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하 목사/ 남부 사랑의교회 담임

죽음 앞에서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힘을 행사하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된다. 권력이라는 것은 연기와 같은 것이며 재물도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명예도 죽음 저편으로 동행할 수는 없다. 나는 최근에 세 개의 죽음을 만났다.

첫 번째 이야기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마음씨는 곱고 착했다. 결코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여성이었다. 결혼을 하고 1년 6개월만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서울에서 제법 큰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는 말했었다.

-산모와 아기는 건강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사고가 발생했다. 자연 분만을 유도하다 뭐가 잘못되었지 한도 끝도 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의사는 색전증이라고 했다.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피를 수혈하면서 핏줄기를 잡으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의사는 핏줄을 잡기 위해 절개했던 복부를 닫았다.

 그녀는 4일만에 죽었다.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한 핏덩이와 통곡하는 가족들을 남겨둔 채.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절망 그 자체였다. 나는 그녀의 영전 앞에 섰지만 그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두번째 이야기
 
그는 머리가 좋았다. 그래서 문제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비전있는 직장에 다녔으나 사표를 내던졌다. 월급쟁이 노릇을 해서 어느 세월에 부자가 되느냐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그는 주식에 손을 댔다. 하루 20시간씩 그는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잘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원금을 까먹기 시작했고 마침내 돈의 노예가 되어갔다. 아내도 자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정은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친 유리컵처럼 풍비박산이 났다. 게다가 무리한 탓에 설상가상으로 병을 얻었다. 암이었다. 그는 부랑자가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 섰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그는 하나님께 나왔다. 그간 잘못 산 인생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은 물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늦은 것이었다.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축축하고 어두운 여인숙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 좀 살려주세요.

나는 그를 위해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시립 병원으로 옮겼으나 몇 날이 못되어 죽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안식이 더욱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세번째 이야기

78년의 생애를 믿음 속에서 살아오신 분이셨다. 권사님은 예배를 기뻐하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다. 온 가족이 모여서 권사님과의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주기도문이 끝나자 권사님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마치 아기가 잠이 든 것처럼 평화로웠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7월호)