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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와 오메가'도 비유로 보는 이만희 씨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⑩
2007년 07월 09일 (월)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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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는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로 인해 그가 구원을 받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그분은 병원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우였다. 그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분의 가족들은 모두 놀랬다. 가족들조차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던 환우가 필자의 구원초청에 또렷하게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그 환우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 한 청년의 친구 아버지였다. 그 청년과 교제하던 중 “제 친구 아버지가 위독하세요. 며칠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흘린 그의 말을 ‘전도의 기회’라고 감을 잡았던 게 계기였다. 그래서 “그 환우를 위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봐라”고 했던 것이다.

요즘 자주 듣고 있는 CCM(복음송)이 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곡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라는 첫 부분의 노랫말이 ‘소명’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만희 씨의 책(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분석해 가면서 필자는 소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 이단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어디 그것이 필자만의 소명일까?

'알파와 오메가'가 비유라고?

 

   
 
   ▲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이 씨의 해설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해설한다면서 역시 자기중심적이고 비성경적인 접근을 했다. 성경본문과 함께 그의 해설을 먼저 살펴보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본문 8절에서는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요 장차 오실 자라고 소개한다.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담 범죄 이후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이루심으로 모든 일을 완성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이 씨의 책, p.56).

이만희 씨는 성경 본문(계1:8) 중 '알파와 오메가'라는 구절만 떼어내어 그것에 해설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 등의 구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큰 의미가 없는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그 뜻을 모르기 때문인지 아무런 해설을 하지 않았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구절은 요한계시록에 본문 외에 2번 더 나온다. 계 21:6, 계 22:13이다. 이 씨는 이 두 성경구절을 해설하면서 자신의 성경 해설 ‘의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성경이 스스로 자증하고 있는 성경적인 해설과는 거리가 먼 채로 말이다. 이 두 성경구절에 대한 이 씨의 해설도 살펴보자. 먼저 계 21:6에 대한 이 씨의 해설이다.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와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는 처음과 나중 즉 시작과 끝을 가리키기 위해 비유한 말이다. ···예언을 알파라고 하면 실상은 오메가가 된다. ··· 약 이천 년 전 신약 성경에 약속한 예언을 계시록 성취 때에 다 이루신다(요 14:29 계2→1:6). 예언의 말씀과 그 짝인 실상을 믿는 자는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6절)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은 적어도 ‘무료로’ 성경을 가르쳐 주는 곳이지, 돈을 내야 배울 수 있는 기성 신학교는 아니다 ”(이 씨의 책, pp.454~455).

 

   
 
   ▲ 기성신학교는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 씨.
 
이 씨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성경구절의 표현을 ‘비유’라고 말하고 있다. '알파와 오메가'는 그 자체의 진실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뜻의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는 식의 해설이다. 이 씨는 그것을 ‘실상’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알파와 오메갗가 비유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이 씨는 계속해서 ‘실상을 믿는 자는 천국,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이라는 끔찍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기서 이 씨의 계 1:1의 해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위의 이 씨의 주장과 그의 계 1:1의 해설을 연결시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이루어진다. 살펴보자. 다음은 계 1:1의 이 씨의 해설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도 요한이 이 땅에 살아나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과 그 실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가 나타나 실상 계시를 보고 듣고 증거하게 된다. 계시록 성취 때 필요한 계시는 계시록 전장에 약속한 말씀대로 나타난 사건을 증거하고 알려주는 실상계시이지 환상계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성취 때에는 모든 성도가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대언의 목자에게 계시록의 실상을 증거 받아야 한다 ”(이 씨의 책 p.45~46).

위의 해설에서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 책을 읽는 이 씨측의 신도들이라면 우선적으로 이만희 그 자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맞다면 이 씨가 실상 계시를 받게 되는 인물이 된다는 말이다. 그 말과 ‘실상을 믿는 자는 천국,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이라는 위의 이 씨의 주장과 연결시키면 어떠한 결론이 만들어지는가?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가?

이 씨는 '알파와 오메가'를 해설한다면서 그 결론으로 ‘신학교’를 언급했다. 기성신학교는 틀렸고 자신들의 신학교가 옳다는 것이다. 또 신학교의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성경의 올바른 해석 기준보다, 이 씨에게는 등록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자아도취식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이 씨의 해설은 계 22:13에도 계속 나타난다. 살펴보자.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예언’을 ‘알파 즉 처음과 시작’이라고 하면 그 ‘실상’은 오메가인 나중과 낟이 된다. ···본문의 상벌은 약속한 계시록의 말씀이 응할 때 성취된 실상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내리는 것이다 ”(이 씨의 책, p 486).

실상을 믿음으로 상벌이 결정된다는 것(이 씨의 계 22:13 해설)과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이 씨의 21:6 해설)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모두 황당한 비성경적인 주장일 뿐이다.

위와 같은 주장들로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필자는 하나의 성경구절을 자주 생각한다. 마음과 믿음을 되돌아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바로 사도행전 4:12절 말씀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셨더라”(행 4:12).

이만희 씨가 헬라어를 읽는다?

이 씨는 '알파와 오메가'의 구절을 해설하면서 줄곧 ‘헬라어 알파벳 글자’임을 언급했다. 이 씨가 요한계시록을 해설한다면서 ‘헬라어’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정말 좋은 현상 중 하나다. 계속 성경 원어에 관심을 갖고 그 기준에 맞추어서 해설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헬라어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계 1:8을 해설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나는”이라는 말이다. 이만희 씨도 관심을 기울인 헬라어로 된 성경원문을 한 번 살펴보자. 1:8 중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는 부분이다.

