, 은총의 표징을 보여 주실 것을 모세는 끈질기게 기도하고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참회가 어우러져 하나님 마음을 움직인다. 하나님은 임재철회의 선언을 바꾸시고 친히 가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역사와 인생에 대한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 구체적인 방법은 고착된 것이 아니어서 우리의 호소에 마음을 바꾸시는 분이다. 여기에 기도의 묘미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나를 통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주 앞에 모두 쏟아놓는 기도에 대해 배웠다. 개인적인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필요와 연결시킴으로 개인적인 욕구를 승화시키는 기도, 기도한 것만으로도 이미 응답 얻은 것으로 확신하고 평안하는 것의 중요성이 그것이었다.
 
 솔로몬을 통해서는 지속적으로 겸손히 기도하는 것, 이타적인 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는 자세를 배웠다. 다윗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를 찬양하며 하나님을 향한 가치 있는 꿈을 기도로 아뢰는 것을 배웠다.

 이사야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참회하는 기도와 자신에게 합당한 일에 순종하는 것,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바울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망각치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것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기를 구하여야 함을 배웠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가 있다. 예수님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모범이 되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제자의 삶을 원하시는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가 이루실 일에 관해서 뿐 아니라 바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비시는 중보기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인해 감동하시기도 한다는 거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요즘 경직되어 있었는지 나는 마치 아주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몇 점 짜리 이상의 기도는 'yes'로, 몇 점까지는 'wait'로 그리고 일정 수준 이하는 'no'로 응답하시는 그런 원칙적이기만 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기도에 감동하시면 당신의 계획을 수정하시면서까지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인격을 가지신,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인 것이다. 그 쯤 되면 응답이 yes냐 no냐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yes의 응답을 받은 것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기도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기도하는 자들의 삶이 그 기도 내용을 뒷바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이 따라주는 기도였다. 또한 그 내용이 개인적인 것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필요와 연결된 승화된 기도였다. 뿐만 아니라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껴안는 중보기도였다.

 당장 며칠 동안 이 몇 가지 사실을 염두해 두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분의 귀 기울이심, 그리고 최상으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기도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 바로 내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속 깊이 명징되어 오고 있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