Εγώ είμι τό άλφα καί τό ώ”(계1:8).

계속해서 위 본문에 대한 다른 번역 성경인 영어 성경도 살펴보자. 보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 원칙을 삼은 NRSV와 역동적인 번역을 기준으로 삼은 NIV 성경이다.

“I am the Alpha and the Omega”(계 1:8, NRSV).

“I am the Alpha and the Omega”(계 1:8, NIV).

위의 두 영어 성경은 동일하게 번역을 했다. 그렇다면 보다 자유 번역 원칙을 삼은 영어 번역본인 Good News Bible도 살펴보자.

“I am the first and the last”(계 1:8, GNB).

위에서 예를 든 한국어 성경(한글개역성경)과 영어 성경 모두 계 1:8 본문의 ‘나는’에 대한 접근이 동일하다. 모두가 ‘나는’(I am)으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성경의 ‘Εγώ είμι’(‘에고 에이미’)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Εγώ’와 ‘είμι’는 각각 ‘나는 ···이다’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1인칭 주격 동사들이다. 두 단어가 한 곳에 같이 등장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이다. 즉, 내용상 두 단어 중 하나를 빼어도 의미가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두 단어 중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법이다. 그 자연스러운 예가 바로 계 1:9에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 요한은” 이라고 말하고 있다. 직접 살펴보자.

“Εγώ Ίωάννης”(계 1:9).

요한은 계 1:2과 1:4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용하지 않은 ‘Εγώ’(나)라는 말을 계 1:9에서 사용했다. 이는 1:2과 1:4의 ‘요한’이 바로 자신과 동일한 인물을 밝히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계 1:8에서 하나님의 어떠함을 소개하면서 ‘나는 ···이다’라는 동일한 의미의 단어(‘Εγώ’와 ‘είμι’)를 연달아 두 번 사용한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나는 ···이다’라는 의미를 매우 강조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대단히 강조하며 드러내고자 그 단어를 연달아 사용한 것이다.

이 의미가 한글성경과 영어성경에서 살아나지 못한 것이다. 문장 구조상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헬라어 성경을 읽는 ‘맛’이다. 따라서 계 1:8의 본문은 ‘하나님은 누구이심’이 그 중심사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스스로 그 강조점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다.

 

   
 
   ▲ 이 씨는 헬라어 성경을 잘 읽어보아야 한다.
 

 

'알파와 오메가'란?

이만희 씨의 지적대로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과 마지막 글자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씨의 해설대로 ‘예언과 실상’, ‘무료 신학교’ 등으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옳을까?

버쿰은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신적 칭호로써,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기칭호, 즉 신적 자기선포(divine self-declaration)로 나타난다”고 언급하고 있다(Richard Bauckham, "The Role of the Spirit"  The Climax Prophecy. 1993, p.25). 다시 말해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주는 관용적인 표현이라는 말이다. ‘알파’나 '오메가'를 따로 분리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단어처럼 사용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다.

홍창표 교수도 같은 견해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을 위해 사용된 속성의 표현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이라고 지적했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 북, 1999, p.167). 그는 계속해서 “이는 절대적 시작(the absolute beginning, αρχη)과 절대적 끝(the absolute end, τελος)이 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이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 곧 기원이시고, 모든 것의 끝 곧 종말이 되신다는 의미다. 인류 역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가 되신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처럼 상징적인 두 글자, 알파와 오메가는 모든 것(παντα)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알파와 오메가'의 사상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사야 44:6은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심을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에 해당되는 히브리적 상징 표현은 ‘에메트’(תמא)다. 하나님은 ‘처음이시고 중간이시고 마지막이시다’는 의미다(David E. Aune,  Revelation(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솔로몬, 2003, p.399-400). 왜냐하면 알렙(א)은 히브리어의 첫 글자이고 멤(מ)은 중간 글자이며 타우(ת)는 마지막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의 용어를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계시’가 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즉,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은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뿐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된 용어라는 점이다. 계 1:8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됐다.

하나님의 자기 선언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자기 선언에 대한 용어다. 이에 대한 용어가 계1:8에 연달아 두 번 더 나온다. 하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올 자”이고 그 다음은 “전능한 자”이다.

홍창표 교수는 그리스도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는 용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위의 책, p.169). 그리스도께서 영원하며 동시에 역사의 사건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월하신 자로, 모든 것의 궁극적인 완성(consummation)을 선언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 일을 계획하시고 그의 선하신 뜻대로 일을 수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마귀나 사탄 등 그 어떠한 존재나 상황에 의해서 방해를 받거나 실패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1:8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만희’라는 이름이나 ‘실상’ 또는 ‘신학교’ 등 그와 관련된 어떠한 용어나 의미가 그 성경 본문 해석에 들어갈 실수의 틈도 없다.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이만희 씨의 해설 중에서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다’라고 언급한 기본 상식 외에는 귀담아 들을 것이 없다. 그나저나 이만희 씨는 헬라어 알파벳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몇 년 전 한 대학교에서 전도 사역을 한 적이 있다. 누구나 들어가기를 바라는 유명한 대학교였다. 필자와 함께한 몇몇 청년들은 그 대학 학생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또 개별적으로 접촉을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리들의 전도지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개별 접촉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대학교에서 했던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날 이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대학에 다닌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복음에 대한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육신이 병들어 약해지면 모든 것이 약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영혼조차도 말이다.

이만희 씨에게 ‘복음’을 전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너무 엉뚱한 상상일까? 북한 선교에 종사하시는 어느 분이 ‘김정일에게 복음을 전할 소망’을 품는 것을 보았다. 그것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언제나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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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희 이단성 밀착확인’ ,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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